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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레짱 May 24. 2020

그림 같은 남매? 노동과 싸움의 존재 인정부터.

공동육아 평일 일상

요리사 아빠, 4살 누나, 1살 남동생  저녁의 가족시간.     


깔끔하게 씻고 압소바 모이몰론 우주복을 입은 마음이. 타임스퀘어 난닝구에서 신랑이 선물로 준 핑크빛 투피스 원피스를 말끔해진 몸에 입어본다. 붉은기가 도는 립글로스를 바르고 단발머리를 드라이로 말리니 밝은 느낌이 든다. 싱크대 위. 스테인리스 트레이에 찹스테이크 밀 키트와 새우 파스타 재료를 준비한다.  "엄마~ 애기 울었쬬? 애기 잘봤쬬?" 문구점에서 득템한 클레이와 풍선을 들고 신이 나서 들어온다. 요리하는 동안 식탁 위에서 놀이 타임이 펼쳐진다. 아빠의 질문이 시작된다. 시간은 몇 분? 해동한 새우는 익은 건가? 소금은 얼마나? 오일은 어디에? 이어지는 질문 릴레이에 나도 모르게 관심이 쏠린다. 어느새 텔레비전 쪽으로 이동한 하늘이는 클레이 돼지코를 붙여 인형놀이가 시작되었다. "꿀꿀, 꿀꿀! 돼지야~~~!" 자고 있던 마음이는 어느새 눈을 떠서 슬근슬근 울으려 시동은 걸고 있다. 이제 스윙 바운서 차례인가?     


아빠와의 요리에 집중하던 찰나, 로망과도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첫째 하늘이가 모빌 놀이에 질려 엄마를 바라보는 둘째 마음이에게 다가갔다. 양손에 스위의 손잡이를 잡고 흔들며 아이의 눈짓에 호응을 해주었다. 마음이의 입술이 들썩였다. 누나를 향해 고정된 시선. 눈매가 반달로 잡히면서 한껏 웃어내는 표정이 나왔다. 답하는 듯 하늘이는 한층 더 세게 그네를 밀었다. 어느새 서로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동생이 누나를 좋아하네~, 마음이, 하늘이가 놀아주니 좋아해~’라고 말하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엄마의 시선을 의식한 하늘이는 빠르게 그네를 밀기 시작했고, 갑작스레 높아진 에너지에 어린 마음이는 살짝살짝 흠칫해하고 있었다.  아, 이런.    


새우 파스타를 흰색 접시에 담아 이쁘게 세팅한 아빠의 요리가 완성됐다. 동물 모양 파스타를 한자리에 일일이 모아 낸 아빠의 마음이 눈에 띄었다. 평상시 보다 잘 먹는 모습은 편식으로 걱정한 아빠의 마음에 위안에 되었다. 아래서 바라보고 있던 마음이를 안아 대화를 시작했다. "와~ 누나 먹는 거 맛있어 보여~ 엄청 잘 먹는다~" 신이 나서 더 먹기 시작했다. 몰아가거나 억지로 하는 분위기에 안 좋은 느낌이 생길까 봐 조심조심.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빠, 엄마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동생의 시선을 느끼며 즐겁게 한 그릇을 비워냈다. 마음이에게도 크면 누나처럼 파스타 같이 먹자며 화기애애한 식탁을 마무리했다.      



형제자매는 한 팀. 니콜라 슈미트 지음/이지윤 옮김     

평생의 과제     

형제자매 관계를 가족의 평생 과제로 인식하라. 유년기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훈련장이다. 형제자매가 꼭 서로를 사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랑 하하고 강요할 수 없다.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를 대하는 법은 분명 배워야 하지만, 부모는 그 이상이나 그 이하를 요구할 수 없다. 63p          

역할 한정에 대한 나의 콤플렉스 극복

가정에서 아이가 자신만의 영역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아이가 까다롭고 다혈질이라면 다른 아이는 얌전한 역할을 맡는 식이다. 아이로선 정산적 서랍을 만들어 그 안에 개념을 채우려는 행동이다. 이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한번 정해진 역할에서 다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겐 고정관념, 즉 복잡한 게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머릿속에 서랍을 만들어 그 안에 개념을 채우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정관념이 사고의 오류를 만들기도 한다.... 그 애 칭으로 불리던 때를 그리워 하든 아니면 그와는 상관없는 모습으로 성장했든 간에 아이들의 어떤 부분은 어른이 된 후에도 어릴 적 할당받은 역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곤 한다. -110p     3장 세 번째 디딤돌/ 아이들의 역할을 이해하고 문제를 예방하는 법

  

일본 홈 드라마 같은 단란한 가족을 꿈꿨다. 사이좋은 남매, 화목한 부부. 비속어나 날카로운 말들은 들리지 않고 서로서로를 위해주고 웃음이 넘치는 일상.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온 부상자들이 누워 있는 병실과도 같은 적막함이 흐르는 거실 풍경은 싫었다. 그러기 위해서 싸움은 없어야 하고, 위계질서 따위는 없어야 하며, 강제사항은 없는 민주적인 가족이어야했다. 뒷면 따위는 없애고 그냥 이쁜 앞면만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사이가 좋아야 한다’라는 왜곡된 신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나쁘다. 분노나 화를 표출하는 것은 무섭고 해서는 안된다. 평화로움을 위해서 나를 억누르고 웃음을 띄거나 평점심을 유지해야만 한다. 아이들과 신랑도 마찬가지다. 아빠는 온화하고 마음이 넓으며 아이를 훈계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 세상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자신은 희생적이어야 한다. 누나는 동생에게 강압이 있어서는 안되고 동생 또한 누나의 말에 동의하고 종종 장난도 치며 어울리는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싸움은 없어야 한다. 있다면 애저녘에 싹을 잘라야 한다. 성장과정에서 인내를 배우고 싸움을 안 하도록 만들어나가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 근본부터 바꿔야 했다. 세상에 가장 큰 틀은 존재해야 하고, 위계질서는 있어야 하며, 규율은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 과정은 분노도 일고 화도 나고 억울함도 생긴다. 그 자체는 나뿐 것이 아니면 자연스럽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참고 삭혀서 되지 않는다. 병이 생길 뿐이다. 아이들에게도 화가 나는 걸 듣고 표현하며 푸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되도록 강압이 아닌 대화를 통하여.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자체를 삭제시키거나 종식시키는 게 아니었다. 협상하고 맞추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싸움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오히려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혼자만을 생각한 사람이었는지. 앞으로는 기대해보려, 즐겨보려 한다. 싸우고 말하고 상처 주고 위로해주는 일상을. 어찌 보면 아수라장 같은 일상이 기다려진다. 물론 나는 하루에 12번도 더 정신을 놓고 싶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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