[불안의 진짜 이유] 이런 곳은 다시 가고 싶진 않다.
"나가자!"
남편이 단호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유명한 맛집이라는 식당에 들어간 지 15분쯤 지나서였다.
재난지원금을 받고 외식이 늘었다. 단골집만 다니다 오늘은 새로운 식당 탐험에 나섰다. 막국수와 강황두부찌개가 유명한 '맛집'이다. 맛집 카페에도 여러 번 소개된 집이라 맛있는 점심을 기대하고 남편과 찾아갔다. 그런데 그 식당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해주지 않는다.
1.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아무도 아는 체를 안 한다.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에는 종업원도 주인도 보이질 않는다. 바깥 공간의 입식 탁자에도 방안에 마련된 좌식 탁자에도 손님만 바글바글하다. 더덕더덕 붙어 앉아 주문한 식사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시행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거리'는 어디에도 없다.
2. 지나가던 종업원이 턱으로 안내를 한다.
앉을자리를 두리번거리다 서빙하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우리가 먼저 묻는다.
"어디 앉아요?"
음식 가득한 쟁반을 들고 아주머니는 턱으로 방을 가리킨다.
"쪼기, 쪼기요."
우리는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 겨우 남은 한 탁자를 차지하고 앉는다. 최대한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자리를 잡는다.
3. 식탁 위에 비닐보가 5장이나 깔려있다.
천으로 된 테이블보나 들꽃 화병 놓인 식탁을 기대한 건 물론 아니다. 그래도 난 식탁에 비닐보가 깔려있는 게 싫다. 그 미끈한 비닐 위에 숟가락을 놓고 접시를 놓고 음식을 먹다 보면, 내가 일회용 인간처럼 느껴진다.
"남편! 왜 비닐이 이렇게 많이 깔려있지? 겹쳐서 잘못 깔았나 봐."
난 식탁 위의 비닐을 한 장씩 벗겨낸다. 무려 5장이 겹쳐 있다.
"손님 올 때마다 다시 깔기 귀찮아서 미리 깔아놓은 거야."
남편은 내가 비닐을 한 장씩 빼어 옆으로 치우는 걸 보고 안타까워 설명을 해준다.
기분이 확 상한다. 그래도 어렵게 자리를 잡았으니, 감정을 꾹 눌러 담고 벽에 붙은 메뉴를 쳐다본다.
4. 메뉴도 내 맘대로 못 정한다.
주문을 받으러 아무도 안 온다. 이러다 비닐보만 쳐다보다 뛰쳐나갈 것 같아, 서빙 아주머니를 소리쳐 부른다.
"주문할게요. 강황두부찌개 2인분, 막국수 소자 1개요."
아주머니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렇게 말을 흐린다.
"두부찌개는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
"지금 주문이 많이 밀려서."
그러니까, 한마디로 빨리 나오는 막국수로 통일하라는 압박이다. 버젓이 강황두부찌개를 대표 메뉴로 큰 간판까지 걸어놓고, 시간 없으니 막국수만 먹으라니.
여기서 남편이 나가자고 결단을 내린다. 한 끼에 만 원 식사에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기대한 거 아니다. 점심시간이니 사람이 많을 수도, 주문한 음식이 늦게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턱으로 안내받고, 식탁에 비닐이 5중으로 깔려있고, 메뉴도 내 마음대로 못 먹는다면? 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며 먹을 만큼 맛있는 음식은 세상엔 없다. '사람'을 테이블 회전율 높이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식당에서는 내 돈 백 원도, 내 시간 1분도 쓰고 싶지 않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해서 좋은 게 아니라, 단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죠."
-영화 <카모메 식당>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자꾸 사람대접 안 해주는 식당이 늘어날까 봐.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자꾸 사람대접 안 해주는 식당이 늘어날까 봐. 소중한 남은 인생, 사람 아닌 채로 살게 될까 봐.
우린 평소에 자주 가던 단골 식당으로 차를 돌렸다.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총알같이 종업원이 튀어나와 자리를 안내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받는다. 메뉴판에 있는 어떤 메뉴든 눈치 보지 않고 주문을 한다.
숨통이 트인다. 넓은 식당이라 이미 충분히 사회적 거리가 확보되어있다. 물론 식탁에는 비닐 5장도 깔려있지 않다. 맛깔스러운 김치와 깍두기와 밑반찬을 세팅해주고, 곧이어 주문한 갈비탕과 선짓국이 나왔다. 한우 정육점을 함께 운영하는 곳이라 고기도 푸짐하고 맛도 좋다. 마음 편히 점심을 먹고, 시원한 얼음이 사각사각 씹히는 매실차를 마시며 식당을 나오니, 이제야 난 '사람'이 된다.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이나 종업원도 사람이다. 그들에게 손님이라고 '갑질'할 생각은 전혀 없다. 장사하니 손님 많이 받아 돈 벌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적어도 손님을 '사람'으로는 대접해줘야 한다.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식탁을 매번 깨끗이 닦는 수고로움도 기꺼이 하고, 시간이 걸리거나 손이 많이 가는 메뉴도 정성스레 만들어 식탁에 올릴 의무가 그들에겐 있다. '사람'인 그들도 '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나이가 들었나? 조금 돈을 더 내고라도 친절한 사람이 있는 가게를 가고 싶다. 욕쟁이 할머니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욕에 음식을 버무려 먹을 만큼 소화기능이 튼튼하지도 않다. 내가 그곳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가게가 많았으면 좋겠다. 우린 우리 생각보다 이 지구에 머무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점심식사 한 번 하고 '사람'으로 거듭나기 참 힘든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