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발인이 끝나고 나니 거의 5시가 다 되었다. 모든 것이 지쳤다. 지친 것이 몸인지 마음인지 모르겠다.
장례식장 앞에서 각자 집으로 헤어지기 전 우리는 서로 인사를 했다.
“수고했다… 수고했다.. 다들 너무 고생했다.”
장례식장에 모여 가족들이 다투는 일도 잦다고 하지만, 우리들은 3일간의 그 시간 속에서 가족 간의 사랑과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동료애만이 남았다. 아주 오랜 시간 얼굴을 보지 못했던 사이라도, 그 시간의 간극을 메꾸기에는 3일간의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충분했나 보다. 그리고 그건 아마 할아버지가 늘 조금씩 나눠주셨던 어떤 다정함을 모두가 가졌기 때문이겠지.
#21
외할아버지는 참 신기한 사람이셨다. 나는 살면서 할아버지만큼 긍정적이고, 사랑이 충만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무뚝뚝한 우리 아빠도 어느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자주 뵈러 가자고 먼저 말씀하시곤 했다. 과연, 사랑은 모든 것을 바꾸지 않는가. Love wins all.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기억을 끌어모아도 외할아버지는 항상 한결같은 분이셨다.
“우리 큰 손녀 왔나, 반갑다! “
“가족들이 이렇게 모이다니 참 너무 감사한 일이다.”
“여보! 음식이 너무 맛있다. “
“참 잘했다, 건강하고!! 사랑한다.”
내가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문장은 다 이런 거였다. 노년에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셨을 때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만을 잊으시지 않으셨던 것을 보면 할아버지의 마음은 늘 사랑과 감사로 가득하셨나 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순탄한 삶은 절대 아니셨다.
외할머니에게 듣기로는, 외할아버지의 어머니, 즉 외증조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 계모가 들어왔고, 계모는 외할아버지의 남동생만을 편애해 차별이 심했다고. 그렇게 숱한 고생과 속사정 속에서 유산은 단 하나도 받지 못한 채, 외할머니와 결혼해 딸 둘과 아들 둘을 사랑으로 키우셨다고.
삶이 외할아버지를 속였는데,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저 타인에게 사랑만을 주는 삶. 할아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사실 수 있었을까. 나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이기적인 큰 손녀는 감히 그 마음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글에 늘 사람에 대한 사랑을 담으며, 매번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은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가장 귀한 유산이리라. 우리 가족들은 모두 그 유산을 공평하게 받은 셈이다.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
잘 받았어요, 그리고 잘 쓸게요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