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나이 시내로 마실나가기
월요일. 오늘 저녁은 쉐르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우리나라는 보통 주말에 결혼식을 하지만 이곳은 결혼식을 몇 일에 걸쳐 나눠서 진행한다. 우리는 그 긴 예식 중 마지막 결혼식에 참여한다.
여느 나라 할것 없이 주말이 지나면 월요일이 찾아온다. 페이팅은 아침 일찍 출근하러 갔고, 나는 숙소에서 쉬며 다음 여행지인 말레이시아 여행을 준비했다. 페이팅은 월요병을 잘 견디고 퇴근 후 저녁시간에 내 숙소로 찾아왔다.
둘 째날은 친구차로 브루나이 명소를 돌았다면, 셋 째날은 친구와 주변 시내를 걸어다녔다. 숙소가 가동 시내에 중심에 위치해 있어 쇼핑몰, 영화관, 가동 나잇마켓, 모스크 등까지 걸어다니기 참 편했다. 나는 뚜벅이 여행자다. 걸어다니며 로컬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곳만의 질서들을 발견하는 순간이 참 즐겁다.
페이팅은 맛집을 데려가 준다고 했다. 그렇게 들어간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 전 화장실에 들렸다. 브루나이 화장실에서 발견한 특별함. 모든 화장실마다 발을 씻는 호수가 있다. 청결을 중시하는 이슬람 문화가 일상의 구석구석에 잘 스며있었다.
친구가 시켜준 스프는 페낭 아쌈 락사(Penang Asam Laksa)다. 생선육수에 시큼한 맛이 나는 국물이 특징이 이 음식은 맛을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한그릇을 다 비울 정도로 맛있다. 내 스타일이었다. 디저트는 Karipap이다. 우리는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시내를 구경하러 나섰다.
가동 시내의 거리는 의외로 친숙했다. 한국 음식점, 한국 상점 (미샤, 더페이스샵, 홀리카홀리카, 악세서리 등) 한국 브랜드들을 거리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류가 대중문화를 넘어 K뷰티까지 생활문화로 퍼져나가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다.
쇼핑센터에 들어서자 자연스레 발검음이 히잡숍으로 향했다. 엄마 선물용 스카프를 사고 싶었다.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봤던 화려하고 우아한 히잡 패션이 늘 궁금했다. 브루나이의 여인들의 일상을 잠시나마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카프를 고르는 내 모습이 꽤나 진지해 보였는지, 가게 주인이 다가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내 머리 위에 스카프를 둘러주기 시작했다.
"아 이런 느낌이구나!"
거울 속에 비친 낯선 내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닌, 현지인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보는 것. 그들의 음식을 먹고, 그들의 옷을 입어보고, 그들의 일상을 살아보는 것. 내가 추구하는 여행이다.
가게 주인의 손길 속에서 나는 잠시나마 브루나이 여인이 되어보았다.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던 히잡은 이제 내게 하나의 경험이 되었다. 때로는 이런 작은 용기가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저녁에 진행되는 쉐르의 결혼식 피로연에 가기 위해 발길을 서둘렀다. 주차장으로 이동하던 도중 횡단보도에서 놀라운 광경을 마주했다.
"어? 차가 바로 멈추네?"
여기서는 횡단보도가 보이면 바로 건너가도 된다. 사람이 지나가면 차가 먼저 멈추기 때문이다. 차가 올까봐 차가 빵빵거릴까봐 불안해하며 서둘러서 건너지 않아도 된다. 정말 놀랐다. 횡단보도를 지나면 자연스럽게 차가 먼저 반응하고 멈춘다. 이 나라의 삶 자체에 여유로움이 묻어 있다.
보스턴에 살던 시절, 거위때가 지나가는 동안 클락션 한번 누르지 않고 평온하게 기다렸던 차들. 사람 먼저 지나가도록 배려해준 운전자들을 자주 마주쳤던 그 때가 생각났다.
한국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말들이 떠올랐다.
"니가 조심해야지“
"죽기 싫으면 우리가 알아서 조심해야해"
이런 말을 듣고 자라왔다보니 이 광경은 나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조금 언짢은 마음들이 솟구쳤었다. 왜 당연한걸 당연하지 못하게 만들까? 사람의 이동을 도와주는 도구가 사람을 해할수 있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도구의 잘못일까? 도구를 쓰는 사람의 잘못일까?
브루나이의 안전은 법이나 규칙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를 향한 작은 배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정말 배울점이 많은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