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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지사진관 Oct 16. 2017

서른 살 뉴욕 여행!

'서른'그 반짝이는 이름 가을에

서른 살의 여름에 첫 번째 책이 나오고 감사하게도 반응이 매우 좋았다.

책이 나오면 회사생활에 조금 더 다른 변화가 있을 줄 알았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평소처럼 지옥철로 출근을 하며,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가끔 불리는 대리라는 직함보다 작가라는 호칭이 때론 부담스럽기도 했다. 


많이 받는 질문 중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세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딱히 없는데요……” 미술을 좋아해서 미술관만 다녀본다던가 음식을 좋아해서 도시에서 먹을 수 있는 맛집을 다니거나, 패션에 관심이 있어 쇼핑을 한다던가 내가 다녔던 여행은 딱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지가 않다. 그저 지친 일상의 탈출구였다. 


그렇다 보니 어떤 여행을 떠나도 어떤 여행지를 가도 느끼는 감정이 비슷했다. ‘우아 좋다’, ‘좋네’ 등등. 사실 회사를 벗어나기만 하면 휴식지로서 어디든 좋지 않을까? 역시나 특별한 목적이 없긴 하지만 ‘서른 살 뉴욕’이라는 한 줄 명사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특별할 것 같던 서른 살

이십 대가 끝났다는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

그때만 느낄 수 있기에,


서른 살이 되기 전에 20대에 마지막 무엇을 할지 버킷리스트를 만들곤 했다.

시간은 빠른데

마음 아니 몸만 느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휴가 전날까지 야근을 하다 보면 내일 휴가를 가는 건지, 출장을 가는 건지 모호해진다.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는 내가 여태까지 만났던 기류 중에 가장 무서웠던 경험이었다. 옆에 앉은 외국인은 커피를 쏟기도 하고 나의 기내식 소시지는 천장까지 점프하는 슬랩스틱을 보여줬다. ‘와, 비행기가 떨어질 수도 있겠다!’를 비롯해 정말 별의별 아찔한 생각들이 스쳐갔지만 담담하게 응대하는 스튜어디스를 보니 덤덤해졌다. 

어렵게 뉴욕에 도착했다. 약속했던 셔틀버스가 1시간에 1대밖에 없다는 사실은 두 번째 절망이었다. 친구는 택시 어플을 추천해줬는데 다운로드하고 회원 가입하기까지 무려 30분 이상이 걸렸다. ‘휴, 난 참 아날로그적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8번가를 지나 일주일 동안 지낼 집 앞에 도착했다. 숙소에는 4개의 방이 있었고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동시에 함께했다. 거실에 모여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오늘 좋았던 곳, 숙소 근처 맛집 등의 정보를 포스트잇에 남겨주기도 했다. 어렵사리 도착해서인지 작은 것 하나도 따뜻하게만 보였다. 


직장생활을 하다 최대 5일 휴가를 내고 주말까지 붙이면 이동거리 빼고 약 7일이라는 빠듯한 시간이 나온다. 이 시간 동안은 일명 뽕을 뽑기 위해 다리에 불이 나도록 보고, 찍고를 반복한다. 직장 생활할 때 보다 두 배로 부지런해지는 것 같다.


여행에서 늦잠 

뉴욕은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막연하게 가보고 싶던 도시였다. 브런치와 커피를 마시며 뉴요커처럼 살아보고 싶은 곳. 예전이면 관광지 위치를 찍어 빠릿빠릿하게 돌아다녔겠지만 그럴 힘도 없었다. 몇 시인지 모르게 늦잠을 잤다. 씻고 일어나 뭉그적거리며 옷을 입고 근처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와 브런치를 시킨다. 잘 읽지도 못하는 영자신문을 앞에다 두고 이해하는 척 한 줄 두줄 읽어본다. 커피가 나오자 커피와 신문과 크루아상 한 조각을 예쁘게 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러곤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여행의 여유 #휴가 3일 차. 누군가 이렇게 올렸다면 여행에서 또 허세네 자랑이네 하겠지만 내가 하니 로맨스다.


딱히 한 거라곤… 필름 사진기 하나 들고 걸었다. 뉴욕에서 살고 있는 친한 동생 덕분에 호보 캔이라는 지역으로 넘어가 뉴욕의 노을도 눈으로 담았다. 바쁘고 사람 많고 복잡한 이 도시에서 내가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여행지는 개인 취향을 반영한다.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

날씨가 참 좋았던 작년 9월 뉴욕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기차역과 서점이었다. 뉴욕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은 뉴욕 맨해튼 12 스트릿과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건너편으로는 유니언스퀘어가 있다. 스트랜드의 첫인상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맨해튼의 브로드웨이와 12번가 모퉁이에 빨간 바탕에 하얀색 글씨의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 간판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스트랜드는 1927년 리투아니아 이민자의 아들 벤자민 베스(Benjamin Bass)가 영국의 유명한 출판 거리 이름을 따 설립한 중고서점이다. 지금은 아들인 프레드와 손녀 낸시가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

스트랜드 서점(strand bookstore)은 헌책방으로 시작했지만 약 25년 전부터 신작 판매도 병행하고 있다. 고객 요구에 맞춘 변화로 그 반응은 긍정적이다. 특히 좋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뉴요커, 관광객 등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신간, 중고서적뿐만 아니라 희귀본, 절판본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해 250만 권의 책이 스트랜드를 통해 들어오고 나간다. 좀 우습긴 하지만 이런 걸 꿈꿨는지 모른다. 


여행 중에 서점에 들러 사진 책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상상을… 중고서점이라서 그런지 어마어마한 사진 책들이 많이 있었다. 캐리어에 많이 넣어오고 싶었지만 그건 욕심이었다. 최대한 많이 보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서점에서 내가 꿈꾼 순간은 사진과 관련된 책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나의 서른 살'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중앙 홀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무대로 사랑받았다. 마치 시간여행을 한 듯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아름다운 배경 덕분에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여행을 가면 꼭 가보는 현지의 공간 중 터미널을 가보았다. 뉴욕 여행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 기차역은 생각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44개의 플랫폼을 갖춘 세계 최대 기차역으로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웅장한 돔 형태의 천장! 청록색 하늘에 별자리가 수놓아진 모습을 처음 본 이들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 별자리는 10월부터 3월까지 지중해 하늘에 떠 있는 것을 형상화했다. 폴 헬류의 작품으로 수놓아진 별은 약 2500개에 달한다. 관광객들이 천장을 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플랫폼에 들어서니 '우와'하는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았다. 멋들어진 건물, 수많은 플랫폼 중앙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안내데스크 위에 위치한 시계이다. 감정가가 2천만 달러에 달한다는 이 시계는 4면으로 돼 있으며 뉴요커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이다. 터미널에서 오가며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월터를 만날 수 있을까?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영화는 여러 번 보는데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도 그랬다. 매년 생일에 보는 나의 인생영화.  주인공인 월터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상상하며 꿈꾸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으로 나오고 무엇보다 색감과 구도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사진을 좋아해서 그런지 라이프 잡지의 사진이야기도 흥미진진했고, 아름다운 순간은 사진이 아닌 눈으로 보는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것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영화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월터를 만난 그 지하철 플랫폼에서 4년 연애의 마침표 한 순간이 생각났다. 

매일 아침 울리는 메신저 알람 

출근길에 어디 인지, 아침에 커피는 무엇을 마시면 좋을지 물어보는 말들 

점심은 무엇을 먹었는지

오늘 회사일은 힘들지 않은지

그리고 내가 가끔 생각나지 않은지

퇴근 시간이 맞으면 잠깐 얼굴이라도 보며 헤어지고, 영화를 볼 때도 있었던 우리 

이제는 이럴 필요가 없다. 

일상을 함께 하고 싶던 사람과의 이별은 처음에는 두렵다가

슬프다가

힘이 없다가

그러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배는 고프다. 

어디서부터 잘 못되었는지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싫다가

어디서부터 문제였는지 라고 말하기에는 '문제'라고 정의 하긴 싫다가

'서툴렀다'는 말로 결론을 내려본다. 

오늘도 나는 멍하니 강남 한 복판에 서있어 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가고, 연인들도 있고, 혼자인 사람들도 있다.

다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한때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던 세상도 조금은 쓸쓸하다.

나는 캐럴송이 나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자주 갔던 카페, 음식점, 들었던 노래, 여행 등 

자주 갔던 혜화동에는 겨울이 왔고, 자주 갔던 일본 라멘집에서 나는 혼자 라멘을 먹었다.

자주 갔던 길거리에서 혹시나 마주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이제는 우리가 함께 가 아닌 내가 혼자 가서 예전에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힘들고,

이별에도 예의가 있다는 것

그래서 '있을 때 잘해'라는 다섯 글자가 왜 이리도 내 마음을 툭툭 치고 가는지 모르겠다.

누가 더 사랑했고, 내가 더 잘해줬고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떠나보면 보이는 빈자리에 대한 그리움만 남을 뿐이다. 감정적이었긴 하지만 이번 사랑에 누구보다 솔직했다.  

참 신기하다.

4년 동안 매일 같이 울리던 대화 창을 삭제하는 데는 5초도 걸리지 않았고,

외장하드에 있는 우리의 사진을 지우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내 마음도 이렇다면 좋겠다. 

20대 후반을 나와 함께 해줬던

그 사람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땡땡땡-

감수성에 젖던 나는 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에 화들짝 상상 속에서 깼다.

3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내가 생각하는 상상도 현실이 되길 바라는 잔잔한 여운이 125st역에 남겨두었다.



여행지에서 보통날,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회사에서도 연락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시차가 크기 때문에. 

너무 좋다. 

걷다가, 찍다가, 카페에 들어가서 쉬다가. 

딱히 지도를 펼칠 필요도 없다.


비 온 뒤 또 다른 모습 

여행에서 비가 오면 기분이 어떨까? ‘짜증이 난다’가 정답일 것이다. 첼시마켓으로 걸어가는 길에 소나기가 내렸다. 짜증이 났다.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정이 빠듯했고, 사진은 찍고 싶었고, 뉴욕 패션위크도 보고 싶고 조바심이 났다. 우산은 없었고, 내리는 비에 잠시 쉬어갈 수밖에 없었다. 40분쯤 지났을까, 비가 그쳤다. 그리고 비가 내린다고 짜증을 냈던 내게 뉴욕 날씨는 또 다른 선물을 주었다.

대부분의 날들은 특별한 게 없다.

별 기억도, 추억도 없이

그냥 하루가 시작되고, 끝이 된다.

대부분의 날들은 

인생에 별다른 영향을 못 미친다.

10월 15일은 금요일이었다.

입국심사에서 "뉴욕에 왜 왔어요?"라는 말에 

"서른 살이 되기 전이라서요. 아니 아니 사실 시련도 당했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just trip이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시련당한 사람 치고는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찍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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