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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기차에서 울던 여인은 어디로

by 시루

#9

환승 때문에 동대구역에서 내렸다.



시간은 2시, 아직 한 끼도 먹지 않아 배가 고팠다. 근데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역설적으로 입에 무언가를 넣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다.



그렇게 올리브영에서 베이글칩을 사는 것으로 스스로와 타협하고, 앉을만한 벤치를 찾아다녔다. 기차 타러 가는 곳 근처는 이미 붐비고 좀 더 걷다 보니 비어있는 벤치가 보였다. 베이글칩을 뜯어 오물오물 씹었다. 맛은 모르겠다.



그런데 하필 앉아있는 곳이 교통약자 매표창구 앞이라는 걸 알게 됐다. 수많은 할아버지가 돌아다니셨다.



여기에 우리 할아버지만 없다.




#10

생략




#11

캐리어를 끌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첫날이지만 생각보다 손님이 많이 왔다.



나는 엄마 아빠의 친구분들을 성인이 되고 처음 보았다. 첫째 딸인 나는 친구분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점수를 땄다. 사회생활 괜히 한 게 아니다. 오랜만에 보는 숙모와 삼촌들이 감탄을 했다.



새삼 ‘맞아. 우리 부모님도 친구가 있으시지’ 싶었다. 늘 우리만 쳐다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 엄마 아빠도 그냥 한 명의 사람일 뿐인데.




#12

나와 동생은 장례식장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다. 나는 큰 손녀의 막중한 책임감… 뭐 이런 건 아니었고, 그냥 타고난 성향인 것 같다. 뭐든 잘하는 게 좋다.



동생도 열심히 거들었다. 부산에 부모님과 같이 있다 보니, 손자손녀들 중 혼자 가장 먼저 와 일을 돕고 있었다. 오늘 가장 고생한 사람이었다.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 다들 ”오느라 고생했네“ 하며, 울지도 않고 손님맞이를 했다. 외할머니도 기운은 없어 보이셨지만 평소와 비슷하셨다.



나는 조금 더 활기찼다. 기차에서 울었던 여인은 어디로 갔던가. 나는 내내 유머나 농담을 던졌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듯.



이 공기를 무겁게 만들지 않겠다. 어른들이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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