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어떻게 돼요?” 카페 사장이 보채듯 물었다.
나는 카페 사장의 요청으로 예전에 썼던 그 소설의 내용을 들려주고 있는 중이다. 억지로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흐름이 계속 끊겼다. 중간에 그만둘까 싶기도 했지만 사장은 이야기 도중 계속 멈칫거리는 나를 채근했다.
“음… 실은 기억이 확실치 않아요.”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다 마신 커피잔을 들어 커피의 잔향을 맡았다. 잔에 눌어붙은 커피의 잔향을 맡으면 기억력이 좋아지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이후에 다 같이 한국으로 돌아온 거죠? 파리에서 둘이 동거를 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게 아니고?” 사장이 확인하듯 묻고,
“그건 확실히 아니에요.” 내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사장은 대체 뭘 기대했던 것인지,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이윽고 앞치마 끈을 풀기 시작했다. 그는 이야기를 듣겠다고 삼십 분째 퇴근도 미루고 있던 중이었다. 처음 면접 볼 때 카페 직원들끼리 긴 사담을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던 그때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사장은 다음 얘기는 내일 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카페를 떠났다.
사십여 분 전, 카페 사장은 막 출근한 내게 커피를 내려주며 재석에게 연락이 닿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그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장은 차라리 문자를 보내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나 역시 그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이상하게 내키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어쩌면 그 사진을 발견한 일은 그냥 없던 일로 생각하고 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며, 내 소극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사진은 너무 희미해서 사진 속 인물들이 ‘우리’가 맞다 아니다를 확신할 수 없고, 그런 상태로 그에게 연락을 보내게 되면 다시 연락하고 싶어 요상스러운 핑계를 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긴 재석이 이 사진을 보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네가 옛날옛적에 그런 소설을 썼던 것이 기억나기는 하는데 거기에 셋이 파리에 가는 설정이 있었던가? 이거 뭐 사진이 흐릿해서 잘 보이지도 않고 … 돋보기라도 쓰고 보면 달리 보이려나… 요즘은 가까운 것이 잘 안 보이는 것이 노안이 온 것 같아.. 넌 괜찮냐… 뭐 이런 실없는 말들을 하다가 결국은 잘 살기를 바란다며 서로에게 어색한 인사를 남기고 전화를 끊는 것이 그나마 예상할 수 있는 최선의 대화가 될 것이다.
좋다, 그런 대화도 나쁘지 않다. 사장의 걱정과는 달리 녀석이 내 연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별 상관없었다. 내가 녀석에게 굳이 전화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그 사진이 ‘우리’가 맞다한들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보다 어린 시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로운 힘이 나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을 기대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설사 진짜로 신비로운 일이 일어난다 한들 그것으로 인해 나의 삶이 극적으로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게 된다. 기대했다가 실망하게 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인생에 있어 극적인 변화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오후 네 시에 중절모를 쓰고 카페에 방문하는 노신사의 테이블에 커피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후 주방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등을 살짝 기대고 섰다. 작은 카페의 내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였다. 나는 이 카페만큼이나 작고 소박한 나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카페에서 받는 월급, 그리고 내가 원래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릴 만하면 의뢰가 들어오는 원고, 알게 된 지 하루도 안 되어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된 듯한 카페 사장 등등. 나는 이제 비로소 삶의 균형추를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춰 놓았다. 어떤 식으로든 일상을 위협할 만한 변수를 굳이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안 되지, 안 되고 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날 밤, 성호의 부고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늦은 저녁, 싸구려 와인을 홀짝이며 인터넷에 올라오는 최신 기사들의 제목을 훑어보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여당 유력정치인의 고문변호사로 활약하던 그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변사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내용의 짧은 단신 기사였다. 최근 정치권의 이런저런 사건에 그가 변호하던 정치인이 휘말렸기 때문인지 그의 죽음은 속보로 다루어졌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기사의 댓글에서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떤 글도 달리지 않았다.
억지로 누워 잠을 청해봤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이불속에서 휴대폰을 켜고 성호의 이름을 검색했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부고 기사가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법 많은 댓글들이 달려있었고, 그가 자살 ‘당했을’ 것이라는 추측성 댓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도 해봤지만 댓글에 누군가 밝혀놓은 그의 간단한 신상을 보니 재석의 친구인 ‘그 성호’가 틀림없었다.
나는 예전에 쓴 그 문제의 소설에서 녀석-정확히는 녀석을 모델로 만들었던 수호라는 인물-을 이미 한 번 죽인 적 있다. 소설 속 수호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그래서 뭐 어떻단 말인가?’ 두근거리는 심장을 나는 애쓰지도 않고 싸늘하게 식혔다. 잠깐이라도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건 그가 한때 알고 지내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를 참고로 만들어낸 소설 속 인물이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방법으로 죽었다 한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건 단지 소설일 뿐인데. 게다가 성호 녀석은 그런 소설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죽었다. 처음 부고 소식을 접했을 때의 놀라움과 약간의 두려움은 그렇게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재석의 반응만큼은 궁금했다. 몇 년 전 그와 완전히 연락이 끊기기 전에 들었던 바에 의하면 둘은 여전히 친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으니 재석도 성호의 소식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녀석도 내 소설을 떠올렸을까?
… 그럴 리가! 나는 민망함에 쓴웃음을 지었다. 현실과 소설이 일치하는 지점이 하필이면 죽음이라니. 어쨌거나 한때 알고 지냈던 한 인간의 죽음을 기리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바로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재석이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