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은 내 얘기를 듣더니 그 사진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휴대폰에 저장해 놓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건 은퇴한 방송인이 주간지에 연재 중인 회고록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었다. 테니스 애호가였던 방송인은 과거에 나름 당대를 풍미했던 동양인 테니스 선수의 은퇴 경기를 보러 프랑스에 갔던 일을 회고하며 자신이 묵었던 호텔 앞 - 테니스 경기장 앞도 아닌 호텔 앞 - 에서 찍은 그 사진을 글과 함께 실었다. 그 주간지의 웹페이지를 어떤 경로로 보게 되었는지 그 시작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웹서핑을 하던 중 무슨 이유에서인지 은퇴 경기에 대해 검색하자 국내 야구 선수의 은퇴 경기에 대한 기사가 목록에 주르륵 올라와 있었고, 별생각 없이 검색 페이지를 내리다가 문제의 기사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오래전에 은퇴한 테니스 선수의 이름이었다. 나는 예전에 쓴 소설에 그의 은퇴 경기를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시킨 바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해당 기사를 읽게 되었고, 글과 함께 실린 문제의 사진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호텔 앞에 서 있는 방송인의 뒤로 어렴풋이 세 명의 동양인이 나란히 서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 사진이 흐릿하다고는 해도 그건 분명 재석과 성호, 그리고 나의 모습이었다.
카페 사장은 문제의 사진을 픽셀이 다 깨질 정도로 계속 확대해서 들여다봤다. 사진이 너무 흐리다고 중얼거리더니 우연히 같은 구성원의 비슷한 외양의 사람들이 찍혔을 수도 있다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나 또한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실은 이것이 진짜 ‘우리’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 너무 오래 들여다보았더니 점점 더 그 형상이 뭉개지면서 그냥 세 개의 덩어리로 보이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설과는 달리 ‘실제의 우리’는 프랑스에 간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진이 찍혔을 리도 없고, 때문에 비슷한 외양의 다른 동양인들일지도 모른다는 사장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이것이 ‘우리’ 일 것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여전히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실제로 프랑스에 다녀오기라도 했다는 듯이. 심지어 어쩌면 그게 소설이 아니라 실제 일어났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카페 사장은 나의 이 혼란을 눈치챈 듯 이 사진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고 냉정하게 조언했다. 그럼에도 재석에게 연락을 해보는 것에는 찬성한다고 말했다. 당사자 중 하나인 재석이 이 사진 속 인물들이 전혀 우리와 닮지 않았다고 확인한다면 나 또한 사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그 의견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카페 사장이 퇴근한 후, 손님이 한 테이블밖에 없는 한산한 카페를 둘러보다 이미 닦은 것이 분명한 테이블을 다시 한번 닦고 다음으로는 유리창을 닦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을 간신히 흘려보내고, 테이블에 앉아있던 손님들마저 퇴장한 후, 나는 다시 심호흡을 하고 휴대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벨이 울리고, 누군가 대답을 하는가 했는데 전화를 받을 수 없거나 부재중임을 알리는 자동응답 시스템이었다. 나는 음성이라도 남겨볼까 하다가 그냥 끊었다. 아마도 문자를 보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녀석이 나의 전화를 끝까지 받지 않을 것인지가 궁금했다. 앞으로 세 번만 더 해 보고 그래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저장해 놓은 사진을 메시지로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재석에게 이 사진을 보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 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이것을 보면 재석은 무슨 생각을 할까? 혹여라도 그 역시 이 사진이 ‘우리’처럼 보인다고 인정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 이거 제법 우리처럼 보이는구나, 그럴 리가 없지만.’ 이 정도가 녀석이 보일 수 있는 그나마 긍정적인 반응일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무턱대고 사진을 전송하는 부끄러운 일을 저지를 뻔했다는 생각에 약간의 식은땀이 나기도 했다.
맥이 빠진 나는 그의 번호를 삭제하려다 고민 끝에 일단 그냥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