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슬그머니 휴대폰을 내밀었다. 언젠가의 여행에서 담아온 사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엄마가 상기된 표정으로 신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려던 찰나 나는 화면 속 사진이 아닌 다른 것에 시선을 뺏기고 말았다.
바로 검은색 가죽이 회색이 될 때까지 너덜너덜 해진 엄마의 휴대폰 커버, 그 옆에 위태롭게 붙어있는 까맣게 때가 탄 갈색곰인형, 그리고 맑은 소리를 잃은 채 멋없이 덜렁거리는 은색 방울 액세서리였다. 엄마의 손 때가 진하게 묻은, 빈티지스럽다 못해 낡아빠진 휴대폰 커버와 액세서리. 매일 보는 엄마의 물건이었는데… 그날은 유독 엄마의 신난 얼굴과 낡은 소지품이 극명하게 대비되며 왠지 서글퍼졌다.
엄마 나름의 사연은 있었다. 휴대폰 커버는 2년 전 새 휴대폰 장만 기념으로 아빠에게 받은 선물이었고 곰인형과 방울 액세서리는 내가 해외여행을 다녀오며 엄마에게 선물했던 장식품이었다. 워낙 가벼운 마음으로 선물했던 터라 이미 선물한 사람의 기억 속에선 선물을 했는지 조차 희미했지만 엄마는 진심을 다해 쓰고 또 쓰고 있었다. ‘가족에게 받은 소중한 선물이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아껴왔던 것이다.
30년 넘게 봐온 엄마는 늘 그랬다. 작은 물건 하나도 새 것처럼 아껴 쓰는 건 기본이었다. 그는 물건 하나하나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한 번은 왜 그렇게까지 아껴 쓰냐고, 그렇게 아껴서 뭐할 거냐고 장난을 가장한 핀잔을 준 적이 있는데 엄마의 대답은 의외로 진지했다. 자신은 물건도 하나의 인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중히 다루는 거라고, 엄마한테는 너네(4살 터울의 언니와 나)가 물건은 아니지만 엄마에겐 한없이 소중하고 아끼는 존재라며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갑자기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에서 가족까지 시선을 확장해놓곤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튼 물건을 아껴 쓰고 되도록 버리지 않는 엄마 덕분에 우리 집은 거의 만물상에 가깝다. 20년 전 엄마가 일할 때 입었던 더 이상 입을 일 없는 ㅇㅇ산업 작업복이며, 결혼할 때 장만해 여전히 멀쩡히 쓰고 있는 수저 세트, 80년대 스타일로 어깨 뽕이 한껏 올라간 체크무늬 가죽재킷까지 족히 30살은 넘은 물건들이다. 여전히 엄마의 손 때와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들이 집안 곳곳에 놓여있다. 엄마와 함께 세월을 버티며 집안 곳곳을 버티고 있어서 그런지 때론 물건들에게 어렴풋이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엄마와 함께 여행 사진을 보던 날, 집에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선물할 새 휴대폰 케이스와 액세서리를 주문하며 소망했다. 내가 엄마에게 소중하듯 나에게도 소중한 엄마, 그의 물건들 만큼 엄마도 오래오래 함께해주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