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소 닭 보듯 바라보는 사람에게 친구나 연인이 생길 리 없다
스무 살의 첫 독립, 기숙사에서의 첫 날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조금 울었다. 그때의 마음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나는 이를 악물고 공부하면서 스스로 두 가지를 약속했는데, 고향을 벗어나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내가 되는 것과 대학생이 되면 절대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렇기에 무조건 독립을 하고 싶었는데, 장밋빛 미래를 상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이든 나 혼자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공포였다. 요령도 경험도 없으니 부딪히기를 몇 번, 혼자 울기를 수십 번. 사람에게 의존해 보려고도 했으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홀로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슬픈데 왜 슬픈지 몰라서, 우울한데 왜 우울한지 몰라서. 이유 없는 눈물에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서.
불안했다. 사람은 어쨌거나 완벽한 타인이며, 땅에 서 있기 위해서는 내 두 다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사람인 한자도 둘이 기대고 있는 형상인데 왜 아무한테도 기댈 수 없는 것인지, 오롯이 기댈 수 있겠다 기대하다가도 결국엔 상처받고 마는 건지. 사람은 낙원이 될 수 없다. 이 것이 나의 20대를 대변하는 문장이었다. 그럼 나의 낙원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아니 사람에게 과연 낙원은 존재하는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퇴근길에 문득 내가 참 안정적이 되었구나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체념은 아니다, 나는 체념은 모르는 사람이니까. 다만 조금 더 사랑하기로 결심했을 뿐이다. 기대고 싶을 때마다 먼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외로울 때마다 먼저 상대방을 사랑하기로. 사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사랑하면 된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얻는 법이다. 에리히프롬도 진정한 사랑은 고통과 실망조차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의 낙원은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자 하는 용기에 있었다. 이렇게 고등학교 때의 다짐은 완벽하게 지켜냈는데, 별개로 공부도 어쩜 완벽하게 안 한 덕분에 학점이 아주 형편없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자.
먹는 쾌감을 느껴야 음식을 찾듯
‘사랑’이라는 절대적 생존 필수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을 아주 좋아해야 한다.
타인을 소 닭 보듯 바라보는 사람에게 친구나 연인이 생길 리 없다.
- 행복의 기원, 서은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