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나가기와 몰래 거절하기 기능을 간절히 바라며
버릇처럼 또 상단의 알림 메시지를 지웠다.
그나마 그리 반갑지 않은 몇몇 단톡방들은 알림 설정을 꺼두어서 소리나 진동으로까지 나를 놀래키진 않지만, 어느새 슬그머니 핸드폰 상단에 카톡 말풍선 아이콘이 떠있는 걸 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잽싸게 지우곤 한다.
어디 그뿐인가. 카톡을 열 때마다 좌르륵 떠있는 빨간 동그라미 속 숫자들은 마치 밀린 방학 숙제 같아서 아예 빨간 동그라미가 눈에 띄지도 않게 화면 아래로 내려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런 단톡방들은 다들 어찌나 활발한지 하루에도 몇 번씩 새 글이 올라오는 통에 카톡을 열 때마다 늘 상위권에 포진하여 나를 압박하곤 한다. "너 이래도 확인 안 할 거야?" 협박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카톡 세상 안에는 메시지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빛의 속도로 확인하는 반가운 단톡방이 대부분이지만, 친밀감이나 관심도, 의리, 호감 등과는 관계없이 비자발적으로 초대된 몇몇 단톡방들은 이처럼 미뤄놓은 숙제처럼 카톡 안에 상주하며 시도때도 없이 나를 쿡쿡 찌른다.
한때 단톡방 탈출을 심각하게 고민해보기도 했다. 카톡 프로필 이름을 바꾼 다음, 슬며시 나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프로필 이름을 바꾸어도 상대방은 그의 폰에 저장된 내 이름으로 보이기 때문에 나 혼자 프로필 이름을 바꾸는 건 아무 소용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결국 탈출을 포기했다.
이런 단톡방들은 (내 기준에서는) 예의를 갖춰야 하는 분들이 초대해주신 경우가 대부분이라 차마 'OO님이 나가셨습니다'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게시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그 방을 나가려면 왜 나갈 수밖에 없는지 명확한 이유도 있어야 하고, 그동안 감사했다는 예의바른 인사도 남겨야 하니 이래저래 탈출은 쉽지 않았다. 단지 빨간 동그라미 속 숫자가 늘어가는 게 불편해서 나간다고 할 순 없을 테니까.
그러니 나로서는 눈을 질끈 감고 빨간 동그라미 숫자들을 애써 못본 체하며, 그저 투명인간으로 최대한 존재감 없이 단톡방에 머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메일도, 문자도, 우편물도 바로바로 정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상 하루가 다르게 숫자가 올라가는 단톡방 옆 빨간 동그라미들을 무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끝내 참지 못하고 클릭클릭해서 그 동그라미들을 없애곤 했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끝내 단톡방을 나가지 못하는 나의 소심함이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말도 행동도 더 많이 조심해야 하고 신중해야 하며 지켜야 할 예의의 범주도 넓어지니 달리 뾰족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를 단톡방으로 초대한 이에게 서운함과 괘씸함을 안겨주면서까지 기어이 단톡방을 나갈 만한 배짱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부디 카카오가 나를 포함한 많은 소심 유저들의 소망인 '몰래 나가기'와 '단톡방 초대에 몰래 거절하기' 기능을 하루빨리 만들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늘도 나는 숙제 같은 빨간 동그라미를 보며 단톡방 감옥 탈출의 날을 간절히 소망한다.
역시나 낀 세대 소심 직장인의 안온한 생존은 결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