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잘 지냈습니다. 도넛 모양의 커다란 튜브에 몸을 넣습니다. 아래쪽으로 다리가 나와 있습니다. 위쪽으론 팔과 머리가 나와 있고요.
크리스마스 날은 잔잔하기만 하였습니다. 지난밤 새벽 술에 취한 젊은 사람들은 걷는 것도 힘들어 보였지만 다시 술을 사고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루돌프 사슴코처럼 새빨간 손등을 지니고 있는 남자아이는 아이스크림 껍질을 먹고 있습니다.
누구도 종이를 벗겨주지 않습니다. 남자아이는 아이스크림이 질기다고 투정을 부리고 부축하던 여자아이가 술에 취하면 그럴 수 있다고 타이릅니다. 남자아이는 순한 양처럼 아이스크림 껍질을 먹으며 염소가 되어가는 밤이었습니다.
잔잔한 물 위를 한가롭게 떠 있으며 아침을 맞이합니다. 발을 가만히 위아래로 흔들어봅니다. 시간이 흐르는 건 꽤 노곤한 일이기도 합니다. 튜브 위에 차려진 점심은 어제 먹고 남은 양념치킨이었습니다. 남아있던 살점들은 어제의 내가 오늘을 위한 배려 같아 보였습니다.
발갛게 달아오른 이마와 뺨에 선크림을 발라가며 손이 닿지 않는 어깨와 등 쪽이 따끔거리는 증상 외엔 달리 불편함도 느낄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닿지 않는 곳을 상상하며 그녀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것은 진심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화려한 튜브에 관한 이야기를 읽거나 튜브에서 자꾸만 바람이 빠진다는 얘기를 들으며 손바닥으로 물을 떠올려 얼굴에 한껏 묻혀 열기를 식힙니다. 그거 알아? 물속에 잠겨 있으면 온몸의 솜털들이 소름으로 곤두선 모습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어 털을 세운 짐승처럼 말야.
노을이 지자 기온이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물에 흠뻑 젖은 비치 타월을 비틀어 짜며 돌아가야 할 내일로 발을 차고 손으로 물길을 거슬러 오르려 합니다. 다급해진 유속으로 떠내려갈 뿐이었습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밤이었기도 했거니와 강기슭에 튜브를 멈추고 젖은 몸을 하고 걷기 시작합니다. 목요일로 향하는 길은 춥고 험난하였습니다.
강 하구까지, 떠내려갔다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지친 아침입니다. 머리카락은 아직도 젖어 있구요 온몸은 분명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면식범에 의해 실컷 두들겨 맞은 듯이 아픕니다.
그렇게 몸뚱이가 아픈데 멍 자국도 없고 부은 곳도 없는 걸 보니 교묘하고 사악한 기술을 지닌 자였음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몸을 움직이면 통증이 점점 사라지며 제법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날씨는 어떻든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목요일 아침이 이렇게 맑고 화창하고 맑은 하늘은 불 수 있다는 예보는 우울한 사람들에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어딘가로 납치되는 일을 꿈꾸게 되는 아침입니다.
편의점 앞 모서리 보도블록은 딱 한 곳이 자꾸만 사람들 발에 걸리다 결국 뽑혀 나갔습니다. 시멘트를 바른 표면이 부드러운 물처럼 보입니다. 시멘트에 불빛이 반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