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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레짱 Jul 12. 2020

100일 축하는 거저 받는 게 아니더라고?

100일 실패, 두려움 극복기 (1)


 지금도 떠올리면 숨이 막혀온다. 하늘이 100일. 우리는 들떠있었다. 동굴생활 끝에 아이와 내가 살아있음을 축하하는 그날. 정신없는 와중에 어렵고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 투성이었지만 조금씩 들리는 바깥 소식에 들떠가고 있었다. ‘실패’란 어떨 때 생기는가? 상황이 엇갈리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맞이하게 되는 일이었다. 아기자기하고 이쁜 백일 홈파티를 하며 들뜨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왔을 때 그 미묘한 불편함들. 백일상을 차릴 때 엄마가 부탁한 떡을 올리지 않아 들었던 서운함. 다 괜찮았다. 무언가 삐끗하긴 했지만 그래도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시댁 가족과의 백일 축하 모임이 있는 날. 뭣도 모르고 나는 들떠있었다. 시아버님이 해주신다는 축하 백일상. 우리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들었지만 ‘첫째 때도 그랬고 아버지가 해주신 다했어~ ’ 호언장담하는 어머니의 말을 믿었다. 딱히 도움의 손길을 막지 않는 신랑을 보며 그저 그러기로 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참으로 순진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절약을 한다며 육아용품에 돈을 아끼고 내 몸을 녹여내고 있었다. 정보와 현대 기술을 활용할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 출산 후 첫 파티. 하얗고 부드러운 '압소바' 원피스가 하늘이의 하얀 피부에 걸쳐졌다.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엄마의 아가씨 취향으로 원 컬러 소박한 면 레이스 원피스 안에 둥그랗고 귀여운 항아리 바지를 입고. 하늘 높이 머리를 삐죽거리며 턱에는 요정 이모가 선물한 두툼한 꽃무늬 턱받이를 맺다. 마냥 철없을 것 같던 삼촌은 시원하고 단정한 하늘빛 남방을 입고, 커트한 머리로 어른 역할을 노력했다. 아직 할머니이고 싶지 않은 미숙한 친정엄마는 어색한 블라우스, 생 머릿결을 찰랑이며 여성스럽게 단장했다. 혹시나 실수할까 가기 전에 들린 카페에서 가벼운 농담들을 주고받으니 기분이 한결 말랑해졌다.

     

웨딩홀 내에 지층 뷔페홀에 들어가면서 신랑의 여유가 사라졌다. 부모님이 이미 와서 기다린다는 말에 다소 다급해 보였다. 기억이 흐릿하다. 동그란 테이블이 모여진 백일 홀에는 차갑고 예민한 공기가 흘렀다. 뭘까? 이 분위기는? 평상시 들리던 호방한 어머니의 웃음기는 빠져있다. 연신 장난을 치며 뛰어다니던 조카들도 얌전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버님은 아이를 살갑게 안거나 이뻐해 줄 기분은 아니어 보였다. 이 곳은 백일 축하 잔치라기보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바뀌게 될 자신의 역할에 손해보지 않으려 한치에 양보 없는 차갑고 살 엄음판 같은 ‘격투장’ ‘바둑판’ 같았다. 편안함과 정이 스며든 가족모임 임도, 웃음과 여흥이 묻어나는 파티 자리도 아니었다. 손끝이 떨려왔다. 얼굴에 생기가 사라지고 머리가 차가워졌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새번째 손녀에게까지 백일을 해줘야 하냐고 생각하는 아버님의 인색함에? 그럼에도 작은 아들을 챙기려는 어머니의 미련 넘치는 사랑에? 동생에 대한 배려와 인정이 없는 아주버니에게? 그 와중에도 조카들이 직접 쓴 편지로 위계를 새우며 본인은 내려가지는 안으려는 소심하고 이기적인 처사에? 아닌가? 거절하지 못하고 상항에 눈을 감고 전달하지 않은 채 받을 것만 받고 웃고 싶었던 신랑의 뻔뻔함과 안일함에? 위화감을 감지했음에도 그저 뛰어주는 분위기에 취해 준비도 없이 즐기려 한 나의 단순함과 무지함에? 무엇보다 미안해야 할 건 친정가족이었다. 축하받지 못한 하늘이었다. 알지 않으려 했고 알려주지 않으려 기대에 부풀어 현장에서 쏟아지는 따가움을 맨몸으로 맞게 해야 했는가? 눈물이 흘러 주저앉는 귀여움이라도 있으면 좋았을까? 그 자리에서 깽판 치는 강짜? 어른들에게 짜증내고 따지는 싸가지도 없었고 샐 샐 샐 웃으며 이쁘게 돌려 까는 기술을 갖춘 여우도 못 되었다. 그저 빠르게 자리를 피하는 형님에게 아이를 내어주고, 어머님 아버님에게 비위를 맞추고 사정을 알아내는 일을 엄마에게 떠 맞기고, 먹으면 먹을수록 조미료 범벅에 식어빠진 음식을 맛있다고 하는 신랑을 의아하게 쳐다보고, 창백해진 표정으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는 동생을 손짓으로나마 토닥여줄 뿐었다. 그날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친정가족을 어떻게 보냈고 시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도 기억나질 않는다. 신랑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순수’하고 싶었고 거저 아름답고 싶었던 나의 무지함을 외면해 맞닥드린 ‘실패’를 곱씹었다.            


<내향 육아>  이연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어느 날 나처럼 많이 지쳐있는 사람이라면 잠시 생각해봐야 한다. ‘육아’ 자체가 힘든 것인지, 긴장과 초조에 사로잡힌 내 마음 때문에 힘든 것인지. 내향인은 무엇보다도 가볍고 편안 난 마음을 가꾸는데 집중해야 한다. 수능 날 답을 밀려 쓴 나, 파김치 엄마였던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걸 몰랐을 뿐.      

아이를 키우며 매일 시험대 위에 올라선 느낌이었다. 특히 시어른들 오시는 날, 영유아 검진 날, 동네 엄마들 만나는 날이면 수능 날 아침처럼 몸과 마음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모두가 자신을 채찍질하며 뛰어갈 때, 몇몇은 그마저도 웃으면서 할 때, 나는 길을 잃은 심정이었다.      

언젠가 한 아이돌 그룹이 무대에 오르며 ‘놀자’라 외치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큰 무대에 오른다고 생각하면 공연을 망쳐서 놀고 온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무대에 선다고 했다. 그러면 결과가 훨씬 만족으러웠다고. 인상적이었다. 육아하는 이에게도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음이 자꾸 작아지거나 바스락거린다면, 조금 느슨해져야 할 때다. 더 힘내자고, 더 잘하자고 다짐하는 그 지점에서 일단 한번 멈춰보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말 같게 개어오면 외치는 거다 “아가야, 놀자!”     

1년 전, 아이의 유치원 입학을 앞두곤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풍경 앞에 설 때면 으레 그렇듯 긴장되고 두려웠다. 아이가 친구들과 잘 지낼지. 크고 작은 어려움은 어따ᅠ갛게 극복해 낼지. 아이를 믿는 대신 의심했고 의심해씨 때문에 걱정했다. 유치원 생활에 대한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히고,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바지런히 조언했다. “친구랑 잘 지냈어?”“오늘 잘했어?” 떨리는 마음으로 묻고 또 물었다. ‘엄마가 이만큼 신경 쓴다’는 걸 보여주면 아이가 안심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엄마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지켜보던 아이는 동요했다. 엄마의 걱정 어린 질문과 충고는 새 출발을 하는 아이에겐 짐이 될 뿐니었다. 다가오지도 않을 일들을 걱정하느라 미리 지치는 일도 줄었다. 걱정과 염려의 때를 아이에게 옮기지 말자, 매일 다짐한다. 잔잔한 마음이란 얼마나 값진다, 아이를 키우며 깨닫는다.      

          


두려움 따위, 내 스타일로 가볍게 날리는 건 어때?
100일 잔치 따위, 호텔 100일 파티로 바꿔 버려!

     

마음이 100일이 왔다. 꼭 하고 싶었다. 겨우 넘어온 권한. 주변에서 가볍게 풀어준다고, 세간이 코로나로 움츠러들어도 마다해선 안되었다. 백일이 세상을 향한 첫 데뷔라면, 내 아이와 100일간 버틴 선물산이라면, 사양 안고 나의 색깔을 녹여보자. 이제껏 어른들 생각, 친구 생각, 남편 생각, 아이생각을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헤매기만 했지. 실패해도 내 색깔을 녹여보자. 지금 내가 잘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는 100일 잔치. 아니 명칭부터 바꾸자. 100일 파티. 가장 선호하고 좋아하는 호텔 코스로. 멀지도 새롭지도 않은 익숙하고 편한 집 앞 호텔에서. 하느라 바빠 잊히지 않게 이쁜 사진, 동영상을 남기고 꽃으로 장식하자. 좀 촌스럽지만 가족이 다 모여 옛날 스타일로 각 잡고 분위기 잡아보자. 다른 엄마들 다 싫다는 폼 내기가 나는 좋다. 내실이 중요한 여자들. 스스로 하는 걸 좋아하는 여자들. 나는 아니다. 보기에 이쁘고 화사하게 빛나는 걸 쫒아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타는 것도 좋지만, 전문가가 해주는 내용을 상담하고 조율하며 맞춰가는 거에 힘들더라도 기쁨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는 나다. 이 모든 걸 녹인 내 스타일 100일 파티. 신랑은 무엇보다 일정과 인원 조율 같은 꼼꼼한이 특기다. 혹시나 있을 마지막 변동 사항으로 파티가 엉망이 되거나 뒷말이 나올까 봐 마지막 끝자락까지 꽉 잡으려는 단호함과 섬세함을 발휘할 듯 보였다. 이래서 우리가 부부 인가보다. 가자. 가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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