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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단어로

글쓰기는 어렵다

by 망고빵


순진하게도, 나는 마음과 단어만으로도 글이 완성되는 줄 알았다. 합평을 시작하며 잘 정돈된 문장만이 글쓴이의 뜻을 독자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글을 쓴다는 것에 있어서 문장이라는 것이 나에게 난관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오로지 마음과 단어, 그리고 영감이면 될 줄 알았다.


나는 첫 문장을 쓰고 나면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기분이 든다. 내가 머릿속에서 떠올린 생각이 과연 문장으로도 그럴까? 글로 적힌 순간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들지만, 한 문장에 붙잡혀 있으면 다음 문장은 영영 없을 걸 알기에 일단 써버린다. 사실, 나는 한 문장을 끝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끈기가 없는 사람이다. 합평을 받은 뒤에서야 “이건 좀 이상한가?” 싶었던 문장이, 어떻게 이상한지 확실히 알게 된다. 그러면 고치거나 없애면 된다. 문제는, 내가 아무런 낌새도 못 챘는데도 완전히 이상한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는 거다. 그럴 때마다 난감하다. 내 글을 해독하듯 읽었을 사람들을 떠올리면 괜히 미안해진다. 그러면서도 계속 쓴다. 이상한 문장이 나오는 걸 알면서도, 한 문장을 쓸 때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하면서도, 결국엔 또 다음 문장을 써버린다. 어쩔 수 없다 이미 이 모임을 하기도 했으니.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열두 살 무렵부터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 외에도 해야 할 것 과 하고 싶은 다른 일 들이 많았다. 꼭 돈으로 환산되는 일이 아니더라도 쓰는 것보다 쓰는 일은 언젠가 하게 될 해야 할 일로 뒷 전이었다. 보이는 이미지가 전부인 옷을 만지는 일을 했던 내가, 보이지 않는 마음을 글로 전달하는 게 버거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으로 쓴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네모난 작은 창문의 밤을 바라보며 그녀는 아직도 깨어 있다.” (혜미는 아직도 잠에 들지 않은 채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본다-지금이라면 이렇게 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대체로 창문은 네모이고, 창문의 밤보다는 창밖으로 보이는 어두운 밤이 맞을 테고 그 밤 풍경을 보고 있으니 당연히 깨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이었다. 그런데 소녀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3인칭 인물을 ‘그’또는 ‘그녀’로 지칭하는 것이 소설의 정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첫 장면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며 떠오르는 단어들을 조합해 마침표를 찍은 문장이다. 어쩐지 잘 쓰고 싶어서 멋을 부린 것 같아 보인다. 무심하게 살짝 부린 멋 말고 촌스러운 사람이 티 나게 꾸민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어색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느낌. 멋있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작정하고 멋을 부리려던 것은 맹세코 아니다. 그럼에도 나의 첫 번째 소설 속 문장들은 시종일관 저런 식이다. 당시 나는 마음과 단어만으로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번듯한 문법하나 없이 패기만 있었던 이십 대였다.


그 소설은 나를 모티브로 한 성장 소설이었다. 열일곱 살들이 대체로 그렇듯,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그것을 만들어낸 이들에 대한 원망이 여실히 드러나는 글이다. 이십 대 후반에 처음으로 썼던 소설 속에 나는 열일곱 살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 마침표로 잘라낸 문장들을 이어 붙이는 작업은 상당히 어려웠다. 한 문장을 다듬으면 다른 문장이 어색해지고, 문장을 고치다 보면 처음 의도와는 점점 멀어졌다. 읽기 쉬우면서도 내 느낌을 살리는 것은 꾸민 듯이 안 꾸민, 그러면서 예뻐야 하는 것처럼 아주 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다 쓴 다음 한 번 읽어보니 나름 괜찮았다.


“젓가락 세 개로 젓가락질을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문장을 쓰고 자아도취에 빠진 것을 고백한다.

“엄마가 남편복이 없으면 나도 아비복이 없네.”

누가 읽어도 톡 쏘일 것이 분명하다고 자만하며 미리 쾌감을 느꼈다는 것 또한 고백한다.


후반부에서는 황급히 끝이 나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 사실과는 별개로 첫 소설로 이 정도면 됐다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에 휩싸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첫 소설을 쓴 이후로 10년이 지났다. 쓰면 쓸수록 문장을 다듬는 일은 너무 어렵다. 작가라는 꿈을 갖고 살면서 여러 분야의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지다 보니, 예술가 전반에 대한 환상도 조금씩 깨졌다. 결국 글을 쓰는 일도 예술이지만, 동시에 철저히 현실적인 노동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직업인이 그렇듯, 작가들 역시 지독히 실리적일 수 있고 때로는 궁상스럽고 옹졸할 수 있다. 훌륭하신 어른들 중에서도 존경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추잡한 사람도 있듯이 말이다.

나는 작가가 되기보다도 글을 잘 쓰고 싶다. 하지만 내 글은 특히 손이 좀 많이 가는 편이다. 이것 역시 합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내 문장이 좀체 무심하게 멋지지 않은 이유는 문법에 대한 지식이 모자라서다. 따라서 나처럼 마음과 단어로 글은 쓰는 사람이 섣불리 글을 제출하면 난감해지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본업과 병행하며 작가의 꿈을 이루겠다고 무리를 하다 보면 성질만 난폭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 것. 그러니 쓰는 것에 의미를 두고 약속을 지키자, 작가가 되려면 그것이 중요한 것 아닐까? 그냥 제출하기로 한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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