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라면 괜찮을 줄 알았지
합평에서 머리가 멍해지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건 말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 올 때다.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게 뭐였지. 순간 내가 조금 멍청하게 느껴지고 만다. 내 글에서 있어서 스스로 관대한 나라도 뼈아픈 말이다. (뼈 중에서도 정강이) 이내 억울한 마음이 밀려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말하고 싶은 게 뭔지 정확히 안다면 글을 쓸까, 그래 뭐, 멋진 사람들은 아마도 정확히 알고 쓰겠지. 솔직하게 말하겠다. 그저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맞아요,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요.’
그냥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내가 생각하기에 만약 너무 잘못되었다고 느껴진 것이 있다면 누군가에게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해서 공감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 공감은 아마도 나에게 위로가 될 것이므로. 깊이 공감해서 상황이나 인물에 측은지심을 품게 되는 글. 조금 뜨끔해지도록 누군가에게 찔리는 마음을 받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만 찔리는 글들만 쓰고 있었다. 말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글.
선생님이 나에게 에세이를 권유한 건 소설이 나에게 한계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하마터면 완전히 삐질 뻔했다. 물론 내가 소설을 쓰기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내가 어렵게 쓴 만큼, 읽는 사람도 많이 피로했던 거 나도 알긴 안다. 좋은 말들 뒤에 줄줄이 따라붙는 비문과 문법 정리에 대한 지적들과 서사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은 나도 해결하기가 난감했다. 내가 도입부분만 썼던 소설에는 나를 가장한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내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을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을 통해 펼치고 싶었다.
그런 게 에세이는 아니지 않나. 에세이라면 응당 자신을 드러내고 뭔가 사람 좋은 인상이 심어지는 그런 일상을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반면 소설은 나에게 치사하게 군 사람들을 더 미워하기 좋게 글을 써서 마음껏 흉을 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세이에 그렇게 쓰면 여지없이 나의 옹졸한 마음을 들키게 될 것 아닌가?
아, 어쩐담. 하루를 살아내며 확 엎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걸음이 멈춰진 장면들을 잘 다듬고, 각색해서 보여주고 싶었는데. 말로 하는 것들은 때때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때, 나쁘지? 나쁘다고 말해줘.’ 겉으론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내 곁의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이 분명 아닌데, 진짜, 진심이라고 백 퍼센트 믿을 수 없는 이유는 나는 말로 하면 호소력이 짙어져서 어쩐지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만약, 반박이라도 하면 맹렬하게 달려드는 성질이 있다는 것은 내 곁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더불어 나에게 그런 점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한 날은 집에 가는 길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마치 정답처럼 들리는 말들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오류투성이며, 다 잡을 수 없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그래서 정의할 수 없는 그 감정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못 쓰는 나에게 관대하다.
합평이 있었던 날, 나의 동거인은 묻는다. “오늘은 어땠대?” “응, 잘 썼대. 잘 읽히고 재밌대.” 나는 좋은 말만 또렷히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 합평을 앞두고 글을 제출한 날은 대체로 기분이 좋다. 이유는 어떤 말이라도 들을 수 있는 글을 썼다는 사실 자체로 스스로 만족하기 때문에. 그 말인 즉슨 글을 제출하지 않은 날도 왕왕 있다는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글을 봐주시는 선생님이 제안했다. “지금 당장 긴 호흡이 어려우시면, 에세이를 써보시면 어떨까요?“ 너무 안 멋지잖아? .어쩐지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처럼 조금은 시시하게 느껴졌다. 내 삶이 시시하게 느껴질까봐 그랬나. 뭔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서, 나의 평범한 일상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환상이 느끼게 하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나 정말 깜찍하리만치 허영심이 많네) 그때 나는 에세이가 재미있으려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엇던 것 같다. 그래서 ‘소설책을 낸 다음에 에세이를 써야지’ 생각했다. 꿈도 야무졌지. 에세이 수업에서 합평을 해 보기 전에는 평범한 사람이 쓴 일상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라는 것은 내가 몰랐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것을 지금껏 합평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관심있게 눈 여겨 본다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