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마음의 훈련사 18화
우리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 시간이 다 되면 생명이 꺼져버린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곧 상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배워서 알 뿐입니다. 배워 아는 것이기에 일상 속에서는 그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우리는 먹고, 자고, 사랑하고, 다투며 살아갑니다. 삶에 필요한 것들은 매 순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지만, 시간이라는 건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기 때문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어렵지요. 그래서 또 한 해가 훌쩍 흘러버린 이 맘 때가 되어서야, 우리는 덧없이 지나간 시간에 대해 아쉬워하게 됩니다. 한 해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조차 가물가물한 이때, 시간은 누구에게도 다시 주어지지 않는 '한정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개들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흐른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개의 시간은 인간의 그것보다 7배에서 8배 정도 빠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몇 시간의 짧은 외출도 개들의 입장에서는 거의 하루가 지난 것과 같은 느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상쾌한 어느 날, 또복이는 저를 바라보며 반짝이는 눈망울로 산책을 가자고 재촉을 합니다. 함께 산책을 나서는 순간 그의 눈빛엔 세상의 모든 기쁨이 담깁니다. 그런 또복이를 바라보며 함께하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또복이는 태어나 지금까지 벌써 5년 하고 1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30kg가 넘는 대형견인 만큼 기대수명은 약 10년 정도라고들 합니다. 아무리 길게 봐도 12년에서 13년 정도가 최대이겠지요. 그러니 지금 또복이는 그의 인생 전반기를 거의 마무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작은 몸에 핼쑥한 얼굴로 내 집을 찾아왔던 '꼬꼬마'가 어느새 성견이 되어 견생의 중간쯤 어디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빠르게 흐르는 또복이의 시간을 바라보며, 저는 비로소 제 곁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강아지의 시간'은 인간의 것에 비해 너무나도 짧기에 우리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시간의 유한성'에 대해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라는 개념은 나의 어머니, 장모님, 아내, 형제에게까지 이어집니다. 그들의 시간도 유한다는 사실. 흘러가버린 시간을 다시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곧,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하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들의 시계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부모님과의 함께 할 수 있는 식사 시간은 몇 번 정도 남았을까요? 안부 전화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엄마의 목소리는 또 얼마나 남았을까요? 열 번?, 스무 번? 생각은 하지만 여전히 핸드폰을 들어 익숙한 그 번호를 누르는 일이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어제처럼 오늘도 잘 지내고 계시겠지” 하며, 그저 아무 일 없는 것이 좋은 일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렇게 또 하루를 흘려보내곤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제 곁에는 '또복이'가 엎드려 있습니다. 또복이는 언제나 제 곁에 있으려 애를 씁니다. 누가 간식을 주거나 고양이 같은 흥미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 한, 제 옆에 조용히 머물면서 그저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또복이는 알고 있던 것입니다.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요. 이 순간이 언제 꺼져버릴지, 그를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던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는 걸...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던 것입니다.
또복이가 가장 즐거워하는 '산책의 시간'을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야겠습니다. 아마도 어제와 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대화를 나누겠지만,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니?” “어디 아픈 곳은 없지?”라는 상투적인 말들을 들어야겠습니다. 그것도 아주 자주 들어야겠습니다. 그런 소소한 것들이 공허하게 떠나보내 버린 시간의 빈틈을 따뜻하게 메꾸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