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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레짱 May 31. 2020

같이 또 따로, 선과 역할을 찾아가는 나날들.

공동육아 부부관계, 버티기. 채우기.


정줄 절대 놓지 말아야한다. 단호함이 생명이다. 아니다 싶으면 멈추자.   

       

오전에 엄마가 다녀갔다. 그날 저녘. 언젠간부터 하늘이가 목욕을 하고 아빠가 옷을 다입히면 마음이와 함께 셋이서 안방으로 다같이 들어간다. 책을 읽고 짧은 수다를 떨다가 잠든다. 일과를 마치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거실에 있는 신랑을 보니 무언의 벽이 느껴졌다. 이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이제는 농담으로라도 뚫고 들어가기 어려운 정도의 단단하고 견고한 두께감이 느껴졌다. 뭘까? 이 불안감은? 살짝이 스치는 불쾌감. 화요일 각자의 일과를 마치고 어제보다 좀 더 늦은 새벽 1시? 2시? 가량 거실에 나와 보았다. 아이들과의 저녘 잠자리에서 있었던 소소한 친밀감을 나누고 싶었다. 쉬는 시간을 방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넘어섰다. 신랑이 욕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무슨 용기에서일까?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욕실에 문고리를 돌리니 ‘철컥’ 둔탁하고 단단한 잠금이 느껴졌다. 뚝하고 끈어지면서 열려진 문틈사이로 뱉어냈다. “적당히 좀 해라. 그래 한번 보자.” 뒤돌아 잠을 청하지 못하고 몇마디를 나눴다.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짜증이 많이 나네.”“이것도 아닌가보네”“내 애기를 듣고 포기하라고 얘기한게 아니야, 나한테 책임전가 하지말고.”“책임 전가 안해!(단호하고 격양되고 짜증나는 목소리) ”책임지라고 한 얘기가 아니야!“ 그 길로 긴 담배 시간을 가지고 온 신랑과 간단한 포옹를 나눴다. 이 차갑고 딱딱한 느낌. ‘불안해서 그래. 가던 길 마저가. 그게 맞는 것 같아’ 간단한 톡을 남기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내 안에 얇지만 확실한 선이 생겼다. 

   

등원시간. 새벽배송으로 시킨 물건이 들어왔다. 지저분한 알비백으로 바뀐 사실이 짜증이 나 보였다. 짜증 릴에이가 시작됐다. 하늘이의 가방 속에 물통을 발견하곤 “내가 꺼냈었어야지... 후우...” 불쾌감이 전염되는 것도 싫은데, 화풀이 질문 공새가 시작 될 듯 보였다.  옆으로 비껴서 아이에게 등원인사를 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가슴의 먹먹함을 부여잡고 싱크대 앞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엄마한테 인사 드려야지~!” “아까 인사 했는데?”“얼굴보고 인사할려고 그러지.” 보고있기도, 말하기도, 포기하기도, 주장하지도 말고 어쩌라는건지. 아이를 향해 인사하고 들어오는데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이 올라왔다. 목이 답답하고 가운데 가슴팍이 조여져 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로 전달할 의사는 없다. 눈과 귀를 닫고 있을땐 타인의 말따위 자신의 언어로만 해석할 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할까. 더 노력하거나 내려놓는게 아니다. 유지하고 버텨야 할 때가 왔는데, 똑바로 바라보기엔 가슴과 머리가 아프다. 생각보다 더 아프다. 쓰라린 것 같다. 눈이 시뻘게져 쌈닭처럼 달려들기는 커녕 불만어린 눈빛, 말, 행동이 뇌리에 스치기만 해도 숨이 막혀온다. 머리가 저려온다. 이제 선을 긋고 넘으면 피하고 움직이지 않아야 할 시기인가.


나의 자발적 역할 : 바른말듣기좋은말, 드러난 밝은 면보기, 교육적인 부분, 자기계발

신랑의 자발적 역할 : 불평불만, 숨겨진 어두운 면보기,논리적인 부분, 비평         


선을 넘는 사람들에게 뱉어주고 싶은 속마음 -도서명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나는 줄곧 화가 나 있었다. 어렵사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하루 종일 내게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화를 식히지 못한 채로 잠이 들었다. 주변사람들에게 내 힘듦을 털어놓아도 ‘회사 생활이 다 그렇지’‘네 성격이 별나서 그래. 너 좀 예민하잖아’‘누구는 회사 생활이 좋아서하냐? 힘든게 단연한거지’(중략)괜찮은 척하면 정말로 다 괜찮아 질 거라 밎으며 나조차도 내 감정을 무시하기세만 급급했다.-5

챕터1 돌아서면 기분 묘해지는 상태
챕터2 반복되는 무례함에 ‘예민함 안테나’가 세워지는 상태
챕터3 하다하다 일상과 태도까지 관리당해 어지러운 상태
챕터4 이러려고 열심히 자소서 쓰고 면접 봤나 싶은 상태
챕터5 분노보다 무기력 우울감이 밀려오는 상태     

>곱씹을수록 기분 더러운데, 당시에는 내 기분이 왜 구린지 설명할 수 없었다.
(중략) 분명 불편한 말들이었는데 불편하다는 표현조차 때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상사들 사이에는 높디 높은 마음의 벽이 생겼다. 왠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당하는 느낌이었다.  아픈줄도 모르고 하루종일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뒤늦게 집으로 돌아와 몸에서 푸른색 멍 자국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아픈 자국이 있기는 한데 막상 또 어떻게 아픈 줄은 모르겠는데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분들은 내가 무심코 던진 말에 이렇게나 멍들어 있었다는 걸 알긴 했을까. - 64     

>아, 기분 더러운데 이걸 말해, 말아?
매번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속으로 외쳤다. (중략) 하나하나 열변을 토하며 가르쳐줘야 말귀를 알아들을까 말까한 이 무식한 사람들이 하루종일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이라니. 정말 절망적이기 그지 없었다. 차라리 원펀치를 강하게 맞았으면 아프다고 소리라도 쳤을 텐데, 소심하고 작은 잽을 여러변 맞다보니 뒤늦게 아프다고 호소하기도 참 애매한 상황이 됐다. 왠지 이곳에서는 매번 문제를 걸고 넘어지는 내가 낯선 외계인 같은 존재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 경고 선을 위태롭게 넘나드는 이분들은 직급이라는 방패를 과신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중략) 왠지 이분들은 이렇게 하나하나 설명해줘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답답한 마음이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밀려오는 갑갑함에 어느새 나는 또 옥상으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118p     

>공황장애 앓는 부장님.
우리 팀 이 부장님은 회사생활이 많이 힘드신지 지병을 달고 사셨다. 책상 위에도 가방 안에도 항상 약봉지가 가득했다. 공황장애까지 있어서 매주 화요일 정신병원에 출석하셨다. 대형 종합병원에 가까운 분이시라 하는 짓이 밉다가도 자연스레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분이셨다. 이 공황장애의 원인은 실장님이라고 했다.(중략)아랫사람이 일을 세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계속 질문을하는 거야. 간단한 질문에서 세부적인 질문으로 계속해서 파고드는 거지. 어느정도 선에서 대답을 못하기 시작하는지 보면 대충 알 수 있어, 제대로 미팅하고 돌아왔다면 상대방이 하는 말을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하잖아.“ 나는 실장님이 사람눈을 쳐다보지 않고 대충 말하는 걸 본적이 없다. 가끔 내게 날아오는 질문이 많아지는 날이면 신입사원인 나조차도 숨이 꽉 막히기 시작한다 그런 실장님이 날 보며‘넌 내과야’라고 말하는데 진심으로 강력히 부정하고 싶었다.

-아니요, 실장님. 저는 꼼꼼함과는 거리가 멀어요. 기본적으로 저는 다른사람한테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질문 많이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요. 가끔은 열심히 노력해서 얻는 것보다 대충 했는데 얻어걸리는 게 더 기분이 좋기도 해요. 만약 실장님 같은 성격이 임원의 자질이라면, 저는 애초에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실장님처럼 살려면 24시간 실수 없이 긴장하고 살아야 한다는 건데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요? 감정이 있긴 하신거죠?                         

   

회사생활 이야기 인데도 결혼이라는 제도에 들어와서 내가 느꼈던 감정의 대부분인 녹아져있다. 이 과정은 타인과 부딪히며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선을 만들기 위해선 어찌 피해 갈 수 없는 경험인걸까?           

 




늘어져가는 몸을 일으켜 신문을 깔고 분갈이 준비를 한다. 촉촉히 젖은 흙이 파드드 손가락을 적시며 떨어지니, 시원한 기분이 피어난다. 깔망 위, 두 칼란디바 사이로 촘촘히 흙을 채우면서 메말라 가던 마음이 젖어드는 기분이 든다. 스윙바운서에 누운 마음이의 발간 볼을 나뭇잎으로 간지럽혔다. 배 위로 살포시 올려놓았다. 햇살 가득찬 기운과 잎새의 물기가 느껴지고 있을까? 화분에 물을 준다. 물받침에 또로록 후두둑 소리를 들으니 맑아진다. 분갈이로 불쾌감을 뭍고 마음의 얼룩을 씻겨냈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햇살이 머리, 눈동자에 내리 쬔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선명한 초록색 나무들을 보니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이 기분을, 느낌을 사진에 담아 붙잡아 둘수만 있다면. 새로 사 어색한 툴레 슬리크 유모차에 올라탄 마음이를 바라보았다. 손잡이에 잡히는 단단한 감촉과 부드러운 핸드링에 아이와 산책이라는 거부감이 낮아졌다. 맨발에 발뒤끔치가 없는 핑크빛 운동화, 찰랑이는 a라인 투피스를 입고 한발짝 한발짝 뗄때마다, 멈춰있던 근력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떨어진 기분과 체력이 채워진 듯 했다.





아빠의 핸드폰 구매로 셋이 먹는 저녘. 간만에 한 주막밥 만들기는 편안하고 웃음 가득한 저녘 시간을 가져다 주었다. 셀프 동영상을 찍어 보고자 핸드폰을 세웠다. 하늘이가 화면에 시선이 고정되고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연신 질문을했다.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말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도 덩달아 농담을 하며 쿠킹 클래스 브이로그라도 찍는 기분을 냈다. 어디다가 소문내고 누군가를 끌어들이고 싶다는 엄마의 욕심을 꾹꾹 누르고 얻은 하늘이와 마음이와의 즐겁기만한 저녘시간을 가졌다. 이런 저녘 시간이라면 힘들더라도 얼마든지 횟수를 늘리고 싶다.


문을 열고 들어온 신랑에게 기분 좋은 느낌이 전해져온다.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게 꺼내놓은 갤럭시 s20+ 케이스 두개를 올려 놓은다. 클라우드 블루, 아우라 레드. 내 취향을 반영한 흔적이 보였다. 새로운 5g 요금제와 차후 변경 관리 내용을 꼼꼼히 말하며 뿌듯함을 전하고 싶어했다. 먼 걸음이라 할 수 있는 강변 테크노마트를 다녀온 피로감은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어색하지만 좋아보였다. 손끝에 닿은 맨들맨들하고 가벼운 그립감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이갔다. 육아일상과 다음날 출근일상따윈 지금 이 순간 깡그리 잊어먹고 싶다. 온몸으로 기뻐하고 고마워하며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튀어오르는 욕심과 잡 생각을 누르느라 바빴다.




답장이 바로 나오고 바로 대답해야하는 실시간 소통은 좀 버거워. 할말은 글로 풀고 소통은 sns정도?
웹툰 <어쿠스틱라이프> 난다작가의 멘트 중


이 대사가 요즘 깊이 와 닿는다.(문득 생각났다.) 이제는 생각을 하고 바로 내뱉지 않고 속으로 말하고 싶다.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지만 전달하고 싶지않다. 바로 답장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버겁고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답답하다. 그저 조용히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조용히 풀고 싶다. 스스로 생각을 살포시 품고 슬며시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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