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otte's Web 읽기 II
13년 6개월 전쯤, 태어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은 강아지를 들여왔다. 강아지는 1kg도 안 되는 아주 조그맣고 하얀 말티스였다. 어찌나 작은지 꼬물대는 인형 같았다. 혹시나 잘못해서 밟을까봐 얼마나 조심했는지 모른다. 난생 처음 강아지를 키워보면서 첫 몇 달간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 일쑤였다. 딱 손바닥만 한 크기의 강아지를, 낯선 동물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서워하기도 했고, 한번 만질 때마다 손을 씻기도 했다. 강아지가 그 연약한 유치로 내 손을 깨무는 장난을 할 때도 나는 그게 어떤 신호인지 몰라 무서워하기도 했다.
정리정돈의 여왕이자 청결을 중시하는 엄마는, 강아지를 데려왔지만 뒷베란다에 키우게 하셨다. 뒷베란다는 세탁기와 각종 양식들을 비축해두는 곳간 같은 곳이었다.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당연히 추웠다. 강아지는 자신이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온 것만도 벅찬데 춥고 썰렁한 뒷베란다에 철창으로 된 케이지 안에서 혼자 자느라 밤새 낑낑 앓는 소리를 냈다. 조그만 것이 얼마나 외롭고 추울까 염려가 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뒷베란다가 내다보이는 창문을 열고선 케이지 안의 강아지에게 말을 걸었다. “똘이야, 괜찮니? 힘들어?” 강아지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동물을 잘 모르는 사람도 불편함을 호소하는 소리인 줄은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강아지를 안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와 같이 청결 따윈 크게 개의치 않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엄마는 사람과 동물의 분리 동거를 강력히 원하셨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더 이상 강아지를 뒷베란다에서 재울 수 없다고 판단, 거실로 들여왔다. 나는 점차 강아지에게 모성애를 느끼고, 거실도 모자라 방으로 데려오고, 그다음엔 침대로 모셔왔다. 지금은 강아지가 엄마 침대에서도 잔다. 그런 지 오래되었다. 강아지 키우는 집의 자연스러운 수순일까?
Charlotte's Web 오늘의 장면엔 Fern이 Wilbur를 어떻게 돌보는지 잘 묘사되어 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 흉내 내기를 무척 좋아하기 마련이다. 소꿉장난에서도 엄마 역할과 아빠 역할로 나누어 역할놀이를 하기도 하고, 미니어처 주방이나 우유를 먹일 수 있는 인형 등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윌버는 펀이 스스로 엄마가 되어 모성애를 느껴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대상이었다. 윌버 또한 펀의 아기가 되어 돌봄을 받는 것을 무척 기뻐했다. Wilbur loved his milk, and he was never happier than when Fern was warming up a bottle for him(우리말에도 “그때보다 행복한 적은 없어”라는 표현이 있듯이, 영어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
우리집은 강아지가 주거공간 밖(뒷베란다)에서 점차 안으로 들어와 가장 내밀한 곳인 침대까지 차지했다면, 돼지인 윌버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간다. 첫 며칠은 주방의 난로 근처 상자에서, 그러다 엄마의 불평으로 헛간의 상자로 옮겨졌다가 2주가 지나자 실외로 이동된다. 돼지는 아무리 작아도 그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밖에서 키워질 수밖에 없나보다. 그래도 처음엔 윌버를 죽이려 했던 아빠는 윌버를 위해 사과나무 아래 나무상자도 만들어주고 거기에 짚을 가득 채워주고는 문도 만들어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물론 펀은 아빠의 이런 배려에도 안심이 안 된다. “Won't he be cold at night?" 강아지를 뒷베란다에 놓고선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나로서는 너무도 이해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윌버가 이내 그곳에서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자 Fern은 마음이 아주 흐뭇해진다(Fern was enchanted). 윌버가 그곳에서 짚을 덮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된 것에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It relieved her mind to know that her baby would sleep covered up, and would stay warm).
특히나, 아침이면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Fern과 그녀를 지켜보고 서 있는 윌버 간의 매일의 작별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다음의 표현. 참 아름답다. She would wave good-bye to him, and he would stand and watch the bus until it vanished around a turn.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누군가를 지켜보는 경험....상대에 대한 마음의 여운을 간직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가 알든 모르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를 바라본다는 건 그를 마음에 새겨놓는 것이다. 다시 만날 때까지 그리움을 간직해놓는 일. 윌버는 그런 그리움을 아는 돼지였다. watch the bus until it vanished around a turn....
Fern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면 윌버는 그녀를 졸졸 따라다녔다. 우리 강아지가 나를 따라다니듯. 너무 따라다녀 강아지의 별명을 ‘스토커’라고 지었을 정도다. 그렇게 붙어다닌다, 졸졸 따라다닌다는 표현을 ‘tag along with/at'라 한다. Wilbur tagged along at Fern's heels. 윌버는 펀의 발뒤꿈치를 졸졸 따라다닌다. 아기코끼리가 엄마코끼리를 졸졸 따라다니듯이....
매일 행복한 낮과 매일 평화로운 밤이 이어지고...(Every day was a happy day, and every night was peaceful). 하지만 이런 날들은 오래가지 않는 법. 윌버가 태어난 지 5주가 되자 클 만큼 컸다고 판단한 아빠는 윌버를 팔아야겠다고 Fern에게 말한다. Fern이 주저앉아 엉엉 울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돼지와 함께 살도록 돕진 못했지만 Fern이 없을 때는 우유를 대신 주는 등 윌버 돌보기에 가담한 엄마는 이때도 기지를 발휘하여 슬퍼하는 어린 딸을 돕는다. “삼촌에게 전화 걸어봐라. 가끔 돼지도 키우시잖니. 윌버가 거기서 산다면 너도 걸어가서 원하는 만큼 자주 윌버를 볼 수 있을 거야(Call up the Zuckermans. Your Uncle Homer sometimes raises a pig. And if Wilbur goes there to live, you can walk down the road and visit him as often as you like). Fern은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은 숙모는 남편인 Fern의 삼촌을 큰 소리로 부른다(hollered for Uncle Homer). ‘크게 소리 지르다’라는 뜻의 holler는 어린이소설에 특히나 많이 나오는 단어이다.
그리하여 6달러에 윌버는 팔린다. Next day Wilbur was taken from his home under the apple tree and went to live in a manure pile in the cellar of Zuckerman's barn. 이제 사과나무 아래가 아닌 헛간 지하실 두엄더미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 수많은 동물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모험의 시작이란 걸, 윌버는 아직 모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