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가 회사를 그만두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비행기표를 산 것이다.
“나 미쳤네.”’ 은이는 결제완료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목적지는 파리, 돌아오는 날은 미정이었다. 은이는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미쳤어. 이건 미친 거야. 여길 가서 뭐 한다는 거야? 돈은 있어?”
수중에 모아둔 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꼬박꼬박 들어올 돈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작은 원룸의 몇 달 치 관리비를 내고 기본적인 생활비를 쓰기에도 빠듯했다. 은이는 미쳤다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 출발해야 되었기 때문에 고민할 여유조차 없었다. 하필 은이가 충동적으로 파리행 비행기표를 검색한 그 시점에 누군가 급히 취소한 좌석이 파격적인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을 보았고, 곧이어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예약부터 결제까지 마쳤기 때문이다. 사실은 파리에 또 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어. 누군가 파리에 또 가는 이유를 묻는다면 은이는 이렇게 대답해 줄 생각이었다.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쳐서 하필 그곳에 또 가게 되었을 뿐이라고. 테니스경기를 보러 갈 때 샀던 크지 않은 트렁크를 열고 은이는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비행기로 여행을 떠난다는 은이의 말을 들은 은이의 엄마는 예상대로 기가 막혀하면서도 금세, 담담하게 반응했다. 부모의 뜻에 매번 반하는 방향으로 생의 갈피를 잡는 은이는 게임에 있어 깍두기 같은 자식이었다. 가족의 일원이지만 딱히 있으나 없으나 티가 나지 않는 존재. 은이의 부모에게는 그들의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할 가치가 있는 다른 자식이 있었고, 일찌감치부터 은이에 대한 투자는 최소한의 ‘부모 역할’이라는 선을 절대 넘지 않았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합리적’ 계산에 따라 자신들의 자식들에게 차별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은이의 엄마는 은이에게 아주 희미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은이도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적으로 계산을 하고는 했다. 늘 빠듯한 예산 속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마도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습성일 수도 있었다.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 아니라 계산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은이가 봐도 편향된 투자를 한 부모의 선택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안정적인 삶을 꾸리고 자손을 남길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자식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는 것은 지구상 생명체들의 공통적인 선택이다. 은이는 혈육과 차별하는 부모에게 상처를 받은 적도 있었지만 커가면서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남기기 위한 생명체들의 입장, 즉 자신의 부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은이가 더 이상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민하게 느낀 은이의 엄마는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던 죄책감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돌출 행동을 할 때마다 은이의 엄마는 자신이 은이의 삶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도 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걱정 섞인 잔소리 끝에 엄마는 조심스럽게 무슨 죄라도 지었느냐고 물었다.
“야반도주가 아닌 이상 누가 이렇게 급하게 떠나니? 너 혹시…”
은이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하면서도 엄마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은이는 늘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은이 정도의 인간이 살 법한 인생이 항상 은이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때마다 뒷걸음질을 치거나 몸을 돌려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남들이 보기에는 최악의 선택이었겠지만 은이에게 있어서는 필사의 탈주였다. 갑자기 테니스 경기를 보러 충동적으로 유럽에 간다거나 사제가 되겠다고 로마로 떠날 수 있는 녀석들의 앞길에는 항상 다양한 선택지가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과 어울린 것은 그 다양한 선택지에 대한 일종의 ‘가체험’이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친구 녀석이 사제가 되겠다고 떠나버리자 은이는 자신이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이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있음 직한 곳’을 피해 어떻게든 도망가는 것이었고, 어찌 됐든 파리행 비행기표는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으로 보였다. 그게 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