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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사진관 Sep 26. 2017

긁지 않은 복권 모스크바 夜(야행)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러시아 여행가요!"

 “응, 거길 왜?” 

러시아 모스크바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다들 처음에 이런 반응이었다. 사실 러시아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나 또한 믿지 않았다. 러시아라 하면 그저 옛날에 옛 소련이라는 느낌만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치 동계올림픽으로 가까워졌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기에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러시아는 보통 유럽을 여행 가기 전, 스톱오버를 통해 모스크바를 하루 정도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왠지 내년 월드컵을 앞두고 있어서 뜰 것만 같은 여행지였다. 모스크바는 긁지 않은 복권과도 같은 도시였다. 


색으로 비유하자면 붉은 색감이 강렬했다. 

영어는 딱히 통하지 않았지만 원래 잘하는 영어가 아니기 때문에 상관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마저도 좋았다. 


청룡열차 승차감, 모스크바 지하철

모스크바 지하철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영어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어가 눈 앞을 아른아른하였고 아직은 여행 정보가 많이 없는 곳이라 무언가 하나하나 여행을 해 나아간다는 게 도전 그 자체인 느낌이었다. 공항에 내려 시내로 직통하는 열차를 타고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두 번의 환승으로 모스크바에 도착했기에 샤워부터 했다. 호텔에서 그냥 시간을 보내기엔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기에 붉은 광장으로 향했다. 붉은 광장으로 가기 전 나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긴 터널이었다. 바로 모스크바 지하철이다! 


러시아 지하철은 방공 목적이 있기 때문에 엄청난 깊이를 자랑한다. 특히, 세계 3대 지하철이라고 불리는 모스크바 지하철(뉴욕, 도쿄, 모스크바)은 메트로 투어가 있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하다. 1935년에 개통되어 8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갤러리와 같은 내부로 유명하다. 지하철역도 무려 180여 개가 넘는다. 지하철 배차간격이 30초 남짓으로 매우 짧다. 한국의 지하철처럼 뛰어와서 타거나, 밀거나 하지도 않는다. 무리해서 탈 필요가 전혀 없다. 승차감은 청룡열차 수준! 지하철 내부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화려한 그림부터 구 소련 정치를 선전하기 위한 그림까지 다양한 조각과 그림들로 이뤄져 있다. 나름 방공 목적으로 깊은 곳에 위치한 지하철이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매우 빠르다. 헉! 하다가 발을 헛디딜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

모스크바 지하철
모스크바 지하철

모스크바의 첫인상은 우여곡절 끝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영어도 못하지만 더 낯선 언어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이 사람들 키는 또 왜 이리 큰 거야. 공항철도를 타고 시내로 가는 길에 급하게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를 찾아본다. 이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아 찾았다.


모스크 바흐면 떠 오르는 이미지인 테트리스 성당이라고 불리는 성 바실리 성당이 있는 붉은 광장으로 갔다. 막연하게 쌀쌀하고, 쓸쓸할 것 같던 인상과는 달리 관광객들로 붉은 광장은 북적였다. 어렵사리 온 이 낯선 땅에서 마주한 첫 일몰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모스크바의 중심 붉은 광장

모스크바 붉은 광장

갤러리와 같은 지하철을 지나 붉은 광장에 도착했다. 책에서만 보던 장소에 도착했을 때의 뭉클함은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 모스크바 중심에 있는 크렘린과 붉은 광장은 거대한 제국 러시아를 상징하는 장소이다. 크렘린은 러시아어로 요새를 의미한다. 크렘린(Kremlin) 궁전은 14세기 ~ 17세기 러시아와 외국의 뛰어난 건축가들이 건설한 궁전으로, 대공이 거주한 왕실이자 종교적 중심지였다. 크렘린 궁전은 13세기 이래로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정치적 사건들과 깊은 연관이 있다. 크렘린 궁전 성벽 아래의 붉은 광장(Red Square)에 있는 상트 바실리 대성당(Saint Basil’s Basilica)은 러시아 정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이다. 모스크바 여행의 중심지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테트리스 한판 하실래요?” 테트리스에 나오는 성당으로 잘 알려진 성 바실리 성당. 사실 성 바실리 성당의 매력에 이끌려 모스크바 여행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볼거리가 더 많아 놀랬다는 사실! 많은 관광객들이 성 바실리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러시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축물 중 하나로 높낮이와 모양이 서로 다른 9개의 양파 모양 지붕으로 구성된 성당이다. 이반 대제는 몽고군에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설계를 명하였는데, 1561년에 성당이 완성되자 그 아름다움에 탄복하며, 두 번 다시 똑같은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설계자들을 장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오후 4시 전까지 내부 입장도 가능한데 성당 내부 또한 매우 아름답다. 입장료는 500 루블이다.

모스크바 첫 일몰. 사람들이 다리 위에 많이 있길래 무작정 걸어가 보았다. 긴 비행의 피곤함을 날려주었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 일몰

단지 그냥 백화점이 아닌 곳

모스크바 굼백화점(ГУМ)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고 쉬어가는 느낌이었다.

붉은 광장의 밤을 밝히는 굼 백화점. 서울의 대형 백화점 2, 3개를 이어 붙인 규모의 굼(Gum) 백화점을 만날 수 있다. 사실, 크렘린과 성 바실리 성당을 구경하다 보면 바로 옆에 있는 백화점이라 뭐가 있겠나 싶지만 그 내부는 굉장히 아름답다. 놀라움을 금치 못할 만큼 화려한 외관을 지나 입구에 들어서면, 백화점이라는 건물이 상징하는 통념은 사라지고 200여 개의 점포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균형감을 보여준다. 유리 지붕은 외부 날씨와 관계없이 안락한 자연 채광을 선사하고 밤에 온 굼 백화점은 마치 우주선에 타있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압도적인 화려함을 자랑하는 굼 백화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장'이었다. 1889년 공장으로 건립되어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독재 체제를 겪으며 1,200여 개의 점포를 가진 국영 백화점으로 변화했다. 공장에서 상점, 그리고 백화점으로 공산주의의 상징에서 자본주의의 첫걸음이 된 이곳은, 압도적인 외관에 이끌려 들어와 양손에 쇼핑백 하나 없이 나가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는 명소이다. 1층에 있는 작은 슈퍼마저도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특히 4층 푸드코트는 러시아 음식을 한 곳에 모아 놓았기 때문에 이것저것 먹어 보기 좋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데 꼭 한번 먹어보도록 하자.

모스크바 굼백화점(ГУМ) 야경

모스크바 고리끼 공원(Park Gorkogo)

모스크바 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원. 참새 언덕보다 좋았다.  

유람선을 타러 온 고리끼 공원은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유람선 타기 전에 공원에서 그냥 쉬다가 타야지 싶었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사람도 많고, 덕분에 들개처럼 뛰어다녔다.

뜻 밖에 장소

뜻 밖에 들개

모스크바 유람선

기대가 없어서 더 좋았던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 코스라서 더 좋았던 곳일까? 일몰 시간에 맞춘 유람선은 그야말로 한 해의 전반전을 직장생활로 달린 나에게 선물과도 같았다. 고리키 공원은 모스크바의 센트럴파크라고 불릴 만큼 현지인들에게 휴식처이자 인기 높은 휴식처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에만 30여 곳의 식당이 있고 아이스크림, 솜사탕, 팝콘 등 이동식 간식 판매대가 설치돼 있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마지막 오후의 볕은 온몸에서 흥분의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다.


 ‘아 그래 이 순간!’ 막상 휴가를 내서 와도 회사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게 잊혔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보면 얼마나 더 좋을까? 사진기를 들고 있지 않은 손이 시리다.


불시착

어떤 뜻밖의 공간, 어떤 단어로 도시를 표현할 수 있을까?

가고 싶었던 파리를 가기 위해 경유를 하면 비행기 요금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가게 된 러시아

뜻밖에 매력에 빠져

비행기 표를 늦췄다.


영어도 못하지만

영어도 안 통했던 모스크바

생각해보면 같은 언어를 써도 안 통하는 회사생활

인생이 생각처럼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애를 쓰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고,

아무 생각 없던 것이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 도시는 그런 곳이었다.


빛이 예쁜 도시

‘백야’라는 것을 살면서 피부로 느끼는 건 몇 번이 있을까

북쪽에 위치해 있는 모스크바, 상크페트부르크는 6월이 다가오자 백야가 시작된다. 

백야현상으로 커튼은 두껍고, 햇볕을 못 받은 사람들은 적당히 친절함만 가지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즐겁기만 하다. 1차로 밥을 먹고, 2차로 술을 마셔도 해가지지 않으니 이렇게 축복받은 시간이 더 있을까 싶다. 

오후 4시를 보통 골든아워라며 빛이 예쁜 시간을 말하는데 

백야가 있는 이곳에서 빛이 예쁜 시간은 오후 7시였다. 

오후 7시가 이토록 예쁠 수 있다니.

한편으로는 백야현상은 우리나라에 없어서 다행이다.

1차, 2차 회식을 하고도 날이 밝다면

팀장님은 회식을 끝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오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오후

백야로 오후 7시가 예뻤던 도시

"오후 7시가 이렇게 예뻤어? 왜 몰랐지"

- 야근하느라


생애 첫 소매치기 

치안이 안 좋다고 해도 어디서도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았는데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경험을 마주하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버스를 타기 전 친구의 잠바에 손이 쓱 들어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누가 훔쳐갔다고 했고 정확히 누가 들고 갔는지 알아서 그 사람에게 한국말로 따졌다. 핸드폰 달라며. 하지만 자기는 아니라며 다른 사람이 들고 갔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당황한 나머지 일단 버스에서 내렸는데 내리고 난 순간 알게 되었다. 소매치기 범인은 아직 버스 안에 있고, 범인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아 버스 안에서 핸드폰에 전화를 해볼걸!” 늦은 후회였다. 정말 늦은 후회였다. 당황하지 않고, 침 참하게 대응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처음 당한 놀람 앞에서 침착할 수 없었고 흥분했다. 

몇 없는 상크페트부르크 경찰서를 가서 도난 사실 확인증을 하나 받으면 되는데 경찰서는 기다리라는 말 밖에 하지 않는다. 이럴 때면 고객에게 응대를 잘해주는 우리나라가 최고다 싶었다. 반신반의하며 대사관에게 연락했다. 대사관에서 해준 도움으로 확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살면서 추상적인 형용사, 감정에 대해 얼마나 느끼고 있었을까? 분명 안 좋은 일을 여행지에서 당했지만 사람이 당황스럽고, 그저 놀라운 상황에서 느끼는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만 차분했더라면.. 다시 이 같은 상황을 마주 하면 끔찍하겠지만 같은 상황을 마주할 때 나는 침착할 수 있을까? 다시금 물어보게 된다.

모스크바는 붉은 색감이 강했고 이에 반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채도가 낮은 도시였다. 

기대감이 덜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긁지 않은 복권 같은 느낌이랄까? 

‘백야’라는 것을 살면서 피부로 느끼는 건 몇 번이 있을까?

기대감이 덜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여행을 다녀온 친구, 휴가를 다녀온 선배에게 묻는 질문은 

“뭐가 맛있었어요?”

“뭐 샀어요?”

“뭐 봤어요?” 

“경비는 얼마 들었어요?” 등등일 것이다.

딱히 질문이 없다기보다는 나 또한 그런 질문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는 내가 줄 곳 여행을 다녀오면

“파리를 처음 도착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

“백야현상을 느낄 때 피부가 느끼는 느낌은?”

“스테이크를 먹을 때 맛은 어땠어?” 

흔히들 물어보는 질문과 다른 질문을 물어보곤 했다.

처음엔 변태스럽다 생각했지만,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여행 중간중간에 느끼는 감정에 대해

여행이 끝난 이후에 나는 얼마만큼 돌아보고 있을까?

사실 여행을 가면 좋은 건 회사를 안 가서 좋아요!라고 말하지만 

여행 전에 계획했던 곳과 다른 곳에서 우연히 만나는 지역에 대한 반가움

그냥 들어가서 시킨 커피 한 잔이 맛있던 곳

여권을 두고 온 줄 알았는데 가방 깊숙이 있어 순간 당황했던 순간 

휴가를 다녀온 뒤 출근을 하면 5분이면 여행 간 기억을 까먹고

10분이면 시차적 응이 된다.

순간순간의 감정을 잊고 있나 보다.

누군가 여행을 다녀오면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에 대해 호기심을 가져보기로 했다.

잊혀있던 여행에 기억

피부로 느끼던 온도, 당황스러웠던 감정 등등

얄팍하게 남아 남겨진 감정들을 건들 이는 질문을 해 본 적이 있나 싶다.

다녀온 여행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게 되면서 또 다른 여행이 되는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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