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견디는 거짓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드러나는 진실

by 김반장
< 호소문 일부 >

저는 일할 때 쾌적한 환경을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상관의 지시 하에 혼자 하기 힘든 일을 해야 했던 적도 있습니다....(중략)... 주말마다 출근하면서도 거기에 대해 부당하다고 주장한 적 없습니다. 제가 힘들긴 하지만 그마저도 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웃는 얼굴로 일하러 갔습니다.

제가 요구한 것은 정상적인 근무환경 그뿐입니다. 저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데 왜 제가 몇 일에 걸쳐서 직원들의 짜증과 분노를 받아야 합니까. 상관이 시킨 일을 하는데 왜 제가 여직원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까. 제가 9시든 10시든 남아서 일하는데 왜 여직원들은 그것을 비난의 근거로 삼습니까. 제가 그들의 업무를 침해하거나 성과를 빼앗은 적이 없는데 왜 그들은 제가 해야 할 일을 ‘혼자 하려고 했다’고 비난합니까. 상관의 편애로 그들이 출근하지 않고 승진공부 하는 두 달간은 제가 그 업무를 모두 도맡아서 했어야 했습니다. 그 때는 일을 저 혼자 해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고, 제가 해야 할 일을 제가 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까. 사무실은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저에게 쏟아 부었던 비난을 왜 모두 제가 감내해야 합니까. 그리고 그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자 사과 한마디 없이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며 뒤에서는 제가 가해자인 것처럼 소문내는 것을 왜 제가 감내해야 합니까. 이것이 제가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까, 아니면 그들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까?


조직 내부에서 허공으로 날려버린 공을 쥐고 외부기관들을 찾아다녔다. 기관들을 찾을 때마다 일자별로 정리된 간단한 요약본과 호소문, 진정 서류들을 들고 다녔다. 내가 겪은 일을 이해하려면 각자의 특성과 관계도, 자리배치도, 업무분장표와 같이 정황 증거들도 중요했기에 구체적인 자료들도 있었다.


기관 별로 지방에 있는 지부, 본부 다 찾아갔다. 접수받는 상담원은 친절하고 그것이 조사자에게 배당되었을 때는 발을 빼기 바빴던 기관도 있었고, 접수 받을 때 부터 말을 아끼고 팔을 내저으며 진정서류를 읽어보지도 않으려했던 기관도 있었다. 이미 다 결정난 것이니 뒤집을 수 없다던 기관, 접수를 받고 두 차례나 상담하고도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던 기관, 다시 우리 조직으로 토스해버린 기관, 어딜 가나 나는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다. 나 하나만 조용하면 모두 없던 일로 끝날 일이었다.


1년이 흘렀다.

이제 나는 새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그 동안은 사실의 판단 조차도 받지 못했는데 드디어 사실관계를 인정해주는 기관이 생겼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범죄였다.

아직 끝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조직으로 당당하게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끝까지 하려고 한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직 나를 용서하지 못했고, 그들을 용서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악의가 아니었기에 자신이 오히려 더 억울하다고 말한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고, 그들은 조직의 안온한 보호와 응원을 받고 있다.

어느 기관에서 내 진정 서류를 직장 내 괴롭힘 연구 자료로 쓰겠다고 통보가 왔다.

정작 그 기관은 내 서류를 조사해주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연구를 위해 서류를 쓰겠다고 한다. 나는 그 기관의 조사자를 위해 68페이지짜리 서류를 20줄로 요약해 주어야 했다. 세상에 어떤 직장 내 괴롭힘이 20줄로 요약이 될까. 세상은 나에게 폭행이나 욕설 따위의 간략한 괴롭힘 내용을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어른들의 기대를 먹고 자란다. 그들의 기대는 우리가 변덕을 부릴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피아노를 치다 그림을 그리면 왜 그렇게 끈기가 없냐고 물었고, 어른들의 기준에 맞는 플랜대로 우리가 따라오길 바랐다. 때로는 친구들의 은밀한 따돌림도 세상이 박제해 놓은 학교라는 틀 안에서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미숙한 어른의 잔인한 잔소리들, 왜 남들처럼 빨리 가지 못하냐는 무형의 채찍질을 맞으며 어른이 되어갔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8살부터 다닌 학교들과 별 다를 것 없는 또 다른 교실을 찾아 헤맸다. 어렸을 적 주워 먹고 자랐던 어른들의 기대들이 부대끼긴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안전한 그 교실 안에서 우리들만의 잔혹동화를 써가길 바랬다. 동화 속의 주인공은 조상님들이 임금을 놀리는 탈춤을 췄듯 꼰대를 풍자하고, 16세기 군주론을 쓴 마키아밸리처럼 헐벗은 본성의 아수라장에서 생존 기술도 늘려갔다.

우리는 어렸을 적부터 먹어왔던 어른들의 기대에서 추방당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크고 작은 일들에 항상 침묵해 왔다. 내가 겪은 일이 사회적 기대에 맞지 않는 일이라며 침묵하고, 짧은 경험으로 습득한 '세상이 외면할 것이라는 믿음'에 지레 수치심을 느꼈다.


아이가 친구에게 뺏긴 100원짜리 동전 때문에 억울해 오열을 하고 있을 때는 그 100원짜리 동전에도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 아이에게 100원짜리 동전을 던져주며 이제 그만 울라고 소리친들, 그 아이의 억울함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다들 각기 다른 이유로 외면당한 아이들이 울고 있다.


2012년 이후 학교폭력 정책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어른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 동안은 아이들끼리의 사소한 갈등이라고 넘어가면 그만이었을 일을 아이들이 해결해달라고 나설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학교폭력을 당하면 신고하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는 했지만, 현장에서는 ‘아이들이 사소한 일로 학교폭력 신고를 한다.’며 속앓이를 했다. 어른들의 우려대로 아이들은 은밀한 따돌림, 지나가다 들은 욕설, 친구들 간의 놀림을 신고하기 시작했고, 이것을 증명할 cctv도 없는 상태에서 다수의 진술에만 의존해 진위여부를 파악해야하는 학교 선생님들의 고충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지나 어느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타인에게 해가 될 행동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일부 아이들의 적극적인 신고로 어른들도 혀를 내두를 만큼 잔인한 학교폭력 문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세상은 분명 변했다. 이 모든 것은 어른들의 기대를 접어두고 아이들의 침묵을 깨는 것부터 시작 되었다.


나는 우리 어른들의 교실도 이런 과정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는 억울해도 마음을 숨기고 직장을 떠나는 사람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것은 억울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사소하다고 외면하거나, 침묵하지 않으면 직장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고 겁을 주거나, 동료의 잘못을 들춰냈다는 부조리한 시선이 쏟아지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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