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내가 한 일

내가 쏜 공은 어디로 갈까

by 김반장

나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충 3가지로 나뉜다.


하나,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거니까 조금만 참아’

나는 4년차 직장인이었고, 얼마를 더 참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내가 견딜 수 있는 임계치를 넘어선 상태였다.


둘, ‘그만두고 나와도 어떻게든 먹고 살면 되니까 용기 내서 그만둬’

‘어떻게든’이라는 그 말이 막막했다.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했고 이 직장에 들어왔다. 열심히 일하긴 했지만 이 경력을 인정해줄 만한 기업을 생각해내기는 어려웠다. 나이도 있고, 돈 될 만한 재능도 없고, 사람도 두려워하게 된 이 상태에서 당장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모아둔 돈은 결혼하며 다 써버렸고, 남편만 의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셋, ‘나올 때 나오더라도 그냥 나오지 말고 네 권리를 찾아’

남편의 지인이 한 말이었다. 그가 아는 사람은 7급 공무원이었는데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조용히 그만뒀다고 했다. 그리고는 왜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그만두는지 모르겠다며, 자기 같았으면 나오더라도 제대로 싸우고 나오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대부분 홀로 조용히 조직을 나오는 선택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일을 겪으면 절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었다.


내가 3번째를 선택한 이유는 당장 그만둘 수 없는 현실적 상황과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고통 사이에서의 합리적 선택이었다. 나는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하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먹잇감의 냄새를 풍겼고, 피비린내를 맡은 하이에나는 조직 곳곳에 있었다. 나는 당장 일을 그만 둘 수도 없었고, 이 모든 것들과 싸워서 이겨내야 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직속상관에게 내가 경험한 것을 알리는 일이었다. 2시간에 걸쳐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사무실 한가운데서 모든 직원의 시선을 받아야 하는 지금의 자리를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나의 상사는 뒤돌아서자마자 나의 말을 잘 들어줬다며 자랑을 늘어 놓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싸그리 잊었다. 간이 흘러 훗날 노무사 의견서에서는 나의 상사가 몇 번이고 면담은 하되 내가 하는 말은 듣고도 못 들은 듯 하는 것이 그의 지당한 책임감으로 변모해 있었다.


다른 직원들이 오해하니 앞으로는 자신에게 직접 보고도 하지 말라는 해결책을 믿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나는 나를 도와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찾아야 했다. 조직에는 계급이 있고 높은 계급일수록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 하지만 권력이 있다 해도 누가 내 말을 들어줄 것인가. 나는 학연도, 지연도, 하다못해 머나 먼 친척도 없는데. 경력이 길기를 하나, 동기가 많기를 하나.. 나는 조직 내에서도 보기 드문 외톨이었다. 내가 믿을 것은 그동안 내 역량을 믿고 업무를 맡겼던 상부기관의 사람들 뿐 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조언을 구할 수는 있었다.

큰 행사를 치룰 때 마다 굳이 나를 불러내 일을 맡겼던 상부 기관의 팀장급 선배를 찾아갔다. 그 선배는 내가 하는 업무의 이해도가 높았고, 내가 오고 나서 본인의 입지가 위태로워졌다고 느꼈을 여직원들의 상황과 승진을 하기 위해서 직원들의 호응을 얻어야 했던 상사의 나약함까지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선배는 점이라도 치듯 내가 처한 상황을 줄줄 읊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기까지 그냥 온 거 같아? 나는 더 힘든 일 많았어. 힘든 일 있을 때마다 이렇게 도움 요청 할 거야? 가서 잘 견뎌봐.”


사무실로 돌아가 부서장에게 당분간 직원들 간섭없이 혼자 할 수 있는 일로 업무를 변경할 것을 건의했다. 부서장은 나의 직속상사에게 내 업무를 바꾸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역시나 나의 상사는 나를 어디로 재배치시킬 것인지 결정하지도, 직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갑작스럽게 나와 다른 여직원 하나를 앉혀 놓고 업무를 바꾸라 했다. 참고로 그녀가 맡고 있는 업무는 사무실 내 가장 기피 업무였고,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내가 맡은 업무와 바꾸고 싶다고 하는 말도 들었기에 나와 업무를 바꾸는 것이 그녀도 원한 바인 줄 알았다. 그렇게 상사와 논의가 되어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업무에 애착이 매우 많지만 나와 사무실을 위해 희생하겠노라고 말하며 나 때문에 자신이 희생당한다는 불쾌감을 비추었다. 그녀와 한 편인 사무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싫으면 안 바꿔도 돼요.”

그러자 그녀는 “왜 말을 그렇게 하세요?”라고 소리치더니, 친히 고개를 돌리는 수고로움까지 감내하면서 나를 째려봤다. 정말 그랬다. 째려봤다. 사무실에 직원들이 앉아 있었고, 우리는 출입문 근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흘겨보는 그 직원 옆에서는 내 상사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의 불쌍한 정수리와 축 처진 어깨가 땅 속 까지 뚫고 갈 기세였다. 이것이 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는 어디인가, 중학교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장면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황망한 웃음이라도 내지를 뻔 했다. 그 날 상사에게 말했다. 이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다고.

사과를 요구했다. 여직원들은 모두 사과를 거부했다. 업무적으로 한 이야기라 절대 사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직속 상사는 나에게 바로 옆에 있는 사무실로 가면 안 되겠냐고 회유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무실도 같은 일을 하는 같은 부서였다. 거기로 옮긴다 한들 나는 달라질 것이 없었다.


부서장에게 있었던 일을 알렸다. 당시 나에게는 그 간의 일을 정리한 A4용지 13장 분량의 편지 형태의 진술서가 있었다. 이러한 일들이 있었고, 직속상사에게 알렸지만 그 어떤 적절한 조치도 받지 못했고, 당사자들은 사과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부서장은 그 진술서를 읽더니 조직 내부 감사실에 이것을 통보했다.


여직원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인트라넷 메신저로 대화하는 키보드 소리만 시끄럽더니 자기들끼리 어딘가로 몰래 사라지기 일쑤였다.

시간이 흘러 결론은 이렇다.


일단 조직 내부 감사실은 부서장의 통보를 못 받은 척 했다. 조사가 진행될 거라 믿고 기다렸지만 기별이 없었다. 전화해보니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통보가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황당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고 상부기관에 전화했다. 상부기관을 통해 그들이 한 말은(그때까지도 그들은 나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할 생각이 없었다), 나에게 도움이 될 부분이 있으면 조사를 할 텐데 나에게 도움이 될 게 없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직도 그들의 편이었다. 나의 어떤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된 조사에서 조사자는 나를 화합할 의지가 없는 인간으로 몰아갔고, 내 개인적인 성향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치부했고, 이 일은 조직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단정했다. 일어난 일은 사실이라 인정되지만 그들이 그럴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고 했다. 직원들은 하루 걸러 있는 자신들의 조사 내용을 공유했고, 그동안 나에게 '여직원들이 시기질투를 하는 거다. 힘내라.'고 말해왔던 선배는 절대 그런 사실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조사자는 변호사와 노무사와 각종 위원회까지 대동하여 매끄러운 절차의 그림을 그려갔다. 조사자는 나의 말은 진술서에 다 나와있으니 들을 필요 없다며 30분 만에 조사를 끝냈고, 다른 직원들의 말은 함께 점심을 먹어가며 하루 종일 들었다. 조직의 송사를 담당하던 조직 내 변호사는 나의 개인적 성향을 탓하며 인사이동의 방법이 있으니 관련자들의 내부 징계는 필요치 않다고 의견서를 작성했다. 노무사는 상사가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다며 아직 법령이 미비하여 징계할 근거가 없다*고 의견서를 작성했다. 모든 의견서의 아래에는 '행정적 해석이며 개인 의견일 뿐이므로 법적인 책임은 없다'고 명시해 두었다. 이 모든 자료를 본 위원회는 징계 없이 ‘전원’ 인사이동을 ‘권고’했고, 조사자는 다시 결과 보고서에 친절히 내 이름만 적어 놓고는 인사 이동을 권고한다고 통보했다. 이 통보를 받은 기관장은 관련자들이 징계도 받지 않았고, 인사이동 권고는 법적으로 따를 의무가 없으니 인사 이동할 수 없다고 했다. 갈 거면 나 혼자 가라고 했다.


조사자는 전문가에게 판단의 근거를 의지하고, 조직 내부 변호사는 징계말고 인사이동하면 된다고 위원회에 토스하고, 위원회는 다들 책임이 있으니 인사이동 하라고 기관장에게 권고하고, 기관장은 권고사항은 법적으로 '존중'해야 할 뿐 따를 의무 없다며 다시 허공으로 공을 날렸다.


나는 내가 싸우고 있는 것이 조직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직장내괴롭힘방지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2019년 7월 16일 시행되었고, 당시는 이 법이 국회에서 계류중이었다.


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하 "직장 내 괴롭힘"이라 한다)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제76조의3(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①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다.

② 사용자는 제1항에 따른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③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기간 동안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이하 "피해근로자등"이라 한다)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해당 피해근로자등에 대하여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피해근로자등의 의사에 반하는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④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피해근로자가 요청하면 근무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⑤ 사용자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결과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지체 없이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근무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사용자는 징계 등의 조치를 하기 전에 그 조치에 대하여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⑥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등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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