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지사진관 Nov 17. 2019

적당히 아쉬울 때, 베네치아

<키워드>감수성, 골목길, 필름사진

“잘 다녀왔습니다.”라는 말이 무섭게 일요일 밤에 도착을 했고, 난 월요일부터 출근을 해야 했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출근한 지 5분 만에 모두 까먹었을 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소셜 미디어에 여행기를 더 많이 쓰기 때문에 여행 다녀온 후기는 필름이 현상된 후에야 정리를 할 수 있다. 일주일이 된 시점에서야 필름 사진을 현상하고, 사진을 뒤적거린다. 여행을 떠나기 전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필름을 매우 많이 두둑하게 챙겨갔지만 필름이 아까워서인지 생각만큼 36 롤, 24 롤을 모두 다 찍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 한통의 필름은 현상하지 않았는데, 남은 필름을 다 찍고 현상할 때쯤이면 또 한 번 이탈리아가 생각날 듯싶다.


개인적으로 2월, 11월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애매한 느낌 때문이다.

애매하게 생각하는 달에

애매하게 연차가 남아

애매한 일정으로 이탈리아로 떠났다.


로마에서는 지하철을 빠져나와 눈 앞에 보이는 몇천 년 이상의 유적을 보았을 때 감격을 받았고,

피렌체에서는 책으로만 읽던, 영화로만 보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유럽에 서머타임이 끝난 날. 즉 가을이 끝나고 겨울을 기다리는 문턱에 피렌체를 지나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어느 한편에 고이 접어 놓았다가

다시 꺼내 보고 싶은 

피렌체 오후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마지막 도시로 밀라노를 갈까, 베네치아를 갈까 고민했는데, 개인적으로 물을 좋아하지 않아 베네치아를 가고 싶진 않았다. 함께 여행하는 친구가 베네치아를 너무 가고 싶어 하기에 베네치아로 향했다.

오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 한, 베네치아(Venice)

베네치아(Venice) 여행의 시작점이기도 했던 산타루치아 역 앞을 나왔을 때 했던 감탄사

"오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했어!"  


무엇보다 베네치아 아침은 분주하다.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분주하기보다는

개개인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 분주하다고나 할까?

어떤 사람은 기차역으로, 어떤 사람은 시장으로, 어떤 사람은 아침 브런치를 먹으러 북적이는 곳이다.



2성급 호텔?

"2성급 호텔이래"

"응 맞아! 괜찮겠지?"

"그럼 2성급인데 대박이다"

친구야........... 호텔은 급이 높을수록 좋은 거야..........


엄청난 숙박비, 물가를 자랑하는 베네치아에서 어렵게 찾은 

모텔스럽기도 하고, 여관 같기도 했던 오래된 호텔이었지만 

로비 분위기 하나는 이탈리아 느낌으로 가득했다.


일몰만 봐도 눈물이 나는

"부장님 해가 지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납니다"

"난 눈물이 언제 났나 싶다"

직장인이다 보니 5일 휴가를 내어 일주일 꽉꽉 채워 다니는 여행에

이탈리아 일주일은 수박 겉할기, 이런 할기도 없다.

몇천 년의 역사를 가진 곳을 일주일 만에 다 본다고 생각하는 것도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 일가 싶다.



생각한 건데 베네치아 골목길은 미로의 연속

베네치아 근교 부라노

돌아보면

네가 있어 좋았던 

골목길

베네치아 근교 무라노

사람의 감정은 속에 담고 있으면

형체가 없지만

말로 뱉는 순간 형체를 갖추면서 내 마음이 된다.

베네치아(Venice) 골목길


베네치아에서 여기서 구글맵이 위치를 잡고 가르쳐 주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인적 하나 없어 무서운 곳을 지나면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 나오고,

북적이는 곳을 지나면 한 정한 곳이 나온다.

골목골목에서 느껴지는 '입체감'이 신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긴, 몇 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없이 지도 들고 여행 잘 다녔잖아! 


정답 찾기가 아닌 해답 찾기


텅 빈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불을 끄고 집에 가는 날, 불 꺼진 공간을 보면서 가끔 ‘내가 어릴 적 꿈꿨던 서른 살은 지금의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수학을 남들보다 잘한다는 아버지의 판단 때문에 이과를 선택해야 했고,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공대를 가야 했다.

20살까지는 인생의 여러 선택지에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답대로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이후에 살아온 대로 정답만을 찾으려고 하니 막막한 순간이 많았다. 어쩌다 들으러 간 강연에서 ‘한번 사는 인생 세계 일주에 도전해 보세요’라는 말도 맞는 것 같았고, 반대로 현실은 각박하니 정신 차려야 한다는 말도 정답처럼 들렸다. 그러다가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지 정작 ‘나’와는 깊은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답을 찾기 위해 ‘일단은 적어보자’를 실천했다. 문방구에서 전지를 샀다. 살면서 하고 싶었던 것, 했던 것, 좋았던 것, 싫었던 순간 등을 세세하게 적어 보았다. 6장에 빼곡한 글씨들을 펼쳐 놓고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기획하는 것을 좋아했고,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더 놀라운 건 미술에도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두 번째로 한 일은 혼자 여행을 다닌 것이었다. 혼밥, 혼술, 혼여 등은 요즘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철저하게 혼잣말로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행복, 슬픔, 짜릿, 좌절 등 내 몸속에 있지만 잘 감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둘 밖으로 꺼내올 수 있었다. 생각보다 예민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나를 발견했다. 수많은 강의와 자기 계발서에서 말해주는 건 정답이 아니었다. 불안하고 겁이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 세계 일주는 무리였다. 당장 학자금을 갚아야 하는 불안함이 있던 나에게 ‘도전하라, 청춘’이라는 말은 먼 외계의 말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욜로’(YOLO) 하다가 골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한 번뿐, 현재를 즐기자는 뜻이지만 현재를 즐기기 전에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내 삶의 가치관과 방향은 어떤 것인지 잠시 생각할 쉼표 같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저마다의 해답은 있다.


달력 한 장 남았다고 

시작부터 슬퍼지는 11월에,


베네치아(Venice) 골목길

여행을 다녀오면 

뭐가 맛있었어? 뭐 봤어? 뭐 했어? 등의 질문을 자주 받는다.  

여행 첫날 아침 기분은 어땠어? 

그 커피 마실 때 맛은 어땠어? 

길 잃어버렸을 때 심정은? 

나부터라도.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 질문을 해야겠다. 

어차피 출근하면 5분 만에 여행 기억은 사라지고, 

10분 만에 시차 적응하는 직장에서. 

여행 때 느낀 소중한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회사 생활하면서  

여행 다녀온 것을 잊을 때쯤 

마지막 필름이 현상됐다.  

고맙다,


이전 03화 긁지 않은 복권 모스크바 夜(야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