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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드리셋 Sep 05. 2024

감자탕의 감자가 뼈이름이든 포테이토든

때론 넘길 줄 아는 마음, 나나 잘하자는 마음

레시피를 자주 찾아본다. 먹고 싶은 걸 정해서 찾아보기도 하지만, 알고리즘에 뜨는 걸 뚫어져라 바라보다 ‘저장하기’를 누르기도 한다. 오만 요리가 다 뜬다. '오늘은 또 뭐 해 먹나' 하는 생각을 얘가 읽고 있는 것도 같다. 내 검색어를 읽든 머릿속을 읽든 메신저를 읽든 요리가 빠질 수 없는 삶인 건 사실이지. 얼마 전엔 돼지 앞다릿살과 감자, 얼갈이배추, 시판 곰탕으로 간단히 만드는 순살 감자탕 영상이 떴다. 좋아, 오늘 저녁은 이거다. 등뼈째 못하겠으면 앞다릿살로 흉내라도 내보지 뭐. 순살 치킨도 맛있는데 순살 감자탕이라고 안 맛있겠어? 유명 셰프가 아니더라도 일반인 요리천재들의 고급영상 덕분에 따라 할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좋은 세상이다... 싶을 즈음. 아니 이 순살 감자탕 영상, 댓글이 너무 웃긴 거다.(진짜 웃겨서 웃기단 게 아니라...)     


‘감자를 넣어서 감자탕이 아닌데 왜 감자를 넣고 감자탕이라고 하는지.’

‘감자를 넣어서 감자탕 맞는데요.’

‘그게 아니라 뼈 이름이 감자여서 감자탕인 건데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자 때문이라고 하시는지’


거기다가, 40분 이상 푹 끓이라는 조리법에도 말을 얹는다.

‘가스 그렇게 오래 쓰면 가스비 폭발입니다.’

   

잠깐만, 내가 이상한 거야? 이게 지금 중요한 건가?     




(인스타를 안 봐야지, 안 봐야지 하면서 또 들여다보고 있는 나도 웃기긴 한데)  어떤 연유로든 소위 조회수가 '터진' 영상엔 그런 종류의 댓글 하나씩(물론 하나가 아니라는 점...) 꽤 높은 비율로 다. 악플도 아니고 딱히 나쁜 말도 아니다. 딴지를(?) 거는 느낌, 핵심은 그게 아닌데 ‘굳이...’ 싶은 느낌이 들뿐.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오히려 옳은 말 하는 경우도 많다. 옳은 소리인데 기분이 영 이상해...) 문제 될 거야 없다지만 그런 말들이 꼭 거기 필요할까 싶다.   

 

살림팁을 알려주는 영상에는 이런 종류의 댓글이 종종 있다.

‘근데 환경 생각을 좀 안 하시는 거 같아요.’

‘이렇게 하면 비닐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닌가요?’

‘텀블러는 안 쓰시나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뭐랄까. 는 언제나 옳게 사는 듯한, 는 되게 의로운 듯한, 나는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살고 있는데 너는 왜 그렇게 하니? 같은 그 뉘앙스가 가끔 하게 느껴진다.     


어떤 아빠가 (아이돌 준비하는 아이인지 너무 예쁜) 딸아이 등교 준비 과정을 찍어 올린 영상에도 진지한 댓글이 달린다.

‘아이가 엄청 거북목인데 알고 계신가요?’

‘이런 거 찍어 올릴 때가 아니라 목 교정이 시급한 거 같은데요.’

‘초등학생이 저렇게 입고 가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전업주부의 고충을 유머를 곁들여 재미있게 찍은 영상에는 이런 댓글이 달린다.

‘워킹맘은 이런 모습조차 부럽다는 걸 아시는지...’

‘워킹맘은 너무 박탈감 느끼네요.’     


묘하다. 악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플도 아닌 댓글. 지적인 듯 지적 아닌 지적 같은 말. 그냥 웃자고 다 같이 좋자고 재밌자고 올리는 짧은 영상 하나에 달리는 심각한 시선. 내가 너무 별생각 없이 받아들여서인가, 내가 F라서 이러는 건가. T인 내 친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말 안 하면 모르고 넘어갔을 텐데 이렇게 어줘서 아는 게 낫지!’

'그런 의도로 안 만들었어도 받아들이는 건 보는 사람의 몫이니까 뭐.'

‘여러 사람이 보는데 오히려 바른 정보도 전달되고 창작자한테도 도움 되고 좋지. 집단지성!’

아. 물론 F와 T는 거들뿐... ‘F라서, T라서’로 간단히 결론지을 게 세상에 어디 있겠나.(지금 F랑 T 갈라치기 하시나요? MBTI 맹신하시나요?라고 하시면 안 돼요, 하하하!)     


순살 감자 끓이면서 생각했다. 그런 댓글 별로라고 말하지만 그래서 나는 잘하고 있나? 나도 바른말, 도움 되는 말이라는 방패를 딱 들고 누군가한테 빡빡하게 굴고 있진 않나? 알려주는 것도, 올바른 정보도, 걱정도 좋다만, 내가 아는 것과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취해서 필요 이상의 말들을 하고 있진 않나? 그것도 아주 무례한 방식으로?

몇 해 전 <유퀴즈 온더블록>에 나와서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에,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라고 대답했던 아이가 생각났다. 감자탕이 무슨 이유로 감자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는지는 국을 다 끓이고 나서도 여전히 모르겠지만(실제로 축산농가와 요리 전문가들도 다 다르게 말을 하고 있고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고 한다) 아무렴 어때? 간이 형태로 끓인 이 감자탕에서 식당 감자탕 비슷한 한 맛이 나는데! 애들 살도 안 발라줘도 되고, 뼈 쓰레기도 안 나오고. 아이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들깨는 조금 줄이고, 내가 좋아하는 얼갈이배추는 식당보다 많이 넣고 이렇게나 괜찮은 한 끼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우연히 만난 간단한 영상 하나가 나는 고마웠.      


창작자들이 좋은 소리만 듣자고 콘텐츠 만들어 올리는 건 아닐 거다. 모두가 좋은 말만 듣고 살 수도 없는 거고. 다양한 연령층이 여러 경로로 손쉽게 의견피력을 할 수 있는 시대. 비조가 아닌, 관심과 예의가 있는 다정한 조언이라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 만큼, 진지해지지 않아도 될 것들은 그냥저냥 넘어갈 줄도 아는 여유 지녀야  것 같다. 틀린 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나나 잘하자’라는 마음. 옳은 소리도 중요하지만 때론 '러려니' 할 줄도 아는 마음.


그런데 나도 감자탕 잘 먹고 ‘굳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 어쩐지 꼰대 비슷한 게 된 듯한 기분이 좀 드네? 이렇게 쓰면서 한번 더 다짐하고 그러는 거지 뭐! 



김치에 이어 또 사진이 없어서 에이아이의 도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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