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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Jan 16. 2021

이상!

talk 2. 엄마가 큰언니에게 보낸 메시지

윤경 언니(큰언니)에게 만능간장 조리법을 알려주는 엄마


큰언니 : 엄마 만능간장

만드는 법좀 납겨봐보

두부 찌지서 찍어먹게


엄마 : 간장 메실이나 물엿 마늘 고추가루 다시다는

넣도 되고 안넣도 된다 금방 다먹을라만

참기름추가 깨소금


이상




이제와 하는 이야기지만

엄마는 묘한 사람이다.


엄마의 사랑이 어쩐지 버겁게만 느껴져 외면하고 싶어 지는 순간,

(이십 대 때 특히 심했는데)

수화기 너머에서 엄마는

'딸, 사랑한데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셨다.


자식이 넷인데, 연락도 자주 없다 푸념하시길래

최근에 자주 전화를 드렸더니,

목소리 톤이 영 달라졌다.

때때로 영상 통화를 켜 두고는

입은 '어어' 하고 무성의하게 대답을 하는데,

눈은 여지없이 TV 드라마의 결정적인 장면에 꽂혀 있다거나.




엄마는 늘 바쁜 사람이었다.

1남 3녀의 셋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착한 딸 콤플렉스에 걸려 있던 나는

내게까지 충분히 미치지 않는

엄마의 사랑에 언제나 목말랐다.


일 다녀오는 부모님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방바닥을 뽀드득 닦아놓거나,

방과 후, 자기 집에 놀러 가서 숙제를 함께 하자는

친구들의 청을 전부 거절하고

 부모님 일을 도우러 서둘러 집에 간다거나.


그러고 나면

실은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엄마의 칭찬은 심플했고,

돌아서는

엄마의 표정은 무심했으므로.




그런데 말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엄마는 무심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고단했던 것이라고.


일철이면,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아이 넷의 도시락을 싸느라

늦은 밤, 드라마 한 편 제대로 볼 겨를 없이

고된 농사일에 진이 빠져

코를 골며 주무시느라.


그런 이유로

엄마의 설명은 언제나

투박하고 심플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파워 블로그, 베스트셀러 요리책 속 설명처럼

재료의 양과 양념 순서의 규칙은커녕,

커다란 양푼 그릇 하나 꺼내놓고

엄마가 해보라는 대로

척척 뒤섞고 만들다 보면,

비슷하게,

엄마의 맛을 흉내 낼 수 있었다.


물론, 결정적인 한 방은 부족했지만.

그런데 그 한 방 없이도

그런대로 살아진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참 묘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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