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Q는 커다란 유리병 안의 달걀을 조심스럽게 숟가락으로 꺼냅니다. 작은 국자로 안에 있던 간장 양념을 한 사람씩 각각 두 번 도시락에 끼얹어줍니다.
차가운 밥알에 양념이 스며듭니다. 짤 것 같은 간장 양념 위로 달걀을 반으로 자릅니다. 안에 있던 노른자는 차가운 용암처럼 느리게 흘러내립니다. 우리는 모두 짜지 않은 간장 양념에 대하여, 그리고 균일한 노른자의 점도에 대하여 찬양하였습니다.
오래전 인천과 부천 사이의 경계 부근에서 양계장을 하던 아버지를 두고 매일매일 도시락 반찬으로 달걀 장조림을 가지고 왔습니다. 같이 점심을 먹는 친구들 숫자대로 커다란 병에 가지고 왔습니다. 덕분에 우린 매일 달걀 한 알씩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신도시가 생길 거라는 발표 후 친구는 갑자기 성공해버린 아버지를 졸라 작은 커피숍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개업식 날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길가엔 화환들이 줄지어 서 있었죠.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엔 탁자들을 모두 벽으로 몰아 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순간 순간마다 여자얘기를 했습니다. 그날만은 남자끼리 하루를 보냈습니다.
음악을 멈추지 않고 친구들은 주방에 들어가 일 년 동안 연마한 안주들을 하나씩 조리해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탁자마다 기대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선가게를 하던 친구가 바지락 조개와 다리가 없는 게딱지로 끓인 라면을 먹고 나면 크리스마스가 끝이났습니다. 그렇게 몇 년쯤 지났습니다.
때론 여자친구를 위한 이벤트 장소였고, 집에 들어가기 싫은 사람들의 잠자리였으며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고즈넉하게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침에 나갈 땐 아무도 머물지 않은 것 같은 마법을 부리며 말이죠. 성공한 아버지의 사업이 저물어갈 무렵 친구의 커피숍이 제일 먼저 처분될 거라고 했습니다.
20대는 여기서 재미있게 잘 놀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Fp2ZF36ZP0U
Q는 그렇게만 말했지만, 친구들은 집에서 쫓겨난 것처럼 서럽기만 했습니다. Q는 커피숍에서 자신이 뽑은 가장 예쁘고 착한 아르바이트생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마지막 크리스마스이브엔 장사를 하였고 크리스마스 당일엔 그리 많지 않은 인원이 모여 조촐하게 술을 마셨습니다.
그날도 눈이 몇십 년 만에 최대로 내린 날이었어요.
파티는 모두 끝났습니다.
다시 의자와 탁자를 제자리로 옮기고 아침에 걸맞은 음악과 창문을 열어 빠른 환기를 시키고 고양이 물과 사료를 넉넉히 주고 산책을 다녀와야겠어요.
그날 새벽 그곳을 빠져나오며 이 장면을 오늘 새벽에 다시 보았습니다.
눈이 전부 녹은 거리의 가로수 가지 사이에 아직도 크리스마스를 기억하고 있는 흔적을 말이죠.
마치 커다란 새총에서 이미 발사되어버린 시간의 흔적 같아 보이지 않나요
사진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