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함과 싸우기로 결심했다면 제일 먼저 증거를 모아야 한다. 내가 만난 조사자들은 내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해 ‘물리적인 증거’가 있냐고 물었다. 그때만큼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가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요즘에는 지나가다 욕 한마디만 들어도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증거로 제출하는 시대다. 아무리 그래도 사무실에 CCTV가 있을 리 만무했다. 이럴 때는 주변에 본 대로 증언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만약 증언해줄 사람이 없다면 이제부터는 정황 증거와 논리 싸움이다.
아쉬운 대로 지금껏 있었던 일을 글로 정리한다. 처음에는 생각나는 대로 무작정 적고, 그 글을 업데이트해나가는 방식이 좋다. 일단은 나에게 있었던 일을 꼼꼼하게 적으며 나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황 증거들도 모은다. SNS 메시지나 사진, 일기, 업무 다이어리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관의 조사 목적에 맞는 법과 규칙, 매뉴얼에 따라 어떤 사건과 논점을 문제 삼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에 맞게 진정서를 다시 작성한다. 필요에 따라 조사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초안으로 작성한 글도 제출할 수 있겠지만, 주요 서류는 두 번째에 작성한 글로 가야 한다. 처음 쓴 글만 가지고는기관에서 나의 주장이 관철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힘들게 진정서류를 만들어 제출했다 해도 자신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올 수도 있다. 내 억울함을 빠짐없이 서술하는 것보다는 기관의 고유한 목적에 맞는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을 움직이려면 내 사안을 해결하는 것이 그들의 존재 이유와 맞아 떨어진다는 설득이 필요하다.
근무하는 곳이 국가기관이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먼저 나에게 있었던 일을 가감 없이 글로 적고 증거를 모을 것이다. 그 다음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조사하는 영역인 헌법 제10~22조의 법령을 공부하고, 국가인권위원회 사이트에서 어떤 사례를 인권 침해로 판단했는지 사례집을 살펴볼 것이다. 세번째로 처음 작성한 글을 다시 살펴보며, 헌법 제10~22조에 저촉되는 포인트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에 따라 다시 나의 사건을 정리할 것이다. 진정서가 완성되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고, 사건이 배당되었다는 연락을 받으면 조사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 작성한 초안과 증거자료를 추가로 제출할 것이다. 진정서와 증거자료를 홈페이지로 제출하는 방법도 있지만, 조사자에게 내가 주장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고 이 사안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만나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혹시라도 조사자가 부정적 결론을 암시하는 말을 한다면, 첫 번째로 조사가 불공정하게 이루어질 경우를 대비할 것이고, 두 번째로는 나의 사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기관을 찾아볼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나의 모든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리라 다짐해야 한다. 언제 누구를 만났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꼼꼼하게 기록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 이 기록을 보면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일처리를 했는지, 관련자들은 어떤 주장을 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녹음을 할 수도 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내가 대화 당사자일 경우에 녹음을 하는 것은 처벌받지 않는다. 내가 타인의 대화를 엿들으며 녹음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대화 내용을 다 기억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먼저 녹음할 것을 고지하고 녹음을 하는 것이 좋다. 혹시 녹음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대화를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정말 녹음을 할 수 없고 꼭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화를 꼼꼼하게 기록해놓고 현재 시간을 표시한 휴대폰 화면, 기관 방문증과 함께 사진을 찍어 놓으면 된다.
조사가 진행되는 중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조사자가 하는 질문에는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내심의 의사가 담겨 있다. 나의 경우에는 조사자가 왕따의 개념을 알고는 있는지, 집들이는 왜 했는지, 집들이에서 분위기는 어땠는지를 물었다. 이는 내가 왕따의 개념도 모르고 직장 내 왕따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집들이를 할 만큼 직원들과 사이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조사자가 뼈대를 짓고 있는 것이다. 조사는 그렇게 받아 놓고 나중에는 법적 효력도 없는 전문가 의견서를 들이밀며 나에게 화합할 의지가 없다고 몰아간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딱지가 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정신 차려야 한다.
혹시 질문이 의아하게 느껴진다면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의 주장이 조사 서류에 기재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혹시 나의 말이 반영되어 있지 않으면 조사를 중단해야 한다. 조사를 중단하지 않고 생각 없이 확인 도장이라도 찍으면 그때부터는 그 허술한 서류가 공식문서가 되어버릴 것이다. 공식적인 문서 내용은 뒤집기 힘들다. 요식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기관에서는 ‘절차상 하자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더 이상 나의 사건은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조사 중 불편한 점이 있다면 조사자에게 그때그때 요구해야 한다. 개별적인 공간에서 조사를 받고 싶다든지, 다른 사람의 동석을 원한다면 당당하게 요구하고 내가 가장 편안한 분위기에서 조사를 이어가는 것이 좋다. 혹시 조사자가 나의 요구를 부당하게 묵살한다면 조사를 중단하고 조사자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다.
조사를 받을 때 무턱대고 많은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조사자가 내 말을 알아듣고 정리할 수 있도록 짧고 정확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말해줘야 한다. 내가 억울한 마음에 말을 많이 한다고 해도 조사자는 내 말을 다 받아 적지 않는다. 만약 조사 전에 조사자에게 나의 상황을 이해시키고 싶다면 그때는 충분한 설명을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조사가 시작되면 조사자가 미리 준비한 질문과 나의 답변 그리고 조사자의 기록이라는 정해진 절차가 있다. 이 조사가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조사자의 기록만을 보고 나를 판단할 것이다. 그렇기에 기록에 나의 의사가 정확하게 반영되도록 간결하고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조사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조사자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며 대답을 해야 한다. 혹시 불안감이 몰려올 때는 잠시 휴식을 요청해도 좋다. 호흡에 집중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조사를 진행해도 되고, 날짜를 다시 정해 다른 날에 조사를 이어가도 된다.
조사를 받은 후에는 조사자가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서류를 정리하고 전문가 의견을 구하고 결론을 내릴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짧게는 2개월에서 6개월까지도 걸릴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그냥 기다리기만 하기보다는 때때로 조사자에게 전화를 걸어 진행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이때에도 꼼꼼하게 대화 내용을 기록해 놓아야 한다. 조사자만 믿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변호사나 노무사를 찾아가 의견서를 요청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나중에 확인한 전문가 의견서를 보고 나서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 자체는 같을 지 모르나 전문가의 의견은 의뢰인에 따라서 문제 삼는 포인트나 뉘앙스가 확연히 달라진다. 나의 사건에는 단순히 직원들의 비난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불법적 요소도 있었는데 조직 내 변호사는 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나의 개인적 성향으로 인한 갈등이라며 일반인 수준의 의견서를 작성했다. 만약 내가 변호사에게 의견서를 의뢰했다면 다수의 직원이 나에게 피해를 입힌 행동의 불법적 요소에 대한 판단도 세부적으로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 중에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절대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 내가 주눅 들고 내 주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면 칼춤이라도 추며 좋아할 사람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나는 아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불편한 감정이 들면 책상 위 달력이라도 뚫어져라 응시해라. 속으로 좋아하는 노래라도 부르면서 마음을 안정시켜라.
나의 경우에는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필연적으로 조사는 시작됐고 조직에는 온갖 구설수가 나돌았다. 소문에 따르면 나는 정신병자 거나 동료를 죽이는 헌터였다. 이렇게 되면 내가 조사를 받지 않겠다고 버틴다 한들 나에게 좋을 것이 없다. 끝까지 싸워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내가 살아남는 길이다. 어설프게 구설수에 오르내린다면 도중에 문제 제기하는 것을 포기해버리는 것이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은밀한 괴롭힘이 더 심해진 다던가,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시비를 걸어오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때 부당함을 다시 주장 한다한들 조직은 나를 양치기 소년 취급을 할 것이다.
용기를 내기는 했지만 나에게도 답답하고 두려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지난 일 년간 조사를 받고 그 부당함을 주장하며 여러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수많은 사람의 의심을 받아야 했다. 나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들의 안정을 그렇게까지 흔들어놓을 필요가 있는지,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미심쩍인 눈초리를 받고 싶지도 않았고, 그들의 완곡한 거절의 답변을 듣는 것도 지쳤다.
그래도 나는 이 싸움에 끝이 있을 거라 믿었다. 세상에는 끝이 없는 싸움도 많지 않은가. 실체 없는 것을 향해 아무리 고함쳐도 나의 삶이 예전 같지 않은 그런 싸움 말이다. 그에 비하면 내가 겪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보다 더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겪고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외쳐대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더더욱 버텼다.
고통에 처한 사람은 내가 겪는 고통이 의미 있는 고통인가 의미 없는 고통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의미 있는 고통은 투쟁이라 부르고, 의미 없는 고통은 학대라고 부른다. 나보다 더 억울한 사람들의 투쟁에 비할 수 없는 고통에는 스스로 겸허해져야 하지만, 다른 기업 가면 더 심한 갑질을 겪을 테니 지금의 부당함을 참아야 한다는 학대의 논리는 고민할 가치가 없다. 나는 하찮은 고통을 이겨내고 투쟁으로 가는 고통의 길목에 있었다. 거기에는 고독이 있었지만 적어도 나를 잃는 괴로움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