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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Oct 22. 2023

제10화. 길바닥에서 주운 500원을 행운으로 만들기

동트기 전 어부가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듯

새벽 무의식의 바다에서 ‘벽돌 나르는’ 이미지를 낚은 후

새벽에 눈이 똑 떠지는 날이면

발 닿는 대로 새벽 산책을 자주 나갔다.


그날은 4시 즘 눈이 떠졌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새벽이었다.


한 참을 걸으며

내가 원하는 벽돌은 무엇인지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원치 않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힘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5시가 넘어가는 걸 확인하고

방향을 바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번쩍이는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500원이다.

아싸~ 왠지 기분이 좋다.

손을 뻗어 줍고는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호주머니 속 손이 계속 500원을 만지작만지작 했다.


집에 오자마자

키우고 있던 뱅갈 고무나무 화분 앞으로 갔다.

흙은 판 다음 500원을 깊숙이 묻었다.

이제 이 뱅갈 고무나무는 그저 그런 식물이 아니라

행운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특별한 친구가 된거다.

햇볕 좋은 자리에 놔두고 정성껏 물도 주고

때마다 흙 갈이도 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녀석은 '나의 행운과 풍요'나 다름 없으니까.


며칠 뒤 나와 실력이 비슷한 동갑내기가

클럽에 신입으로 들어왔다.

보아하니, 배드민턴에 대한 열정도,

시간 여력도 나와 비슷했다.


배드민턴은 생활동호인을 위한

대회의 장이 잘 마련되어 있다.

복식은 2인 1조로 게임을 해나가는 거라

아무리 잘 하는 사람이라도

파트너 복이 없으면

게임을 원하는 대로 풀어나갈 수 없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가 없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배드민턴에도 파트너 선택이 중요하다.  

한 달을 지켜보고 신중하게 파트너 제안을 했다.

(놀랍게도, 3개월 뒤 우리는 시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거머쥐었다!)


인생 파트너에 대해서도 선택을 할 때가 무르익었다.

S의 도전을 받아들여 이혼결정을 잠시 미뤘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편에게

내 상처를 보여주는 도전을 감행했다.

익숙한 대로 분노를 품고

싸늘하게 거리두면서

냉소적으로 굴기도 하고,

처음으로 속내를 거칠게 내보이며

화내고 욕을 하기도 하고,  

흐느끼거나, 처절하게 울부짖어도 보았다.

미친년 널뛰듯 안 해보던 감정표출을 꽤나 한 셈이다.


이제는 잘못 꿴 첫 단추를 제대로 꿸 때가 되었다.

서른여덟이 되어서야, 결혼하고 10년이  지나서야

'내게 결혼이란'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결혼은

'나를 알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나란 사람과

그런 삶을 함께 꾸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 때 하는 것'이다. 


결혼을 유지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

남편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방해받지는 않는 공간, 조용한 시간에 마주보고 앉았다.


먼저

나의 상처에 대해,

보상받고 싶은 심리에 대해,

인생 실패자가 된 듯한 열패감에 대해,

십 년 뒤에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비장함에 대해

말했다. 다행이도 남편은 조용히 들었고

이해했고 공감하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서론은 부드럽게 잘 끝났다.


이제 본론을 꺼낼 차례가 되었다.

본론은 거칠게!

이제부터 바보등신처럼 살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로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불도저처럼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싶었다.

같이 산다는 전제하에,

10년째 헤매고 있는 주식투자금을 빼서 빚을 먼저 갚고

몇 년 간 힘들더라도 형편에 맞는 주거지로 이사를 해서

살뜰히 돈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그러기 위해서 집안에 있는 가구와 짐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싶다고도 했다.

각자의 수입을 각자가 알아서 쓰는 어설픈 돈 관리로는

10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중산층 코스프레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았기에

수입과 지출 관리를 일원화해서 체계적으로 관리하자고 했다. 물론 돈 관리자는 나다.

심장수술을 위해 매스를 빼든 외과의사처럼

비장하고 엄격한 태도로 돈 얘기를 했다.

남편은 결혼 하고 한 번도 경제권,

돈에 대한 통제권을 내려놓은 적이 없는 위인이었다.

‘돈 내놀래? 나랑 살래?

나랑 살고 싶으면 돈 내놔~’

남편에게는 협박처럼 들렸을 법한 제안이었다.

남편은 나의 제안 모두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재정적인 부분에서 내가 원하는 벽돌이 뭘까

심도 깊게 생각한 뒤

요목조목 설득력 있게 얘기했던 게

승리의 밑거름이 된 듯하다.

뿌듯했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거머쥔 느낌이 이런 걸까?


남편이라는 벽돌을 버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지만

여러 모로 쓸모가 있겠기에 재사용하는

선택을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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