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합평, 첫 경험

부제: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

by 망고빵

소설 쓰기 수업 첫날, 나는 자포자기의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이유는 앞으로 내가 쓸 글이 아주 형편없을 것 같아서.

내가 일삼는 비겁한 습관 중 하나인 남 탓을 하는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니, 다짜고짜 써오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나처럼 무지한 상태의 수강생도 용감하게 작가의 꿈을 안고 수업에 올 수 있다는 것을 몰랐나. 내 경험으로 비추어 미술학원에 처음 가면 선 연습을 하고 피아노 학원에 처음 가면 음계를 배웠듯 소설 수업에도 처음 가면 짧은 문장부터 연습하지 않을까 하는 솜사탕 같은 수업을 생각했던 것이다.


수업 전에 미리 공지한 과제로 단편 소설을 읽기가 있었다.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하면서 읽긴 했다. 예상대로 본격적인 수업은 감상평을 나누며 시작되었다. 그리고 수업 말미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 (엥? 이 렇 게? 그 게 뭔 데?)

아마도 책을 많이 읽어 본 사람에게만 해당 하는 말 같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수강생들. 자기 소개를 했을 때 유난히 인상깊었던 사람이 있었다. 본인은 한국 소설은 잘 읽지 않고, 미국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여자는 소설 속 인물의 주치의가 된 것처럼 주인공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책상 아래로 내려온 발은 엑스자로 겹 쳐 있었고, 메리제인슈즈를 신고 있었다. 시니컬한 말투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에 비해 앞코가 둥근 구두가 유난히 귀여웠다.

내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가 책 좀 읽는 사람이긴 하지만 막상 좋았던 소설을 떠올려보자니 별로 없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책을 펼치고 만지고 소장(진열)하는 것을 좋아하는 거였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내 허영심을 새삼 확실하게 깨닫자 나는 내가 싫어져버린다. 또한 선생님이 ‘이렇게 쓰시면 됩니다.’ 라고 말 한 순간 나는 ‘이렇게’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걸 깨달았고, ‘이렇게’가 뭔지 알아보겠다는 작정으로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져서 이 수업을 없던 일로 하고 싶었다.


하. 그러면 내 꿈은 어떡하지. 난 작가가 될 건데. 이런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어불성설이다. 그래도 꿈이란 게 원래 그런 구석이 있지 않나. 남에게는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내 눈에는 어쩐지 멋진 부분만 들어오고 마는 것. 곁눈질로 힐끔 힐끔 보다가 결국 나도 모르게 자신을 투영시켜보곤 하는 것. 그것이 자신과 어느 부분에 맞닿아 있는지 생각도 못 할 새에 망상으로 빠져버리는 것.

내 머릿속에 작가는 뭔가 독특하면서 지적이고, 낭만적이면서도 왠지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가진 멋있는,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도 뭔가 용서되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고 그런 예술가들, 난 그게 되고 싶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합평을 하는 날. 내 글이 합평받을 차례가 다가올수록 교실에 들어가던 자포자기의 심정은 온데간데없이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기대하는 게 없는데 심장이 나대는 걸 보니 그건 설렘이 아닌 긴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안정을 취하기 위해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들의 어깨나 책상밑에 다리,그 밑에 발, 그리고 신발을 봤다. 누군가의 러닝 슈즈를 보자 헬스장이 떠올랐다.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 스트레칭이 몹시 하고 싶었다.

꾸역꾸역 제출한 내 글에 대해 나는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은 점점 쪼그라들고 있는 나를 모르는지, 한 단어, 한 문장, 내가 쓴 글에 대해 요목조목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뭔지 모를 부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의견이 더해갈수록 내가 뭔가 대단한 잘못을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여러 말들이 오고 간 사이 나는 내 글에 대한 칭찬을 깊이 마음속에 새기며 얼른 내 순서가 지나가길 바랐다. 내 맞은편에 앉은 검은색 로퍼를 신은 사람은 지식을 뽐내기 위해 온 것 같았다. 근데 뽐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내 자격지심인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내 마음은 이렇게 말 하고 있었다. (잘 났 어 정 말)

자격지심을 애써 떨치며 침착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온 몸에서는 땀이나 미끄러울 지경이었다.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