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는 연습이 필요한 때

by 지금


오늘은 금쪽이를 데리고 리코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금쪽이를 남겼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금 쪽이 만 따로 지도하기가 힘듭니다. 금쪽이는 오늘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리코더 연습을 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해 방과 후 따로 남게 되었습니다. 금쪽이는 자신이 설마 나머지 공부를 할 줄 몰랐나 봅니다. 핸드폰을 가지러 온 금쪽이에게 남아야 한다고 했더니 화들짝 놀라더라고요.


오늘 오전에 담임인 저의 말을 따르지 않고 그림만 그리고 만화책만 읽어서 핸드폰도 제가 압수하게 되었습니다. 금쪽이의 마지막 보류는 끔찍이 아끼는 핸드폰입니다. 그 핸드폰을 제가 압수하면 금쪽이는 움직이거든요. 금쪽이는 억지로 앉아 리코더를 부는 척하고 있습니다.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을 위로 잡고 리코더를 불고 있습니다. 리코더 운지법부터 다시 연습을 시작합니다. 도~레~미~파~... 이번 곡은 높은 '미'까지 운지법을 알아야 연주를 할 수 있는 '학교 가는 길'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전체 곡의 반을 어제 검사 맡고 후반부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금쪽이는 어제 '솔솔 솔파미파솔' 한 소절(두 마디) 연습하고는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오늘은 전반부(두 단)를 연습해야 집에 갈 수 있습니다.


운지법을 익히고 한 소절 다시 불러봅니다. 어제는 계이름을 한 소절 외워서 연주하더니 오늘은 다 잊었나 봅니다. 악보를 TV 화면에 보여주고 계이름부터 공책에 적으라고 했지만 금쪽이는 그냥 화면만 보고 따라 합니다. 한 소절 들려주고 같이 연습하고 다음 소절 들려주고 같이 연습하고를 반복합니다. 어제 연습한 한 소절은 잘 따라 하지만 오늘 처음 하는 두 번째 소절은 어려워합니다. 혼자 연습 시간을 주었습니다. 금쪽이는 두 번 연습하더니 책상 위로 고개를 숙이고 꼼짝하지 않습니다. 다시금 금쪽이에게 리코더를 연주하며 보여줍니다. 연습하는가 싶더니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늘 오전 시간에 국어 교과서도, 사회 교과서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교과서를 펴 주었습니다. 어제까지 뒤에 앉아 있던 금쪽이는 오늘부터 지난달과 같이 맨 앞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옆 분단에 앉아 있는 여자 친구들에게 이상한 러시아 말을 계속해서 앞자리로 다시금 복귀한 것입니다. 금쪽이는 제가 모르는 러시아 말로 혼잣말을 자주 합니다. 러시아 친구들이 러시아 말에 즉각적 반응을 보이니 계속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금쪽이는 1학기 내내 우리 반 친구가 아닌 것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친구였습니다. 모든 친구가 노래를 해도 입을 열지 않는 친구입니다. 체육시간에도 강당 무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보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모둠 과제를 해도 혼자 그림만 그리는 친구입니다. 금쪽이는 한국에 입국해서 4년이 되어가는 친구입니다. 4년이 되어가지만 한국어는 거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친구입니다. 한국어를 포기한 것 같은 친구입니다. 그런 친구가 1학기 말에 있었던 2학기 부회장 후보에 출마했습니다. "부회장 되고 싶은 사람 자신을 추천해도 됩니다. 손들어 주세요"라는 말에 통역 담당한 친구가 뛰어나왔습니다."선생님 금쪽이가 부회장 되고 싶데요" 우리 반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친구도 아니고 금쪽이라니... 저도 살짝 당황했지만 자연스럽게 잘 넘겼습니다. "친구들, 금쪽이가 2학기 되면서 열심히 생활하고 싶은 것 같아요. 금쪽이가 부회장이 되면 학급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까요!" 금쪽이는 부회장이 되진 못하였지만 2 표나 획득했습니다. 그래서 2학기에는 더 열심히 생활할 줄 알았습니다. 개학하고 2주가 지났는데 금쪽이는 1학기와 별반 다른 게 없어 보입니다.


금쪽이를 데리고 40여 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교실로 다문화 친구가 들어옵니다. 러시아 말이지만 금쪽이가 언제 끝나는지 묻는 것 같습니다. 금쪽이를 지금까지 기다렸나 봅니다. 저도 한국말로 금쪽이가 연습을 안 해서 못 가고 있어. 같이 가고 싶다면 금쪽이를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눈치가 빠른 친구입니다. 제 말을 알아듣고는 금쪽이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짜증도 내고 달래기도 하고 제법 잘 가르칩니다. 친구 덕분에 금쪽이가 집으로 갑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계속 금쪽이가 연습을 안 하면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오늘도 어찌어찌 하루가 지나갑니다. 제 능력에 힘이 부치는 것은 같은 반 친구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가 저뿐 아니라 리코더 연습을 많이 해야 했던 금쪽이도 그렇고 금쪽이를 기다리다 지친 친구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큰일이 아닌데 목숨을 걸고 끝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리코더 조금 못해도 집에 보내도 되는데 말입니다. 아직도 힘을 빼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언제쯤 힘을 뺄 수 있는 시기가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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