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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플랑 Jan 12. 2019

오늘은 (내가 직접 본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첫눈이 왔다.
눈, 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눈이 굉장히 많이 온 날이었고, 하루종일 오던 눈은 저녁이 되어서야 그쳤다....
집앞에서 나는, 그때 만나던 애인하고 헤어지는 중이었다. 왜그러는건데, 미안해, 같은 몇 마디의 스테레오타입을 지나 그 사람은 겨우 납득을 했다. 사실 더 버티기엔 둘다 너무 추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안녕, 하고 헤어졌다면 얘기는 끝났을거고 나도 눈이 올 때마다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겠지 ? 그런데 우리는 어쩐 이유에선지 밥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고 (대체 왜) 제일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돼지껍데기볶음을 시켰다. (진짜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밥을 다 먹고 나오는데 (심지어 맛있었다) 이제 안녕이구나, 하고 그 사람이 돌아섰다. 잘가, 라고 내가 말을 했던가 ? 사실 나도 같은 방향이었는데,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식당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그 식당 앞에는 대단치도 않은 내리막길이 있었는데 종종걸음으로 내리막을 내려가던 그 사람은 거기서


 넘어졌다.


너무나 스탠다드한 넘어짐이었다. 사전을 펴서 '뒤로 발라당 넘어짐'을 찾으면 거기 그대로 사진이 있을 것 같은 넘어짐.
조금 뒤 그 사람은 일어나서 '우씨. 나 괜찮아. 하나도 안 아프거든. 나 진짜 괜찮거든.'하는 것처럼 엉덩이를 털었다.


그런데 그때, 참 이상하기도 하지. 그 사람의 등이 너무 외로워 보였다. 세상에서 처음 보는 것 같은 외로움. 절대로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은 저 등. 
너무너무 하얀 세상 속에 하얀 눈을 잔뜩 묻히고 조그마한 등이 혼자 서 있었다. 세상은 너무 하얗고, 추운데.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그 등을 향해서 뛰었다. 다행히 (대단치도 않은 내리막이어서)나는 넘어지지 않았다.


눈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아니 생각나는 뒷모습이 있다. 사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자주,거의 항상,생각하니까, 눈이 오면 생각나는 광경이 있다고 해 두어야겠다. 그때 그 뒷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우린 헤어졌을 것이고 두번 다시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나서 보니 남편은 좀처럼 뒷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항상 나와 마주 보려고 해 주는 사람. 해서, 나는 눈이 올 때나 되어야 남편의 뒷모습을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를 함께 하게 해준, 그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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