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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ungmi May 13. 2023

튤립, 마당, 토끼 그리고 청설모

우리의 집일까? 토끼의 집일까?

회사에서 육아휴직 확대 메일을 받고 꼬박 1년만인 2023년 4월에 출국을 했다. 

4월 25일, 길고 긴 비행시간 끝에 캐나다에 그리고 옥빌에 도착했다.


캐나다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수있게 하고싶어서 마당이 있는 집을 구했었다. 옥빌에 그리고 우리가 1년 동안 살 집앞에 도착했을 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만해도 서울에 있었는데, 옥빌에 그리고 사진으로만보던 집 앞에 서 있는 느낌은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아스팔트가 뒤덮인 아파트의 광장과는 너무나도 다른, 집집마다 앞에 자그마한 앞마당을 갖고 있는 마을에 서 있을때의 느낌은 마치 트루먼쇼의 마을에 들어와있는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들어가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아이들은 뒷마당을 보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사진에는 평범한 작은 마당이었는데, 막상 와보니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피기 시작한 튤립

울타리를 왔다갔다하는 청솔모

가지가 넘어온 옆집 꽃나무

풀을 먹고가는 토끼


토끼와 청솔모의 출현으로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처음 몇일은 우연히 토끼와 청솔모가 왔다갔나보다 생각했는데, 거의 매일 마당을 왔다갔다하는 걸 보니 토끼와 청솔모가 살고있는 곳에 우리가 이방인처럼 잠시 왔다가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집에
토끼가 왔다가는 것일까?


토끼가 살고있는 곳에
우리가 잠시 왔다가는 것일까?



애완 동물을 키우고 싶어했던 둘째는 거의 매일 마당에 찾아와서 풀을 뜯고 가는 토끼를 보며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요리를 할 때는 당근 껍질은 버리지않고 꼬박꼬박 모아 토끼가 자주오는 곳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이주일 정도 지났을 때부터는 뒷마당에 아기 토끼가 오기 시작했다. 


아기 토끼가 오면 아이들은 남편과 나를 불렀고 모두 숨을 죽이며 아기 토끼가 풀을 먹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어느 날 둘째 아이는 자기가 맨발로 마당의 나무 판자에 서 있을 때, 아기 토끼가 자신의 맨발을 밟고 지나갔다며 매우 흥분된 표정으로 얘기를 했다. 아기 토끼가 밟고 간 느낌이 너무 부드러웠다며 행복해했다. 나도 둘째 아이가 부러웠는데, 아기 토끼는 정말 작았고 풀을 먹는 모습이나 뛰어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그렇게 아이들과 나와 남편은 마당을 보며, 옥빌의 거리를 걸으며 지치고 고단했던 그동안의 일상에, 다시없을 쉼을 갖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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