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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Oct 12. 2022

소식좌들을 보며 든 생각

나를 살린 감정노트-8화


[밥맛없는 언니들]이라는 유튜브 방송이 조회수 200~300만을 찍었다. 연예인들이 체중 관리를 위해 적게 먹는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소식좌가 큰 관심을 받은 건 그들이 적게 먹어도 너무 적게 먹어서다.


비스킷 하나를 먹다 말고 남기는가 하면, 김밥 한 줄을 다 먹었다고 하는데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거의 새 김밥이다. 봉지 라면을 끓이면 하나를 다 못 먹는다.


나름대로 소식을 하고 있는 나도 그걸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저걸 먹고 사람이 살 수가 있을까.


대표 소식좌 박소현 씨는 최장수 MC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의미겠다.


배탈이 나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박소현 씨가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저렇게 조금 먹는데 위에 기별이나 갈까. 설령 음식이 상했어도 너무 소량이라서 탈이 나기가 쉽지 않겠다.


나는 어딜 가면 식사를 천천히 먹는 편에 속한다.

그나마 사회생활을 하면서 빨라진 게 이 정도다.

남들이 먹는 속도에 맞추는 게 힘들어서 시작부터 음식을 남길 생각을 하고 천천히 먹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소식좌들에 비하면 빨리 먹는 셈이다.


급한 일도 없는데 집에서 밥을 빨리 먹게 될 때가 있다. 천천히 씹어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아서 소식좌 영상을 찾아서 봤다. 소식좌처럼 적게 먹을 생각은 애당초 없지만, 천천히 먹는 건 배우고 싶다. 혼자 있을 때만이라도 천천히 식사에 집중하려고 노력 중이다.


한국에서 조직생활을 하면서 소식좌처럼 씹었다가는 맨날 식당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밥을 먹게 될 것이다. 뭐든 빨리빨리 하는 문화에서 '소식좌'가 생길 자리는 없다.


소식좌들에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음식을 삼키지 않는 방법'이다. 소식좌들이 말하는 '목구멍을 닫는' 느낌이란 게 어떤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린 시절 특정 음식을 삼키지 못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이야 고기를 먹자면 잘 먹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꽤 오랜 기간 나는 고기 없이도 밥을 잘 먹었다. 학창 시절에는 한때 채식을 해본 적도 있다.


학교를 들어가기 전 어린 꼬마였을 때부터 길면 초등학생 때까지도 나는 고기를 잘 못 삼켰다.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다. 살코기는 그나마 먹을 수 있었지만, 비계가 조금이라도 붙은 고기 한 점은 나에게 최악의 음식이었다. 식감은 둘째치고 비계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역해서 삼키고 싶어도 쉽게 삼킬 수가 없었다.


미역국에 들어있는 비계 붙은 소고기를 엄마 몰래 버린 적도 있다. 눈을 질끈 감고 숨을 쉬지 않고 꿀꺽 삼킨 적도 있다. 그럼에도 먹고 나면 눈가가 촉촉했다.




소식좌 영상을 보면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들을 따라 천천히 꼭꼭 씹어먹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겠다. 생각해보니까 이상하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밥을 먹이면서 천천히 안 먹는 걸로 아이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빨리 안 먹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한다. 엄마와 아이가 밥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는 건 쉽게 경험하거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한쪽은 빨리 먹자고 하고 한쪽은 밥을 입에 물고 삼키지 않는다. 나도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을 했다.


엄마들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밥을 먹이는 데서 일이 끝나지 않고 식탁을 치우고 그릇을 씻는 일이 남아있다. 아이가 식사 시간을 길게 끌면 답답할 것이다. 빨리 어디를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소식좌에서 생각이 식사 교육으로 옮겨간다.

그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저렇게 천천히 먹게 된 것은 아닐 텐데,  어린 시절 그들의 부모님은 천천히 먹는 것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자랄 때 얼른 먹으라고 재촉을 받고 빨리 먹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어쩌면 인간은 원래 지루할 만치 천천히 먹게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후천적으로 빨리 먹도록 훈련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 때는 빨리 먹는 게 잘 먹는 거라고 하더니,

성인이 되니까 천천히 오래 씹는 게 좋다고 한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건가.

아이가 천천히 먹는 걸 뭐라고 할 게 아닌 일인 듯싶다.


#적게 #먹기 #소식 #하기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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