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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Aug 14. 2024

4. 값비싼 들러리


“내가 거길 왜 가?”

“어차피 수호가 돈을 다 대는 거라 그냥 몸만 가면 되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거야?”

“그러니까 걔가 왜 나를 위해 돈을 쓰냐고?”

“정확히 말하자면 너를 위해 돈을 쓰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이런 거지. 그 녀석은 테니스 경기를 직관하러 프랑스에 가고 싶어. 하지만 혼자 가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

“그래서 너를 데리고 가고 싶어 해. 그런데 니 녀석이 나도 데려가야 가겠다고 했다, 뭐 이런 거?”

“음. 본질적인 것이 빠졌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무리는 없겠지.”

“너는 왜 나를 꼭 데리고 가야 되는데?”

“왜냐, 나는 너를 동정하니까. 이 프롤레타리아 녀석아. 이럴 때 유럽 땅 한 번 밟아보는 거지, 너한테 이런 기회가 또 올 것 같아?”

“와 시발.”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은이는 욕을 갈겼다.

“갈 거지?” 미래에 아퀴나스 신부가 될 녀석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물었다.

“미쳤어?”

“수호 녀석은 이미 표를 세 장씩 다 끊어놨어. 비행기, 호텔 바우처, 테니스 경기 입장권 세 장씩. 물론 엄청난 금액이지만 녀석에게 그 정도 돈은 충분히 감당할 만한 정도의 가격이지. 작년에 조모가 돌아가시면서 녀석 앞으로 꽤 짭짤한 금액이 떨어졌거든. 네 덕에 이 모든 것을 취소하면 즐거움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오직 취소수수료의 쓰디쓴 기억만 남는 거야.”

“그렇지. 그리고 그 책임은 다 니 녀석에게 있는 거지. 이 불쌍한 프롤레타리아에게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깡그리 무시한 채 부르주아들의 놀음에 광대처럼 데리고 다니려고 했던 죗값을 네게 물어야겠지.”

“광대라니, 그 말 좋다. 너나 나나 수호 녀석이나 다 광대에 불과해. 그러니 그냥 같이 놀아. 굳이 진실을 말한다면  이런 거야. 너의 시시때때로 나오는 그 독설 섞인 유머에 반한 수호 녀석이 기꺼이 그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지.”

“… 재수 없는 부르주아 새끼.”

“맞아. 난 재수 없지만 너도 알다시피 수호에 비하면 부르주아보다 프롤레타리아에 가까워. 부르주아 하나에 빌붙은 프롤레타리아 둘. 같이 빌붙자. 나 혼자 빌붙기 민망해.”

“난 수호 부르주아님의 친구조차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친구의 친구는 친구에 가깝지. 사실 대부분의 친구 관계에 있어 그 관계가 정말 친구관계이냐 아니냐는 고도의 지능을 가진 이들조차 구분하기 어려워.”

“난 정말 궁금하다. 수호 녀석이 녀석에게는 분명 가치가 있을 리 없는 내게 이런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너를 그 경기에 데려가려는 이유가 뭘까?”

“… 그런 게 있겠냐? 그냥 테니스 경기를 같이 보러 갈 백수들이 필요한 것뿐이야. 걔가 가진 건 많지만 친구는 없잖아. 그런데 너나 나나 돈은 없지만 시간은 남아도니까.”

“난 시간이 남아돌지 않아. 일을 하고 있다고.”

“항상 단기알바만 하잖아. 그리고 이번 달이면 그것도 끝나고.”

“새로 구할 거야.”

“나도 궁금하다. 넌 왜 늘 단기알바만 구하냐? 대학까지 힘들게 졸업했으면서 취직은 안 하고 알바만 전전하는 이유가 뭔데?”

“그건 나도 모르겠어.” 은이는 진짜로 충격을 받아서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몰라? 네가 모르면 그걸 누가 알아?”

“글쎄, 나도 몰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냥 그래야 될 것 같아서 그랬어.”

“제정신인가?” 미래의 아퀴나스 신부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겠다. 난 왜 늘 단기알바만 구하는가?”

“아, 알겠다.”

“뭔데?”

“수호랑 나와 같이 프랑스에 테니스 경기를 보러 가야 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은이는 기가 막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딱히 다른 이유가 생각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게 정말 왜 그럴까? 왜 나는 정규직 직장을 구할 생각도 해보지 않은 걸까?”

은이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부터라도 정규직 직장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야, 아직도 생각하냐?” 미래의 아퀴나스 신부가 싱글거리며 은이의 어깨를 쳤다.

“지금부터라도 정규직 직장을 찾아볼까?” 은이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일단 프랑스부터 다녀와서. 그다음에 찾아보면 되잖아?”

“만일 내가 끝까지 가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응? 그런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는데? 당연히 가겠지… 당연히 갈 거라고 생각했어.”

“어째서?”

“그건… ” 그는 이마를 몇 번 긁적이고 콧물을 훔치는 척하면서 이유를 생각해내려 했지만 어떤 생각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만큼 네가 바보 같지 않다는 것을 잘 아니까?” 미래의 아퀴나스 신부가 될 녀석이 다시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은이가 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래, 가자. 가긴 갈 거야. 그런데…”

“그런데?”

“… 아니야. 잠깐 기분이 이상했어. 내가 끝까지 가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의 인생이 바뀌기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달까.”

“오, 자의식 과잉”

“그러게. 난 이제 알바 같다.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메일로 보내줘.”

“오케이.” 아퀴나스 신부가 될 녀석은 엄지와 검지를 맞붙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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