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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is Egypt!

"여기는 이집트이니까요?!"

by 나그네 한 Mar 28. 2025
이집트 피라미드(사진; 나그네 한)


هنا مصر(헤나 마스르)


Here is Egypt!
여기는 이집트이니까!



상황 1: 어느 시장 골목에서
“너무 비싸요. 왜 외국인이라고 가격을 다르게 부르세요?”
 

한국에서 온 내가 당황한 얼굴로 항의하자, 상인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여긴 이집트잖아요! 헤나 마스르!”


상황 2: 복잡한 도로 위에서
앞차가 갑자기 후진해 내 차 범퍼를 찌그러뜨렸다. 나는 놀라 문을 열고 나갔고, 상황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냥 서로 조심해서 갑시다. 여긴 이집트예요.”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를 몰고 사라졌다.


이 말, “헤나 마스르.”
직역하면 "여기는 이집트니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여요.”*라는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이집트에 사는 외국인이라면, 내국인과의 대화 속에서 이 말을 한 번쯤, 아니 백 번쯤은 듣는다. 처음엔 억울했다. 이해받기보다 ‘포기하라’는 식의 말처럼 들렸으니까. 이집트만의 시스템, 분위기, 문화, 심지어 질서 없는 질서 속에서 무언가 따지려 하면 이 말이 툭 던져진다.


“헤나 마스르!”


처음엔 이 말이 참 무책임하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이 한마디가 단순한 변명이나 회피가 아니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됐다. 이 말에는 이집트 사람들의 독특한 유연함과 체념, 그리고 ‘어쩔 수 없음’ 속에서 피어난 낙관이 담겨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외국에서 산다는 건 어디서든 쉽지 않다. ‘외국인’이 된다는 건, 곧 ‘소수자’가 된다는 뜻이고, 익숙하지 않은 질서와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타지에서 사는 외국인은 늘 선택해야 한다.
 

이 불편함을 견디며 계속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짐을 싸서 돌아갈 것인지. 내가 이집트에 살기로 결정했다는 건, 결국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 건, 불편함이 쌓일수록 그 무게를 덜어주는 이집트인들의 ‘따뜻함’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장을 보다가 돈이 부족해 물건을 내려놓으려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조용히 내 부족한 금액을 내주셨다. 아무 말도 없이, 손짓 하나로.
 

또 다른 날에는, 버스를 잘못 타서 길을 잃었을 때, 한 청년이 내 옆에 앉아 목적지까지 함께 타고 가며 길을 안내해 줬다. 마지막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집트에 온 걸 환영해요.”


그 순간 느꼈다. 이 사람들은 격식을 차리기보다 마음을 건네는 데 익숙하다는 걸. 정돈되지 않은 말투와 계획 없는 친절이 오히려 진심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집트의 ‘환대’를 글로 남기고 싶었다.

 

그들이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환대는 늘 화려하지 않다. 때로는 너무 느슨하고, 때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이집트식 환대’다.

 

그들은 묻지 않는다. 왜 왔는지, 얼마나 있을 건지, 무슬림인지 아닌지, 영어를 잘하는지…


그런 것들보다 훨씬 앞서, ‘지금 너 괜찮은지’를 먼저 묻는다.


물론 이집트에 살면서 힘든 일도 많았다. 불합리한 상황, 낯선 제도, 느린 행정, 갑자기 멈춰버린 인터넷…
 

이 모든 불편함을 겪을 때면 한국에서의 ‘정리정돈된 삶’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누군가가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여긴 이집트예요. 괜찮아요.”


이제는 그 말이 변명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그들 삶의 철학이자, 낙관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제멋대로 흘러가도,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힘.
 

바로 그게 ‘헤나 마스르 هنا مصر’의 진짜 의미 아닐까?


앞으로 나는 여러 이야기로 이집트와 그 사람들의 일상을 나눠보려 한다. 블로그에 떠도는 여행 팁이나 역사 지식이 아닌,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그들의 목소리와, 그 순간의 내 감정을 담을 것이다.


바라건대 이 글이, 이집트에 관심 있는 누군가에게는 ‘낯선 땅의 안내서’가 되고, 타지에서 외롭게 지내는 누군가에게는 ‘공감의 친구’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환대’라는 말이 다시 떠오르길 바란다.


사진: 나그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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