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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레짱 Jul 19. 2020

대 가족모임이 아무 일 없이 끝났다.

100일 실패, 두려움 극복기(2)

오락가락, 팽팽하게 달아 조부 비는 준비기간.


일요일. 가족이 다 모일 수 있는 날은 그날뿐이다. 시부모님, 친정엄마는 현역, 형님네도 육아 중이니 일정을 정확히 해야 했다. 짚이는 장소는 jk블라썸 호텔. 가까이 종종 다녀 마음이 편했다. 지하 갤러리와 카페를 육아 방전의 도피처로 삼았던 호텔은 로망을 이루기에 적당했다. 상담시간을 선뜻 내기 어려운 찰나 친정엄마가 지원 나왔다. 역시 결정적일 땐 친정엄마. 15층에 위치한 염창 8경은 낯설진 않았다. 가족모임으론 예약 미스와 일정 조율 실패로 번번이 놓쳤던 라 방문하면서도 설레었다. 아직도 호텔 100일 파티가 어색한 엄마는 들어가기 전까지 걱정에 챠 잔소리가 이어졌지만 꼭대기 정경을 보면서 마음이 풀려버렸다. 음식이 중요하다고 했던 엄마도 창밖의 한강을 보고는 “ 경치가 너무 좋다”를 조심히 연발했다. 친숙하고 인자하게 생긴 매니저가 다가왔다. 일전에 봤던 뾰족하고 딱딱한 사람이 아니다. 선한 느낌이 났다. 사전 상담으로 요리의 가격, 코스 뷔페 차이, 돌상 업체 연결과 코로나 방역을 알아놓은 터라 상세 내용 확인이 필요했다. 어른들이 선호하는 한식뷔페는 어려웠지만 어차피 살림과 육아를 하며 손님맞이가 힘들어 호텔 파티를 한다는 명분이니 어느 정도 양해들은 가능하리라. 요즘은 적은 인원으로 파리이버시한 파티를 많이 하는 추세에 코로로나 시기가 있어 전혀 불편하지 않은 기색이었다. 신랑이 조언한 아이들 아이스크림과 주스, 친정엄마가 밥은 나올 수 있는지, 파스타나 리소토의 여부 먼저 확인했다. 가격이 5~5.5 하는 성인 가격으로 통일이유연히 요리 교체와 밥을 세팅해주는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안쪽의 그레이 룸에 통 예약이 가능했고 전면에 돌상 세팅, 원형 테이블과 사각 테이블의 배치를 확인했다. 돌에는 전문 카메라도 촬영하고 연예인 사회인을 부른다고 한다. 가족 한복이나 드레스, 돌상을 대여하는 업체와 연결되어 있다고 했지만 여기서부터는 취향을 녹여 자체 준비하기로 했다. 추억을 담은 사진, 동영상을 남기고 싶다. 하늘이를 키우며 쌓아온 쇼핑 실력과 돌봄 능력으로 꾸미고 싶었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그 자리에서 정할 수 없어 일주 기간과 시간을 킵해놓고 그다음 주 화요일 오전까지 연락해 주기로 했다. 긴득했지만 첫발을 딛었다는 생각에 희망이 차올랐다. 나 말고 다들 머뭇머뭇하며 무엇하나 진행하지 못하고 애 돌고 있었다.


@ JK블라썸  15층 루프탑 레스토랑 백일 파티장 사전 예약상담
: 코스 타입으로 아이와 어른들 운 위해 라이스 추가, 리소토 스파게티 1인분 변경.
@제휴업체 이루다 파티 A 패키지 예약 상담
:메인 상차림 스타일 현수막(2 타입), 조화 장식, 티라이트 초장식, 실물 떡 포함. 과일 서비스
돌잡이 용품 6종 대여-> 헬륨 풍선, 센터피스 외 조화 장식 추가.
@아이들 의상, 헤어, 카메라 자체 준비 구입
(우리는 단정하게)
@JK블라썸 1층 플라워 카페 꽃다발, 장식 꽃 상담
:예약(쟈나 장미, 리시안 믹싱 꽃다발, 간단한 병 꽂이)
@ 중간 조율
: 코스 메뉴 변동사항 최종 날짜 시간 파티 시간 확정.
돌상 과일, 떡 구입처와 구입일, 세팅 시간 확인.
꽃다발 사전 수령, 병 꽂이 세팅 확인.
@마지막 날짜 확정, 양가 부모님 호텔 인원 변동 확인
코스 메뉴 구성, 선물 사전 대화


아직은 어색한, 그래도 이제는 틀 잡힌 화목함.    

 

“벌써 오셨다고?”

돌상, 홀 세팅, 테이블 배치를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다 도착하셨다. 이모, 엄마, 아이들 다 같이 다급하게 올라가니 막내 조카가 조심스레 마중 나오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해야 잡음이 생기지 않을까? 예전의 나라면 어떤 걸 해야 하는지 망설이다 타들어가고, 어쭙잖게 오버해 서비스 모드로 빠르게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바꿨다. 할 수 있는 걸 하는 걸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친정가족을 챙기고, 아기를 돌보고, 음식 세팅을 확인하고, 돌상 확인까지. 아직 나는 어른들을 모시고, 분위기를 주도하며 말랑하게 풀어나갈 여유도 없고, 그럴 때도 아니라는 상황파악을 했다.     

 조카가 어느새 학생이 되었다. 장난기 넘치고 이쁜 걸 사랑하는 어린이가 아닌 분위기도 살피고 예의를 지키는 학생. 남색 드레스에 익살 넘치는 웃음을 띤 채 가운데 하늘이를 앉히고 이뻐해 주고 챙겨주는 둘째 조카. 시간이 지나면 저런 날도 오는구나... 서먹한 공기를 말랑하게 녹이며 아이들이 뛰어놀기 시작했다. 하얗게 빛나는 '베네베네' 드레스를 입고 분홍과 금빛 가죽의 '멜라니'공주 신발을 신은 하늘이가 뛰기 시작하니, 좁고 한들하게 주름진 치맛자락을 하늘거리며 도톰한 뿔테를 낀 언니도 따라 뛰었다. 원숭이 표정으로 웃겨주니 한껏 웃으며 뛰어다니기 바쁜 하늘이. 배경음악만 깔리고 프리즘만 들어온다면 가족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이 따로 없었다.


이제는 우리 차례인가? 슬며시 형님이 다가왔다. 브랜드 이름이 확 눈에 띄는 쇼핑백에 공단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역시. 나도 딸 엄마가 다 됐는지 설레기 시작했다. 가지런히 포장된 자 안에는 빳빳한 종이카드에 백일을 축하하는 둥근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 옆을 장식하는 ‘100 day 마음이’ 어머님과 달리 한 다리 건너 형님은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세대구나. 아기 손에 끼워 사진을 찍고 노니 슬며시 다가오는 신랑. 장난칠 기세가 역력해 보이는데

"어머~ 편지~ 사진 찍어요 사진~.”

“뭐야 이게~”

"반지에 글도 있고~ 여자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고~뭘 몰라~”

여자들끼리 이쁘게 셀카 좀 찍으려니 시아버님이며, 아주버님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녀 배경이 살지 않는다. 시간이 없는데 말이지.     


이윽고 어른들 차례. 친정엄마와 이모가 마음이를 이쁘다고 칭찬하며 아버님께 아이를 안겨 드렸다. 아버님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고, 장난치기도 하신다. 피곤한 기색에 허리도 못 피던 어머니는 아이를 향해 슬며시 인자한 미소를 띠며  눈썹을 쓰다듬으셨다. 이것은 자주 보는 ‘홈 드라마 첫 회 장면’

“어머~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아요~”

이목구비가 동서 닮았네~”

“얼굴형은 아빠를 닮았더라고요~”     

형님이 슬며시 어른들 자리에라는 눈짓을 주니 착석이 시작되었다. 이제 밥을 먹으면 되나. 먹물 파스타와 크림, 토마토 파스타가 차례로 자리에 놓이고 애피타이저 수프와 스테이크들이 들어왔다. 하늘이를 챙기기 시작하는 큰 조카,

“(고기를 향해) 이거 싫어~”“오~ 단호한데~”“어머 큰 조카 스테이크 좀 썰어봤는데요~?”“응 칼질하는 거 엄청 좋아하시지~ㅋㅋㅋ"

"(친정어머니가) 콜라(맥주였나) 좀 주세요~“”

요리접시가 여기저기 돌려지고, 아이들 손에 밀려난 스테이크 한 그릇이 저리 밀려나 있었다. 슬며시 썰으라는 눈치를 받은 나는‘이걸 내가? 왜? 해야 되나?’하는 생각을 뒤로하고 조신히 잘게 썰어나갔다. 드디어  디저트 파이, 케이크, 과일 타임.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서 놓지 않는 형님과 나를 두고 바로 옆 친정엄마와 신랑이 너무 달다며 손사래를 쳤다. “에이~ 못 델고 다니겠는데~”끝에 다다르는 100일 파티에 슬슬 긴장을 놓으려던 찰나. 가볍고 장난 어린 투닥거림이 시작됐다. 놀이라고 생각된 적은 없었지만 이제는 적응해 나가야지. 테이블을 돌던 아버님.

“(예리한 눈초리)이건 왜 남았냐?”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이들이 고기를 안 먹네요~(선웃음)”“(친정엄마를 향해 속삭이며) 뭐야 남기면 안 되는 거야?”“몰라 나도~”

“(저 멀리 형님이) 이제 커피 좀 먹자~”

언젠가는 가족 모임이 물 흐르는 듯 지나가는 시간이 올까? 그때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웃으며 예의 치례 인사도 빠르게 건네고 내가 어떤 역할인지 뇌를 안 거치고도 농담과 아쉬운 소리를 하며 크고 작은 아이들 얘기, 부모님들 얘기, 사는 얘기를 당당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 언제쯤 일지...    

     

생각지도 않게 돌상 컨설턴트가 조명에 본판 사진까지 찍어주고 개별 떡포장을 돌리며 환갑상? 돌상? 못지않은 백일 파티를 마무리했다.                     


시원하다. 섭섭하다. 헛헛하다.  


호텔 로비. 귀엽게 서로서로 인사하는 아이들.

덕담과 다음을 기약하는 부모님들.

뒤돌아 가는 뒷모습이 약간은 아쉽고 쓸쓸해 보이는 이모와 엄마.


보내기 아쉬워 d-day 카드와 함께 100일 인증샷

찰칵찰칵.

헬륨 풍선을 통통 거리며 뛰어다니는

일일 공주 하늘이.

연신 웃어주는 신랑.


잔금 정산, 코스 미스 확인 재결제.

사진 회수, 양가 어른들 연락.

끝났나?


아니다. 병꽂이 꽃 놓고 왔구나.

앞트인 여름 슬리퍼를 끌꼬 찬찬히 걸었다.

쇼핑백에 끈으로 가지런히 묶은 다발을 들은 채.

단지 내 단풍나무 아래에 섰다.


불쾌감 드는 언쟁은 없었다.

날아오는 강력한 멘트에 후드려 맞는 멘탈 타격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이, 심심하고 무사한 100일 파티가 지나가버렸다.


바람빠진 풍선같은 기분으로, 그대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놀이터를 돌고 돌고 또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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