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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과 국화꽃

분명 울지 않았는데 어떤 아침은 간 밤에 펑펑 운 것 같다.

by 망고빵 Jan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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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백 살까지 살 거라고 호쾌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하곤 했다. 따라서 나는 할머니가 백 살까지 살 거라고 생각했다. “안돼, 할머니 110살까지 살자” 할머니는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처럼 “그럴까?” 하고 답했다.


장례는 기독교식 절차로 이루어졌다. 제사 음식 같은 것은 없었고, 국화꽃이 조용히 놓여있었다. 나는 하얀색의 꽃잎으로 가득 채워진 국화꽃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화려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 않게. 국화꽃줄기는 아주 단단했다. 나뭇가지처럼 단단하고 짙은 초록색 또한 너무 밝지 않아서 좋았다. 무게감이 있었다. 빈소에 온 사람들은 화분에 물꽂이 되어 있는 국화를 꺼내 영정사진 옆에 놓았다. 그리고 묵념. 꽃을 놓는 대신 향을 피우기도 했다. 나는 어쩐지 향을 피우는 것이 더 격식 있게 느껴졌다. 막내 삼촌은 향에서 떨어진 재를 수시로 닦았다. 향로에서 다 피운 가느다란 향은 재가 되어 그 자리에서 톡 내려앉기도 했지만 사람 옷자락의 기척에도 흩날렸다. 재를 물티슈로 닦으면 분으로 된 재가, 재가 된 향이 젖어 흡착되었다. 영정사진 앞에는 할머니가 늘 보던 성경책이 있었고, 나는 이따금씩 책장을 넘기며 음독했다. 손님들이 뜸할 때 향의 연기가 멈추면 안 된다는 듯이 막내삼촌은 어이쿠 향 다 타네 하며 얼른 촛불에 향을 갖다 대고 불을 붙여 꽂았다.

장례식 도우미 팀장은 둘째 삼촌의 동창이었다. 그리고 엄마친구의 동생이었고, 나 역시 알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친근하면 모두가 이모 삼촌이던 어린 시절 봤던 사람이었다. 그 이모는 나이가 들어도 알아볼 수 있었고, 나는 금세 그 이모가 고양이와 강아지를 좋아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의 이모는 익살스러웠고 키우던 강아지와 닮았었다. 나는 그 강아지를 조금 무서워했었다. 그 이모는 장례식장에서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분주히 움직였다. 전문가 다웠고 진지했다. 빈소에 들어와서 쌓인 국화를 보고 는 한 줌 쥐어서 화분에 꽂았다. 여기 건조해서 꽃이 잘 시드니까 다시 통에 넣어놔, 그럼 다시 싱싱해져 라고 했다. 나는 꽃을 물에 꽂았다가 다시 올려놓길 반복했다. 하지만 바구니에 꽂아져 있는 꽃들은 힘없이 쳐지고 잎끝엔 연한 갈색이 되어 마르고 있었다. 그것도 다시 꽂을까 고민하가다 말았다.


할머니의 빈소 한편에는 붉은 십자가가 수놓아진 깃발이 있었고 거기엔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라고 쓰여있었다. 할머니는 고향에 가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것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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