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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레짱 Aug 30. 2020

세상을 향해 엄마부터 즐겨야지. (2)

역할 놀이극? 상담 놀이. 모델놀이, 교육놀이, 엄마놀이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지음. 윤예지 그림/사계절 출판사

"가족이라고? 나는 아기를 줄 생각이 없는걸." "뭐라고? 그러면 어쩌겠다는 거야? 넌 암탉 인네." "난 엄마야. 아기 날개를 자를 텐데 마당으로 보낼 것 같아?" "그것 때문에 도망쳤어? 겁낼 것 없어. 조금도 아프지 않아. 따끔한 정도 하고. 어쩌면 아픈 것도 모를걸. 날아갈까 봐 그러는 거야." (중략) "뽀얀 오리랑 짝이 됐어도 족제비에게 또 당하고 말았지. 그게 다 야생 오리 습관을 못 버려서 생긴 일이야. 헛간에서 알을 품도록 했다면 뽀얀 오리도 죽지 않고 지금까지 무리 속에 있었겠지. 하기는 뭐, 그랬다면 주인이 꺼내 가서 알을 품을 수도 없었겠지만!" 우두머리가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 날 밤이 불현듯 떠올라서 잎싹은 진저리를 쳤다. '나그네, 이제야 네 마을을 알겠어. 우리는 같은 소망을 가졌던 거야. 좀 더 일찍 이 모든 사실을 알았더라면...' '사실을 알았더라도 나는 거절하지 않았을 거야. 알을 품는 동안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무도 모를걸.'-106p

잎싹은 구덩이에서 나와 갈대밭을 내려다보았다. 떠나기에는 아까운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헛간처럼 그곳도 영원히 머물 곳은 아니었다.'나는 떠돌이야. 떠돌이한테 보금자리가 있을리 없지.'쓸쓸했다. 철망에 갇혀 사는 것도 싫었고, 그렇게 바라던 마당에 머물 수도 없었다. 갈대밭의 보금자리도 버려야 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또 떠나야 한다.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 소망을 간직했기 때문일까. 그래도 마당을 나온 건 잘한 일이야. 철망은 말할 것도 없고.' - 119p

난다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족제비를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말고도 좋은 점이 얼마든지 있었다. 넓은 저수지의 끝에서 끝까지 금방 다녀올 수 있고, 갈대숲을 위에서 둘러보고 좋은 잠자리를 가려낼 수도 있었다. 닭은 흙만 뒤지고 사는데 야생오리는 달랐다. 땅과 물, 하늘까지 제 세상이었다. 초록머리를 보고 있으면 쓸쓸하면서도 부러웠다. 초록머리는 분명 자신의 자식이지만, 또한 야생 오리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닭은 날개를 포기해 버렸어. 어째서 볏을 가진 족속이라는 것만 기억했을까? 볏이 사냥꾼을 물리쳐 주는 것도 아닌데.' 초록머리는 잎싹의 쓸쓸함에 대해 알지 못했다. 초록머리는 초록머리대로 쓸쓸했다. 꼬꼬 거릴 수도 없는데 암탉을 따르고, 닮은 데가 많은 집오리들에게는 업신여김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제 초록머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꺼렸다.  무리가 없는 외톨이끼리 몸을 맞대고 잠들 수 있는 잠은 그나마 행복했다. 초록머리가 잡아 온 물고리로 배를 채우고 잠들 때마다 잎싹은 청둥오리를 생각했다. 초록머리의 기름진 깃털이 달빛에 빛날 때는 청둥오리가 더욱 생각났다. -135p

"내 또래는 잘 때 어른들 안쪽에서 자. 하지만 나는 파수꾼보다 밖에서 자야만 해. 다 같이 날 때도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겠어. 어른 옆에 있으면 버르장머리 없다고 꾸중하고, 뒤에 있으면 흉을 봐." 잎싹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초록머리의 푸념을 들어주었다. "나는 어디서나 외톨이야. 꼭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제는 노력하고 싶지 않아. 엄마랑 있을 때가 행복하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다시 왔어, 엄마." 야윈 몸을 보면 초록머리가 힘들게 지낸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바람을 일으키는 날개를 보면서 잎싹은 이제 초록머리에게서 야생 오리 티가 제법 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어린애처럼 볼멘소리를 해도 묵묵히 듣기만 했다. 초록머리가 먼저 바위굴로 들어갔다. 기다란 끈을 끌면서. - 165p

잎싹은 물고기를 쪼아 먹었다. 초록머리가 없다면 도저히 한겨울에 맛볼 수 없는 훌륭한 먹이었다. "잘 먹었어. 맛있구나." 초록머리가 활짝 웃었다. 잎싹도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은 울적했다. "을 잘라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그런데 발목의 끈은 어쩔 수 없어. 그건 내 아기라는 정표로 그냥 두자. 나그네들 속에서 너를 알아볼 수 있게." "엄마, 내가 떠나길 바라?" 잎싹은 초록머리의 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가야지. 네 족속을 따라가서 다른 세상에 뭐가 있는지 봐야 하지 않겠니? 내가 만약 날 수 있다면 절대로 여기에 머물지 않을 거다. 아가야."가, 너를 못보고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만, 떠나는 게 옳아. 가서 파수꾼이 되렴. 아무도 너만큼 귀가 밝지 못할 거야""나는 괜찮아. 아주 많은 걸 기억하고 있어서 외롭지 않을 거다."-170p


결혼을 하고 처음 가족을 만들다 보면 새삼 어리둥절 해진다. 자유롭게 살다가 다시 닭장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와 함께 대가족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이 마당이라면 저수지를 지나 하늘을 날개 되는 건 사회를 만나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라.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아이가 생기면 이쁘고 고운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든든한 울타리와 이쁜 꽃밭에서 살게 해 주리라. 아쉽게도 엄마는 세상에서 눈을 감고 귀를 닫는다고 되는 자리가 아니었다. 동화처럼 이쁘게 산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아름답고 당당하게 한 아이를 키우려면 엄마도 용기를 내야. 성장하는 아이를 가둬두지 않고 나 자신을 썩히지 않으려면 아프더라도 다시 한번 힘을 내서 밖으로 밖으로 나가야 되는 것을.  



세상 밖으로 다 같이 나가기

년만에 간 강남 가는 길은 정신이 날아갈 정도였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이곳이 강북과 이렇게 다른지를. 넘어가는 대교가 새삼 넓고 도로정비가 잘되어있다. 건물이 얇고 길다라지 않다. 넓고 탄탄한 고층 빌딩 꼭대기에 대형 금융사와 기업의 간판을 정사각형으로 단단히 붙어있었다. 껏 해봐야 그랜저라고 귀엽게 대답했던 나는 이제야 보였다. bmw와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현대차들은 사라지고 길 위의 차량들은 색달랐다. 차체가 낮고 슬림한 스포츠형 세단, 블랙에 그레이와 같은 무난한 색상이 아닌 발색이 화사하고 또렷한 색감에 컬러풀한 외제차들. 포르셰는 기본이요 생판 처음 보는 이름이 개조되어 있거나 필기체로 흘려져 있는 차량 브랜드.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테슬라?   번호판 숫자도 낯선데 색깔도 하늘색 빛나는 파란색까지 생소했다.


당장 무너질 것 같은 재개발 예정구역에 의지를 담은 현수막이 걸려있는 아파트. 익히 알고 있는 롯데캐슬, 힐스테이트와 같은 브랜드에 상가건물이 즐비되어 있는 복합상가건물. 근처의 대형 브랜드와 cgv, 오래간만에 보는 갤러리아까지. 이전에 내가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래서 강남 강남 하는구나. 화려한 풍경과 달리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내 머리속은 어지러워졌다. 여기엔 얼마나 많은 전투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걸까? 역삼역에 부근. 건물 층층이 위치해있는 성형외과, 피부과 간판을 볼 때 즈음엔 구경하는 걸 포기했다.


이상한 도시에 왔다. 여긴 어딜까? 분명 20대의 내가 활동했던 곳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장소였다. 유흥 번화가에서 부딪힐 걱정 따위 없이 빠르게 걷는 사람들. 대낮인데도 불이 꺼지지 않은 룸의 간판, 느긋한 분위기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북새통 같은 카페. 여기에 비하면 아이들과 살고 있는 우리 아파트 단지는 시골의 전원주택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생활의 때가 묻어나는 편한 복장과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kf마스크와 일회용 마스크가 기본이 동네와 달리 시커먼 마스크과 생판 처음 보는 마스크를 차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늘이가 창가에 매달려 눈이 휘둥그레진 채 질문이 이어진다. "엄마,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해요?""엄마 왜 길에 쓰레기가 다 버려져있어요?"캔을 바닥에~ 위험한데~저기 있어요." 나마저도 처음 접하는 풍경에 무어라 설명해주기 곤란했다.


네비를 따라 골목골목으로 들어가니 아까와 정 반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조용한 건물 숲, 오피스텔 단지, 익숙한 공기, 익숙한 건물, 높진 않지만 전면 유리와 대리석 느낌의 건물들에 조심히 주차를 하고 들어갔다 좁은 복도에 답답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서술예술대학교 제작지원 현수막, 웹드라마 배우 모집 포스터, '이태원 클래스'새로 시작한 일일 드라마의 배우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가 즐비되어 있었다. 드디어 에이젼시라는 느낌이 물씬 들었다. 물을 열고 들어간 곳은 생각보다 아담하고 사무실 느낌이 나는 스튜디오였다.


네명남짓의 여사원들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들어오는 하늘이를 보고 새삼 신선해하는 느낌이었다. 새하얀 하늘이를 귀엽다는 듯이 대하고 시크릿 쥬쥬를 처음 접하게 된 게 어쩌면 좋냐며 연신 가느다란 웃음소리를 지었다. 침 올블랙 스타일을 입고 온 아이와 대비되어 도드라지는 하늘이. 나의 소극적인 손짓과 작은 목소리, 랑이는 원피스를 입은 모습이 여기서는 희귀한 존재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뭘까? 아이를 키우는 조심조심하고 사근사근한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빌딩 숲 속에 위치해 거칠고 차가운 사무실 안의 무채색 공기를 핑크색 원피스와 방송으로 겨우 꾸며놓은 느낌이 들었다. 아! 이게 사회였지. 아니. 이런 사회도 있었었지. 이런 곳에 다시 왔구나.


시침이 한 바퀴 돌아가고 있었다. 시크릿 쥬쥬와의 첫 만남, 사탕 신공, 아이들끼리 이쁜 말해주기 차례차례 아이를 다루는 방법을 보고 있자니 감탄이 나왔다. 기술이 능수능란하는구나. 근데 뭘까? 이 영혼 없이 스킬만 시전하고 있는 느낌. 아이를 다루는데 감정 없이 최대한 가볍고 이쁘게 얘기하지만,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다루는 듯한... 길어지는 웨이팅에 결국 비눗방울 놀이까지 나왔는데, 그런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앞에 놓여진 이벤트를 그저 즐기는 하늘이를 보니 새삼 내가 딸을 티 없이 키웠구나 싶었다.


조용히 말도 안 하고 웃음기 뺀 얌전한 옆 아이가 낯설었다. 아이란 항상 웃고 떠들고 뛰어논다고 생각했다. 사무원 들의 생각우 사뭇 다른지 비눗방울을 이리저리 따라다니며 연신 웃고 뛰어노는 하늘이보다. 자기 걸 만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아이에게 눈이 따라가고 감정이입이 되어 보였다. 조금이라도 끌어주고 앞으로 나가게 해 주려는 손짓. '블랙 쉬크 좋다~'하며 선선히 하는 말에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 뒤에 이어진 실장과의 상담에 모델보다는 배우 출장을 위주로 브리핑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싶었다. 여기는 하늘이와 콘셉트가 안 맞는구나. 아니 방향이 다르구나. 때가 아니구나, 준비한 게 없구나.


앞전 상담을 마친 대표가 거칠게 나와 방으로 상담을 유도했다. 뭘까? 이...... 편안하고 익숙한 기분. 상담실에 들어가자마자 연신 자리 잡고 있던 맘스 스마일이 사라지고 눈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학원형 모델 에이젼시라는 결론이 들자 마음의 결이 맡는지 궁금해졌다. 돈도 중요하고 아이의 재능개발이며 사회성 향상 다 좋다. 그저 이 에이젼시가 마음이 맡는지가 궁금했다. 앞에 펼쳐져있는 연예인들과의 사진도 보였지만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줬으면 했다. 아이가 다니던 말던 관심이 없는 정도면 곤란하지만 최소한의 시간을 준다면 활동에는 시간이 걸려도 프로필 사진으로 가는 용기가 날 것 같았다. 거기까지가 나와의 거리.


 대표이사가 계약 클로징 상담에 들어가자마자 그간 걱정했던 나의 소심함과 눈치는 사라지고 뇌를 거칠 것도 없이 예리한 멘트가 쏟아져 나왔다."모 델시 키 지게요?""안될 것도 없죠~""금액대 조정은 어렵습니다.""사전에 대표상담과 수수료의 조정이 필요하다해서 방문상담을 하는 거지요~""00만큼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필 앨범이며 자료들은 문가 이상의 퀄리티고 전부 포함돼있는 사항입니다.""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죠~ 활동하는 내용이 걱정되는 거라 엄마라면 걱정이 되지 않겠어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요~""......" 길어지는 대화에 신랑은 아이를 안고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뭘까... 이... 살아있는 기분. 조용조용 잠재워져 있던 세포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뛰놀고 있는 느낌.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실리지 않고 사고관 자체가 틀렸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사모님... 결혼하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나요? 어느 쪽 일을 했는지 상당히 궁금하네요"(웃음)


상담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뒤죽박죽이었던 내 머릿속에 하나에 줄이 생겼다. ' 아, 틀린 게 아니었어.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어. 내가 알고 있던 사회가, 세상이, 세대가 다른 것뿐이었구나.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내 세대는 분명히 존재했어. 다만 지금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이 카테고리가 다른 동네였던 거야. 약해진 게 아니고, 모르는 게 당연해 전혀 다른 세상에서 전혀 다른 룰이 있는 걸 몰랐으니까.  이제부터 배우면 되는 거야. 하면 되는 거고. 나는 신입인 거야. 근데 이전 버릇을 버리지 못해서 이전 세상을 버리지 못해서 '모라토리엄'의 시간을 걷는 중이구나. 필요한 건 자책과 투쟁심이 아니고 재빠른 온오프 스위치와 빠른 전환력, 빠른 판단력.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아니고, 상황에 맡는 나에게 맡는 걸 찾고 버리는 일의 반복인 거구나.    


알고 있는 방법으로
주관을 담은 외부활동으로
생각을 담은 목소리를 당당히 내자.
그에 상응하는 타인과의 교류활동이
세상을 믿고 나아가게 한다.
어깨의 힘을 좀 더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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