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다

엄마와 친구의 죽음을 통해

by Peter Choi

좋았던 기억을 뒤로하고 다시 이제는 길옆 외딴집으로 이사를 가야 할 시간 되었다. 비록 허름한 집이었긴 했지만 이제 우리의 집이 생긴 것이다. 방이 둘이 이었고, 부엌과 소를 키울 수 있는 마구간 그리고 헛간이 하나 있는 집이었다.


뒷산에는 비가 온 후에 올라가면 갓버섯, 송이버섯 등 온갖 종류의 버섯들이 신비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것으로 국을 끓여 먹으면 고기 맛 같은 것이 났다.


시내에 사는 외삼촌과 이모부가 차를 몰고 우리 집에 놀러 오시기도 하셨다. 이모부는 당시 사냥할 수 있는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30미터 이상 멀리 표적을 올려놓고 맞추는 시범까지 보여주셨다.


이분들은 가끔 총을 가지고 꿩을 잡아오셔서 요리를 해서 먹은 기억이 있다. 그 후에 총기가 규제되면서 경찰서에 보관하게 되었다고 하시며 못내 아쉬워하셨다.


어느 날 뒷산에 올라가니 토끼가 잡혀있었다. 누군가 덫을 놓았는데 걸린 것이다. 먹을 것이 많지 않은 때였으므로 이런 식으로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금만 걸어가면 낙동강이었는데 겨울에 얼음이 꽝꽝 얼면 걸어서 강을 건너갈 수도 있었다.


강변을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가끔씩 꿩이나 오리 그리고 비둘기 같은 것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싸이나'라고 불렀던 약을 콩과 같은 곡식에 넣어 새들이 그것을 먹으면 죽어다. 죽은 새들을 주워다 내장은 버리고 잡아먹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손에 새들이 죽어 가지만 사람들도 죽음을 맞이한다. 그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 집에도 미쳤다. 학교에서 5학년 때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오셔서 슬픈 기색을 하시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시며 책가방 챙겨서 집으로 가라고 했다.


나는 그 말씀이 그렇게 와 닿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개념은 어렴풋이 있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믿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사실 몸이 좋지 않으셨다. 임신 중에 하혈을 심하게 하셨는데 어머니는 배를 아파하시며 고통스러워하셨다. 그리고는 내게 쑥을 좀 삶아서 가져오라고 하셨다. 나는 쑥을 삶은 물이 어떤 효험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렇게 해드렸다. 그 후로 나는 괜 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후에 어머니가 집을 비우셨다. 막내를 출산하기 위해 외갓집에서 몸조리를 하시러 가셨다. 막내는 태어났고 출산 후 아직도 정확히 원인 모를 질병으로 얼마 후 돌아가신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나의 눈으로 보지 못했기에 나는 어머니가 어디 가셨다가 곧 다시 오실 것만 같았다. 비록 장례식 날 큰누나는 슬픔에 못 이겨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지만, 마지막 어머니의 관이 무덤에 묻히는 것을 보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그냥 꿈꾸고 있는 것처럼, 그냥 잠시 집을 떠나신 것처럼 한동안 그렇게 여겼다.


그러나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때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었다.


5학년 때인지 6학년 1학기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데 친구 한 명이 전학을 왔다. 1학년 때부터 5학년까지 거의 대부분 한 반을 한 친구들이라 새로운 아이의 전학은 우리에게 특별한 일이었다.


그 친구는 그림을 잘 그렸다. 당시 로봇 태권브이 만화가 엄청 인기가 있었고 나도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 태권브이를 마치 만화를 보는 것처럼 똑같이, 아니 내 생각에는 만화보다 더 잘 그렸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에게 그림을 하나 얻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친구는 나에게도 그림을 그려주었다.


우리는 금세 친한 친구가 되었다. 이 친구가 또 잘하는 것이 있었다. 운동이다. 달리기도 잘했을 뿐 아니라 무술영화에 나오는 배우처럼 앞돌기 뒤돌기 핸드스프링을 자유자재로 했다.


나도 이 친구처럼 그림도 잘 그리고 운동도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을 해도 이 친구의 절반도 못 따라갔다. 핸드스프링도 앞돌기는 할 수 있었는데 뒤돌기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겁이 많은 나였기 때문에 뒤로 돈다는 것이 너무나 공포스러워서 감히 시도를 못 했던 것이다.


친구와 나는 학교를 마치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냇가에서 수영을 했다. 사실 나는 수영을 못한다. 지금도 개구리헤엄 밖에 못한다. 그런데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잠수다. 이 친구와 나는 누가 오래 잠수하는지 시합을 했다. 내가 이길 때도 있었고 이 친구가 이길 때도 있었다. 이렇게 계속하다 보니 물속에서 한 1분 30초 정도는 버틸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뭐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이때 부분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방학을 마치고 개학하는 날 교실에 와보니 이 친구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 친구는 방학 때 어떤 일인지 모르지만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토록 그림도 잘 그리고 운동도 잘했던 친구였는데, 나랑 그렇게 재미이게 놀았는데 왜 목숨을 끊었단 말인가?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죽음의 의미를 알았기에 내 마음은 더 아팠다. 꿈에도 몇 번씩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소중한 친구는 그렇게 다시는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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