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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사탕 Mar 03. 2022

임신을 확인받았다.

이제라도 임신을 확인받았던 그 시기를 마음 놓고 기뻐해보고 싶다.



평소에도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시큰둥했고, 가까운 지인의 아이에게도 살갑지 않았던 나였다. 입버릇처럼 태초의 사람은 성악설에서 비롯된다고 굳건하게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무방비속에서 찾아온 난임은 일 년을 역설 속에 살게 했다. 난임을 선고받고, 난임 병원에 가고, 검사를 받고 내 상태를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좌절하고 실망하고 화를 내고 울고 분노하고 했던 그 모든 시간이 꼬박 일 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한 친구가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마음껏 축하해주지 못하는 나의 옹졸함을 저 밑바닥 끝으로 감추고 싶기도 했고, 결혼 다음은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보편적인 한국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나의 다음 행보에 대한 악의 없는 무성의한 질문에 제가 난임이라서요, 로 대답했을 때의 난색을 표하는 상대방의 얼굴과 어색해진 분위기를 비웃었다. 나에게는 이토록 심각한 문제인데 질문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할 수도 있는 질문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의 또 다른 예민함과 졸렬함을 마주하기도 외면하기도 했던 일 년이었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기적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남편도 조심스러워했다. 우리는 한 번 더 임신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혹시 모를 첫 번째 테스트의 오차일 수 있으니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아야 하니까.



2021.11.09 새벽, 출근 전에 다시 한 번 테스트를 해보았다(분홍색이 두 번째 테스트)



두 번의 테스트로 확인한 진한 두 줄에 순간의 안도를 했다. 아, 나 임신이 맞구나, 정말 임신이네, 라는 걸 눈으로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어떤 벅찬 감정도 감동도 기쁨도 아닌 담담한 안도와 다행의 감정이었다. 동시에 나에 대한 의심이 스멀스멀 커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가지기 힘들다는 사실에 몰두하여 잊고 있었던 자격에 대한 의심. 이토록 불완전한 하고 불안정한 내가 여린 생명체를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




출근길에 난임 담당 선생님의 진료를 예약했다. 테스트기의 결과를 의학적으로 증명받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담당 선생님의 따뜻한 그 말 한마디로 우리가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



첫 번째 임신 테스트를 하고 5일 후인 21.11.12, 예약이 가능한 가장 빠른 날짜로 진료를 예약했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방문 목적을 확인하는 담당 간호사 선생님에게 임신한 거 같아서요,라고 작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난임 상담을 기다렸던 올해 초에, 진료실 너머로 들려오던 누군가의 임신에 대한 환희와 축하의 말들이 진료실 밖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나를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 경험해서였을까, 임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진료를 대기를 하는 그곳에서 임신을 했다고 알리는 것조차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축하할 만한 소식을 들었어요, 로 시작된 진료가 사뭇 어색했다. 임테기 결과를 찍은 사진으로 미루어보았을 땐 임신이 분명해 보이지만 피검사를 먼저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다만, 진료 마감 시간에 임박하게 결과는 당일에 바로 듣지 못하지만 다음 날 전화로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아직은 아기집이 보이지 않을 때이니 피검사 후에 진료를 다시 잡아보자고 했다.


전문가의 소견에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 안심은 혹시나, 만에 하나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임신이 아니었을 때의 가정에서의 자유였다. 마음속에서 들끓어 오르는 불안과 초조를 눌러 내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들뜨지 않으려 애를 썼다. 우리가 와, 맞구나, 임신이 맞아! 하고 안심하는 그 순간, 모든 게 깡그리 없었던 사실이 될 것만 같았다. 손바닥 위에 앉은 나비가 금세라도 날아가버릴 것 같았다. 들뜨지 말자, 오버하지 말자, 설레발치지 말자, 라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둘은 그렇게 날아오르려는 두 개의 마음을 바닥으로 애써 눌러 내려놓았다.




2021.11.12 그래도 오늘을 기념하고 싶었던 남편의 고마운 마음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남편이 언제 가서 몰래 샀는지 모를 꽃이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10년의 연애와 3년 차의 결혼 생활에서 남편은 기념일 돌아오면 빼놓지 않고 꽃을 사줬다. 오늘을 포함하여 지난 한 주간 일어난 모든 일이 둘 만의 비밀 같았다(물론, 모친에겐 참지 못하고 먼저 임신 사실을 알렸으나..). 마치 이 비밀을 누설하면 돌로 변해버린다거나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이 모두 빼앗길 것만 같은 불안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마주하게 해 준 행운의 신에게 감사하다고 의식이라도 치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마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겠지, 비록 설레발을 칠 수도, 마냥 기뻐할 수도 없지만 그저 우리가 마주한 오늘을 둘이서만이라도 기념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다. 우리가 더 어려운 길을 가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고,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견디느냐 수고했다고,





다음 날 정오가 되기 전,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피검사 결과 임신 호르몬 수치가 7700이라 임신이 맞다는 전언이었다. 임신 확인이 되었으니 다음 진료일에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이틀 뒤에 남편과 나는 아기집을 확인하게 된다. 이로써 임신이 분명해지게 된다.



21.11.15. 초음파 담당 선생님은 임신에 대해 현실감이 없는 나에게 임신을 그 누구보다 축하한다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리액션이 생경하기도 하고, 너무 감사하기도 해서 송구스러울 만큼. 십수 번의 자궁 초음파를 보았지만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까만 타원형의 동그란 공간이 생겼다. 아기집이었다. 내가 내 것을 보는 데에도 내 것 같지 않은 기분, 마치 누군가의 영상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현실감은 언제쯤 생기는 걸까,

 

2021.11.15. 첫 초음파. 아기집과 난황을 확인했다. 아주 작지만 배아가 붙어 있는 것도 보인다. 이게 내 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니 놀랍고 신기하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초음파실을 나왔다. 손에  장의 초음파 사진이 들려 있었다. 남편은  모든  신기한지 그의 생애 처음 보는 초음파 사진을 여러 번을 고쳐보았다. 대신 나는 자세히 들여다볼  없었다. 어제까지 나도 난임 환자였는데  자리에서 사진을 보며 임신이 맞대, 라면서 기뻐하기엔 대기실 공기의 무게가 어떤지 너무나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서둘러 가방에 사진을 넣고 진료를 기다렸다.



어려운 걸 해내셨어요, 라는 선생님이 말이 그 어떤 합격 소식보다도 기쁘게 들렸다. 내가 기쁜 건, 드디어 보편적인 길 위에 놓이게 된 안도감인 건지, 시험관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다행인 건지, 두 번의 테스트기의 정확도가 신뢰할 수 있는 검사 결과이기 때문인 건지, 혹은 이 모든 것이 혼재된 기쁨인건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 나도 결국 별 수 없는 하나의 보편적이 인간이었구나, 철저하게 계획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가진 다음 이루어졌다고 해도 비슷한 느낌이었을까, 이 기쁨 뒤에 바짝 따라붙는 나에 대한 불신과 불안은 뭘로 설명해야 좋을까.




여전히 매 순간이 불안하고 안심할 수 없지만 21년 11월, 서른 여섯의 겨울에 드디어 난임을 졸업하게 되었다. 이제라도 임신을 확인받았던 그 시기를 마음 놓고 기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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