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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 쓰는 윈디웬디 Jun 19. 2024

부조리한 세상에 던져진 존재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주인공 뫼르소는 양로원으로부터 엄마의 사망 소식을 전보로 받고도 별다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일하고 있는 선박 중개인 사무실 사장에게 경조 휴가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자 사장은 내심 불편해한다. 주말까지 끼어있기 때문에 내리 나흘을 쉬는 것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그런 사장에게 뫼르소는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엄마의 죽음을 마치 제3자의 부고처럼 대한다.


엄마의 죽음에 대해 슬픔을 느끼기보다는 장례식 참석을 위해 가야 하는 양로원이 얼마나 먼지, 다녀오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를 덤덤하게 가늠해 보는 뫼르소는 양로원에 도착해서도 양로원 원장이 고인의 시신을 보겠냐고 물었을 때, 괜찮다고 거절한다. 그가 장례식 기간 중에 보여준 무심한 태도는 훗날 우발적 살인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을 때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한다. 그가 장례식장에서 전혀 울지 않았다는 점, 엄마의 생일이나 나이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 관을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거나 밀크커피를 마셨다는 점,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온 다음 날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즐기고 코미디 영화를 보고 사랑을 나누었다는 사실이 '살인죄' 보다 더 부도덕하고 패륜적인 인물로 그를 부각시킨다.


사회 통념이 요구하는 변명이나 사죄가 없었기에 그는 철저하게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재판에서 결국 사형 선고를 받는다. 주인공 뫼르소의 무신경한 태도나 애매하고 기이한 사고방식은 사실 독자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카뮈는 왜 이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설정했을까. 작가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 사고와 자연재해들이 그저 이유 없이 벌어진다고 보았다. 인간의 선하고 악함과는 상관없이 어느 날 죽음이 불현듯 닥쳐오는 것처럼 뫼르소의 살인도, 그가 처하게 되는 삶 자체 대체로 부조리하다고 보았다. 이는 어쩌면 작가가 레지스탕스로 참전하면서 목도한 세계 대전의 참상이 작품 구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회적 규범과 통념이 규정하는 대로 살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카뮈는 '뫼르소'라는 인물을 내세워 반기를 든 셈이다.


알베르 카뮈가 1942년에  발표한 <이방인>은  29세 젊은 무명작가를 일약 현대 프랑스 문단의 주목받는 작가로 만들어준 작품이자 1957년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긴 소설이다. 억압적인 사회 관습과 삶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세상은 온통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며, 인간은 이런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한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입장이 반영된 소설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위의 말은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 미국판 서문에서 한 말이다. 작가에 따르면 뫼르소는 '적게 말하는 인물'이다. "그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 인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가 아는 것보다 더 말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도 의미한다"라고 설명한다. 재판정에서 뫼르소는 적극적으로 자기 변론을 하지 않았고 그들 또한 뫼르소의 이야기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범행 동기를 물을 때 앞뒤 정황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모두가 태양 탓이다"라고 뫼르소가 대답하자, 공분과 비웃음을 사며 결국 사형이 언도된다. 독방에서 형의 집행을 기다리는 뫼르소는 사제가 권유하는 속죄의 기도도 거절하고 자기는 과거에나 현재에나 행복하다고 느끼며 죽음을 받아들인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 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p.135~136_민음사)


 알베르 카뮈 자신의 작품 세계를 완성할 큰 그림으로 '부정(부조리)-긍정(반항)-사랑'의 3가지 테마를 정하고 집필을 이어 나갔다. 그 첫 단계인 '부조리'의 대표작이 <시지프 신화> <칼리굴라>와 더불어 <이방인>이었다. '부조리'에 이어 '긍정(반항)'테마인 두 번째 단계까지는 순조롭게 이어졌으나 마지막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은 196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카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다. 자신의 죽음조차 예기치 못한 부조리함의 대표적 예시였다.


독자들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방인>은 분명 쉽지 않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된 지 7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고, 해석과 관련하여 의견이 분분하고 수많은 질문을 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놀라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베르 카뮈무심한 듯 간결한 문체와 디테일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충격적인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플롯 구성도 신선다.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통계에 따르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이방인>이라고 한다. 부조리한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겪는 실존적 소외감과 이해받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불안과 고통을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질적이고 불편하지만 탁월한 소설이다.

#알베르카뮈  #이방인 #노벨문학상수상작  #실존주의문학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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