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를 자주 찾아본다. 먹고 싶은 걸 정해서 찾아보기도 하지만, 알고리즘에 뜨는 걸 뚫어져라 바라보다 ‘저장하기’를 누르기도 한다. 오만 요리가 다 뜬다. '오늘은 또 뭐 해 먹나' 하는 생각을 얘가 읽고 있는 것도 같다. 내 검색어를 읽든 머릿속을 읽든 메신저를 읽든 요리가 빠질 수 없는 삶인 건 사실이지. 얼마 전엔 돼지 앞다릿살과 감자, 얼갈이배추, 시판 곰탕으로 간단히 만드는 순살 감자탕 영상이 떴다. 좋아, 오늘 저녁은 이거다. 등뼈째 못하겠으면 앞다릿살로 흉내라도 내보지 뭐. 순살 치킨도 맛있는데 순살 감자탕이라고 안 맛있겠어? 유명 셰프가 아니더라도 일반인 요리천재들의 고급영상 덕분에 따라 할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참 좋은 세상이다... 싶을 즈음. 아니 이 순살 감자탕 영상, 댓글이 너무 웃긴 거다.(진짜 웃겨서 웃기단 게 아니라...)
‘감자를 넣어서 감자탕이 아닌데 왜 감자를 넣고 감자탕이라고 하시는지.’
‘감자를 넣어서 감자탕 맞는데요.’
‘그게 아니라 뼈 이름이 감자여서 감자탕인 건데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자 때문이라고 하시는지’
거기다가, 40분 이상 푹 끓이라는 조리법에도 말을 얹는다.
‘가스 그렇게 오래 쓰면 가스비 폭발입니다.’
잠깐만, 내가 이상한 거야? 이게 지금 중요한 건가?
(인스타를 안 봐야지, 안 봐야지 하면서 또 들여다보고 있는 나도 웃기긴 한데) 어떤 연유로든 소위 조회수가 '터진'영상엔그런 종류의 댓글 하나씩이(물론 하나가 아니라는 점...)꽤 높은 비율로있다. 악플도 아니고 딱히 나쁜 말도 아니다.딴지를(?) 거는 느낌, 핵심은 그게 아닌데 ‘굳이...’ 싶은 느낌이 들뿐.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오히려 옳은 말 하는 경우도 많다. 옳은 소리인데 기분이 영 이상해...) 문제 될 거야 없다지만 그런 말들이 꼭 거기 필요할까싶다.
살림팁을 알려주는 영상에는 이런 종류의 댓글이 종종 있다.
‘근데 환경 생각을 좀 안 하시는 거 같아요.’
‘이렇게 하면 비닐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닌가요?’
‘텀블러는 안 쓰시나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뭐랄까. 나는 언제나 옳게 사는 듯한, 나는 되게 의로운 듯한, 나는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살고 있는데 너는 왜 그렇게 하니? 같은 그 뉘앙스가 가끔과하게 느껴진다.
어떤 아빠가 (아이돌 준비하는 아이인지 너무 예쁜) 딸아이 등교 준비 과정을 찍어 올린 영상에도 진지한 댓글이 달린다.
‘아이가 엄청 거북목인데 알고 계신가요?’
‘이런 거 찍어 올릴 때가 아니라 목 교정이 시급한 거 같은데요.’
‘초등학생이 저렇게 입고 가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전업주부의 고충을 유머를 곁들여 재미있게 찍은 영상에는 이런 댓글이 달린다.
‘워킹맘은 이런 모습조차 부럽다는 걸 아시는지...’
‘워킹맘은 너무 박탈감 느끼네요.’
묘하다. 악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플도 아닌 댓글. 지적인 듯 지적 아닌 지적 같은 말. 그냥 웃자고 다 같이 좋자고 재밌자고 올리는 짧은 영상 하나에 달리는 심각한 시선. 내가 너무 별생각 없이 받아들여서인가, 내가 F라서 이러는 건가.T인 내 친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말 안 하면 모르고 넘어갔을 텐데 이렇게 짚어줘서 아는 게 낫지!’
'그런 의도로 안 만들었어도 받아들이는 건 보는 사람의 몫이니까 뭐.'
‘여러 사람이 보는데 오히려 바른 정보도 전달되고 창작자한테도 도움 되고 좋지. 집단지성!’
아. 물론 F와 T는 거들뿐... ‘F라서, T라서’로 간단히 결론지을 게 세상에 어디 있겠나.(지금 F랑 T 갈라치기 하시나요? MBTI 맹신하시나요?라고 하시면 안 돼요, 하하하!)
순살 감자탕을끓이면서 생각했다. 그런 댓글 별로라고 말하지만 그래서 나는 잘하고 있나? 나도 바른말, 도움 되는 말이라는 방패를 딱 들고 누군가한테 빡빡하게 굴고 있진 않나? 알려주는 것도, 올바른 정보도, 걱정도 좋다만, 내가 아는 것과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취해서 필요 이상의 말들을 하고 있진 않나? 그것도 아주 무례한 방식으로?
몇 해 전 <유퀴즈 온더블록>에 나와서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에,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라고 대답했던 아이가 생각났다. 감자탕이 무슨 이유로 감자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는지는 국을 다 끓이고 나서도 여전히 모르겠지만(실제로 축산농가와 요리 전문가들도 다 다르게 말을 하고 있고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고 한다) 아무렴 어때? 간이형태로 끓인 이 감자탕에서 식당 감자탕 비슷한 한 맛이 나는데! 애들 살도 안 발라줘도 되고, 뼈 쓰레기도 안 나오고. 아이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들깨는 조금 줄이고, 내가 좋아하는 얼갈이배추는 식당보다 많이 넣고 이렇게나 괜찮은 한 끼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우연히 만난 간단한 영상 하나가 나는 고마웠다.
창작자들이 좋은 소리만 듣자고 콘텐츠 만들어 올리는 건 아닐 거다. 모두가 좋은 말만 듣고 살 수도 없는 거고.다양한 연령층이여러 경로로 손쉽게 의견피력을 할 수 있는 시대다.시비조가 아닌, 관심과 예의가 있는 다정한 조언이라면 필요할 때가 있다.그런 만큼, 진지해지지 않아도 될 것들은 그냥저냥 넘어갈 줄도 아는 여유를 지녀야 할 것 같다. 틀린걸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나나 잘하자’라는 마음. 옳은 소리도 중요하지만 때론 '그러려니' 할 줄도 아는 마음.
그런데 나도 감자탕 잘 먹고 ‘굳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니 어쩐지 꼰대 비슷한 게된 듯한기분이 좀 드네? 이렇게 쓰면서 한번 더 다짐하고 그러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