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퀴나스 신부는 내가 쓴 소설 속의 인물이다. 처음부터 사제가 등장하는 소설을 쓸 생각은 아니었다.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아퀴나스라는 이름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천주교의 세례명이 가장 그럴듯했고, 기왕이면 성직자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아퀴나스는 신부님이 되었다. 아퀴나스 신부는 대학 동기인 재석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인물이기도 했다. 재석이 녀석은 자신을 모델로 한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듣자마자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미리 말하자면, 나는 그 소설을 쓰기 전에도 그렇지만 쓰고 난 후에도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좋아했다거나 그의 저서를 읽은 기억이 없고, 그건 아마 재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재석에게 아퀴나스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느냐 하면 딱히 그렇다고 말할 만한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재석은 성직자나 학자보다는 뽐내기 좋아하는 공작새에 더 가까운 녀석이었다. 지금도 이십 대의 재석을 생각하면 몸에 꼭 맞는 벨벳 재킷을 입고 뽐내듯 교정을 걷는 모습부터 떠오른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그에게 영감 받아 등장시킨 소설 속 인물에게 다른 이름을 주는 것이 더 마땅했을 것이다. 루이라든가 로랑, 유제니 같은, 어딘가 중성적이고도 로코코의 화려함이 연상되는 식의. 하지만 아퀴나스라는 이름은 마치 매의 발톱처럼 나의 생각을 움켜쥐고 놔주지 않았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인물의 이름은 아퀴나스여야만 했다. 그렇게 아퀴나스라는 이름을 부여하자마자 이름과 인물은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착 달라붙어서, 가끔 어딘가에 아퀴나스 신부가 실제로 살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소설 속 또 다른 인물인 수호를 만드는 데 영감을 준 것은 재석이 어릴 적부터 교류해 온 친구인 성호였다. 성호의 소설 속 이름은 수호로, 누가 봐도 성호를 모델로 한 인물이었다. 때문에 나는 이 소설이 성호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도록 재석을 철저하게 단속해야 했다.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재석, 그 녀석밖에 없다.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습작품으로 어디 발표되거나 출간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녀석만 단속하면 성호 녀석이 볼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성호가 소설을 볼 수 없도록 단속한 이유는 소설 속 수호라는 인물이 아퀴나스 신부를 사랑하는 것으로 암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 설정을 넣었는가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 역시 설명이 불가하다는 대답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 역시 내가 왜 그런 설정을 넣었는지 궁금하다. ‘그냥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현실의 재석과 성호가 정분이 난다는 것-일방이든 쌍방이든-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어쩌면 그런 이유로 두 인물을 엮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나 자신의 심리를 추측하건대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어떤 일들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재석 역시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대놓고 자신과 성호를 모델로 하는 인물들을 은밀한 관계로 엮어 놓은 것에 대해 언짢음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그는 전혀 언짢아하거나 불쾌해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수호에 비해 재석은 잃을 것이 없었다. 아퀴나스 신부에 대한 성호의 사랑은 일방적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석은 이 설정을 제법 즐기는 듯해 보였다. 재석이 내 소설의 내용을 발설하여 성호를 골려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성호를 놀리고 싶어 안달이 난 재석이라고 해도 보수적인 가풍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났으며 자존심이 몹시도 강한 성호에게 소설의 내용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이 안이한 판단은 당시에는 옳은 것처럼 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재석과는 꽤 친하게 지냈고 재석 때문에 성호와 셋이 함께 만나 노는 일이 잦았지만 나와 성호가 친했다고 말하는 건, 글쎄,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이 아니다. 셋이 만나도 나는 주로 재석과 대화했고 성호 역시 주로 재석과 대화했다. 성호와 내가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눈 기억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셋이 곧잘 ‘어울려 다녔다.’ 그건 그 나이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십 대 초중반이 지나고, 삼십 대가 되고, 그렇게 나이 들면서 나는 재석과 서서히 멀어져 갔다. 우리-정확히 말하자면 그들과 나-는 처음부터 공통점이라고는 없었다. 집안이라든지 재산이라든지 하는 사회적 배경 같은 것과 상관없이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한 시절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서서히 멀어진 것이다. 가난한 집 자식과 어울리는 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 최대의 일탈로 보였던 성호는 신문에 날 만한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정치 변호사가 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한량으로 살아가던 재석은 나이 들자 부모님이 재산으로 물려준 부동산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비교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곤궁한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영세한 출판사나 잡지사 등등에서 기자 생활을 짧게 이어가다가 일찌감치 정규직의 삶을 접었고, 생계를 위해 파트타임직을 전전하게 되었다. 이런 나의 삶은 아퀴나스 신부가 등장하는 소설 속에서 그대로 구현되었는데, 소설의 화자인 은이는 나의 분신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나와 닮아 있다. 그것은 이 소설을 세상에 발표할 용기를 내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나와 재석, 그리고 성호는 그렇게 각자 완전히 다른 방식의 삶을 살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재석을 만나도 공통적으로 나눌 만한 대화가 없었다. 우리는 몇 번인가 서로의 마음을 할퀴는 대화 끝에 서로 연락을 두절하는 방식으로 완전히 인연을 끊게 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모델이 되었던 이들과의 인연도 모두 끊겨버렸고 이제는 나 자신조차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옛날 옛적 소설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보게 된 것은 우연히 보게 된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재석과, 그의 친구인 성호, 그리고 내가 프랑스의 호텔 앞에서 함께 찍힌 사진. 맹세컨대 나는 녀석들과 함께 여행 비슷한 것조차 가본 일이 없다. 우리, 아니 그들, 즉 남자 둘과 여자 하나로 구성된 세 명의 인물이 프랑스에 갔던 건 예전에 쓴 그 소설 속에서나 일어났던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