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산적’이라고 해야 할지 ‘꼬치’라고 해야 할지 ‘꼬지’라고 해야 할지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엄마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나무 꼬치에 잡채용 소고기랑 다른 재료를 같이 꽂아 구운 이 예쁜 전을 ‘산적’이라고 불렀다. ‘꼬치’라고 부르는 친구도 있었고, 할머니나 이모들은 ‘꼬지’라고 말하기도 했다.(사전에는 산적의 뜻이 ‘쇠고기 따위를 길쭉길쭉하게 썰어 갖은양념을 하여 대꼬챙이에 꿰어 구운 음식’이라고 적혀있다. '꼬지'는 '산적'과 '꼬치'의 경상북도 방언이라고 한다.)
명절이면 엄마는 늘 산적을 만들었다. 음식은 눈으로 먼저 먹는 거라며 맛살의 빨간 부분을 꼭 앞으로 오게 꽂았다.(꽂게 했다!) 입맛 돋우는 색감을 위해 그다음엔 반드시 쪽파의 초록 이파리 부분을 꽂았고, 그 위에 고기와 느타리버섯을 차례로 넣었다. 파의 하얀 머리 부분을 맨 위에 꽂아주는 걸로 마무리. 어린 나는 엄마가 꼬치를 참 정성 들여 꽂는다고 생각했다. 대충 먹지 뭐 이렇게까지 예쁘게 꽂을 일인가? 하면서 퉁명스럽게 엄마를 돕던 시절이 있었다.(같이 꽂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인지는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더 정성스럽고 즐겁게 할 걸 그랬어!)
맛살을 세로로 길게 반 가르고 길이를 다시 삼등분 한 크기. 다른 재료도 비슷한 크기로 맞춰 나란하게 꽂았으므로 우리 집 산적은 언제나 작고 귀여웠다. 누구나 이렇게 생긴 걸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건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시어머니의 산적은 달랐다. 크기도 재료도 모두. 맛살을 반으로 왜 가르죠? 반 가르지 않고 통으로 길이도 절반으로 댕강. 햄도 들어가 있는데 이것도 큼직큼직 어른 손가락 굵기만 했다. 게다가 소고기는 온데간데없고 웬 노란 단무지랑 우엉이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산적에 단무지, 우엉, 햄이라니. 김밥인가? 살다 보니 산적에서 컬처쇼크를 받는 날이 다 오네.’
그래도 맛을 안 볼 수 있나? 투박해 보이는 새로운 산적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워낙 익숙한 것만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을 못하는 편이라 의심을 가득 안은 채로였다. 어어 그런데 이상하다... 생각보다 이게 괜찮네? 낯설긴 했지만 샛노란 단무지와 아삭한 우엉 덕에 색감과 식감도 확 살았다. 단무지는 김밥에만 넣는 건 줄 알았는데. 한 개 크기가 큼직해서 음식을 천천히 먹는 나는 산적꼬치 하나를 꽤 오래 들고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엄마 요리가 모양과 맛이 대체로 아담하고 정갈한 편이어서 그렇지 꼭 그렇게 소담스럽지 않더라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걸. 매번 먹던 재료만 먹어 버릇해서 그렇지 새로운 걸 넣어봐도 괜찮겠다는 걸. 큼직하니까 만들 때도 훨씬 편했고 미끄덩한 생고기를 꽂지 않으니 과정이 더 쉬웠다. 이 새로운 산적을 엄마한테 맛 보여주고 싶어 몇 개를 싸갔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몇 번, 명절이 가까워지면 시장 반찬 가게의 꼬치전을 유심히 들여다봤다.(그전엔 관심도 없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네!) 어떤 집은 새송이버섯을 폭 좁게 편으로 썰어 꽂아 놓기도 했고, 어떤 집은 가느다란 김밥용 햄을 꽂기도 했다. 직사각으로 썬 새송이버섯이 느타리버섯보다 크기 맞추기가 좋아서인지 훨씬 깔끔해 보이기도 했다. 하나둘씩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몇몇 친구들이 보내주는 명절 꼬치 사진을 보면 꽈리고추를 넣는 집도 있었고 애호박을 잘라서 꽂는 집도 있었다. 집집마다 이렇게나 다양한 산적을 먹는구나!
20대 후반의 새댁이었던 나는 낯선 산적을 의심했지만 40이 다 된 지금의 나는 그 맛을 의심하지 않는다. 좀 울퉁불퉁해도, 투박해도.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재료가 들어가 있어도 모두 괜찮을 거란 걸 안다. 기름 두르면 다 맛있다고 하지만, 기름에만 공을 돌리기엔 아까운 음식이다. 재료들을 같이 씹을 때 진하게 느낄 수 있는 맛의 조화가 각각의 산적에 있다. 모양은 달라도 틀린 삶은 없는 것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던 20대 초반의 나에게 ‘사는 길은 많다’고 진심으로 말해주던 목사님이 계셨다.그땐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젠 그 말뜻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은 나이가 되었다. 소고기는 나름의 쫄깃함으로, 단무지는 아삭함으로, 고추는 개운함으로, 햄은 어린이 입맛까지 사로잡는 너그러움으로 산적의 맛에 일조한다. 무엇을 넣든 문제 될 게 없다. 예상하지 못한 맛도 있고 길도 있다.
아무도 만나지 못했던 코로나 시절의 어느 설날. 우리 식구끼리 간단히 음식을 해 먹었다. 맛살 하나만 후다닥 사 와서 재료를 다듬고 남편과 아들 셋한테 “꽂아라!” 했다. 재료를 꽂는 건지 장난을 치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냥 두었다. 내 어린 시절 엄마처럼 맛살 빨간 부분을 어쩌고는 사치다. 눈으로 먹는 건 됐고, 계란옷 입혀 기름에 지지면 아무렇게나 막 꽂은 꼬치여도 다 맛있을 거라 믿으면서. 구운 산적을 쟁반에 척척 올려두고 우리 부부는 시원한 사이다 한 캔을 나눠 마셨다. 아이들은 맛살을 하나라도 더 먹고 싶어 하고 슬그머니 빼놓는 파는 예전에 우리 아빠가 그랬듯이 애들 아빠의 몫이 된다.
이제 애들이 좀 컸으니 이번 추석엔 같이 한 번 예쁘게 꽂아볼까... 싶다가도, 요즘은 굳이 나무꼬치에 꽂지 않고 재료를 길게 팬에다가 놓고 계란물 부어 정말로 전 부치듯 간편하게 굽는 게 대세인가 보던데!(쇼츠의 시대답다!)이래 구우나 저래 구우나 집집마다의 맛이 있는 음식,(선호도와 취향은 그래도 있기야 하겠지만)뭘 넣어도 틀리지 않은 산적꼬치의 매력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 다음 주 목요일, ‘음식 하나에 사랑과’ 마지막 글이 연재됩니다. 마지막까지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