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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an 04. 2023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먹는 데 진심이다


그런 날이 있다.

특정한 음식이 갑자기 너무너무 무지무지하게 먹고 싶은 날. 얼마 전 내 입맛을 당긴 건 보드랍고 노오란 콩고물이 뿌려진 '인절미'였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찾아온 손님이었다. 그 손님을 생각하면 자꾸 침이 꼴깍 넘어갔다.


해가 저문 저녁. 이 시간에 어디 가서 인절미를 살 수 있을까. 생협은 늦게 가면 진열대가 텅 비어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 집을 나섰다. 만약 없다면 거기서 3~4분 거리에 있는 떡집에 가기로 했다.  


인절미 생각에 달뜬 나는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떡코너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게 웬 떡인가. 인절미가 한팩 남아있다! 무려 50% 스티커까지 붙어서! 어머나 예쁘기도 하지, 날이다 날이야!


그런데 이상하다. 왜 진열대에 있지 않고 계산대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을까. 기분 좋게 올라간 내 눈썹을 보신 모양인지 조합원님이 물었다.


"사실 거예요?"


이 질문을 받은 건 내가 아니었다. 계산대 옆에 서있던 다른 사람을 향했다. 그때 알았다. 손님 한 분이 인절미를 살까 말까 생각 중이었던 것이다. 직원분은 맛있으니까 세일할 때 사서 드셔보라고 구매를 촉진하고 계셨을 터인데 마침 내가 딱 입장한 것이다.

이런 묘한 상황을 보았나.어쩐지 계산대에 올려져 있더라니. 하나 남은 인절미를 눈앞에서 놓치고 마는구나.


손님은 나를 보더니 "급하시면 사세요~"라고 양보 의사를 비추셨고, 나는 아녜요 아녜요 손사래를 쳤다. 나는 영혼이 잠깐 나간 채로 매장을 한 바퀴 돌았다. 인절미를 대체할 만한 것이 (콩가루도) 보이지 않아서 30초 만에 빈손으로 매장을 나가려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아무것도 안 사고 그냥 가요~?"

(참고로 단골이라 안면이 있다)


나는 인절미 사러 왔다는 소리는 차마 안 하고 혹시 싼 게 있나 들러본 거라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뒤이어 빠른 걸음으로 동네 떡집으로 이동했다. 오래 살았지만 여기서 떡을 사본 적이... 싶은 가게다. 가게 투명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역시 인절미는 팔리고 없고 낮동안 선택받지 못한 떡들 뿐이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나는 정말 오늘이 날인데...


근처 마트로 걸음을 옮겨본다. 꿩대신 닭으로 인절미 과자나 살까 싶었다. 과자에도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런데 집어든 과자의 성분표에는 팜유와 함께 그램수 높은 당분이 적혀 있었다. 가짜 인절미를 먹느니 내일 찐 인절미를 먹자 싶어 내려놓았다.


그 뒤에도 몸은 마트 안을 맴돌았다. 인절미를 먹을 생각에 저녁을 먹지 않고 뛰쳐나온 터라 그냥 나갈 생각이 없다. 야채- 과일 코너와 과자코너를 두세 바퀴쯤 돌다가 생각지 않게 집어든 건 하루견과. 할인 중이었다. 어차피 집에 견과류도 없는데 잘 되었다. 이거라도 사야지.


기분 좋은 할인 2,020원


여기서 집에 갔느냐, 하면


아니다. 견과류를 샀으니 당연히 집에 가는 줄 알았는데 두 발은 전통시장을 향하고 있었다. 떡집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것도 빠른 걸음이었다. 그러나 내 떡은 없었다. 추운 저녁시간이라 떡집 대다수가 문을 닫은 후였다. 벌써 몇 번째 허탕인지.


빈 속으로 시장을 돌던 나는 단돈 2천 원에 김이 모락모락, 입이 데일 듯이 뜨거운 붕어빵을 후후 불며 마음이 풀린다. 역시 겨울엔 붕어빵이다. 그나저나 오늘 인절미 덕에 많이 걸었네.


붕어를 먹으며 궁금했다.

나는 내일 인절미를 사러 갈까?

내일의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연거푸 허탕을 쳤어도 달뜬 마음은 즐거웠다. 오늘의 이 달뜸은 '유쾌한' 열정이다. 브레이크 고장나 세상 음식을 다 먹고 싶은 호르몬의 폭주도 아니고,

스트레스를 내던지기 위한 폭식도 아니고,

다른 건 생각 안 나고 요게 딱 먹고 싶다, 하는 욕망은 어딘가 귀여운 데가 있어서 들어주고 싶어 진다.


웃기게도 인절미를 향한 이날의 열정은 다음 날 어디로 사라져서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는데


며칠 후....






결국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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