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할아버지가 분명히 오셨어요.
강력한 감기를 주셨어요. 받아 든 선물을 펼치고 시름시름 앓고 있어요.
기침할 때마다 루돌프가 뾰족한 뿔로 기관지를 긁어대는 것 같아요. 뒷발로 가슴을 차고 감고 있는 눈꺼풀 밖으로 빛나는 코를 대고 눈앞을 서성입니다.
냉동실 제일 안쪽 검은 비닐봉지 싸여있는 작은 유리병 하나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꺼내먹는 계절이 있습니다.
마음은…. 음 딸기 철이 조금 지나면 딸기 가격표를 물끄러미 쳐다볼 정도가 되죠. 짓물러도 되는 딸기를 사서 찬물에 씻어둡니다. 커다란 냄비에 담아 불을 켜고 끓여 줍니다. 센 불에서 중불로 끓여 주다 보면 딸기에서 해감하는 바다처럼 물이 나옵니다.
국자로 꾹꾹 눌러 과육이 덩어리 지지 않도록 으깨어줍니다. 적당한 덩어리는 남겨두어야 합니다. 입안으로 적당한 과육의 식감을 좋아합니다. 거품이 오릅니다.
1kg의 딸기로 시작한 냄비에 동량보다 조금 적은 양의 설탕을 넣어줍니다. 설탕을 넣어두면 거품이 줄어드는데 그때 떠 있는 거품은 걷어내 줍니다. 딸기잼을 살짝 찬물에 떨어뜨려 퍼지지 않으면 딸기잼의 역사는 끝이 납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어쩌면 모든 심플이라고 말하는 것들 속엔 말할 수 없는 수치들이 단층처럼 쌓여있는지도 모릅니다.
깨끗하게 닦아놓은 유리병 안에 흐르는 봄의 용암을 9부 정도 따릅니다. 뚜껑을 가만히 닫아서 뒤집어 두면 진공상태가 됩니다. 진공상태는 냉동실에 있던 유리병을 열 때 뽁~소리가 납니다.
그날의 나를 칭찬이라도 하듯이 말이죠.
딸기잼이 녹아내립니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부끄러워하며 더 빠르게 녹아내립니다.
과육은 딸기로 변해가고 잃어버린 꼭지를 찾아 머리 위에 꽂고 태어났던 딸기밭으로 갑니다.
모두 뚜껑을 열 때 기분이 좋은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다섯 병 중 네 병은 이미 누군가의 냉장고를 들락거렸거나 물기 없는 빈 병과 작은 선물로 돌아와 있습니다.
딸기잼을 건네기 전 늘 이렇게 얘기합니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고양이 털이 발견돼도 괜찮다면….
모란이 사진을 보낼 테니….
삼십 분 남짓 산책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넉넉한 시간 동안 샤워를 마치고 머리가 지푸라기 인형처럼 부풀어 오르도록 말렸습니다. 머리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의자에 앉아 뜨거운 물 한잔을 마십니다.
한 숟가락쯤 딸기잼을 작은 티스푼으로 떠서 그대로 입 안에 머금고 있습니다.
지난봄과 지나간 여름과 어느 가을 기억하게 될 날이 고스란히 몸 안에 깃들어있습니다.
감기 후유증으로 머릿속이 딸기밭 같습니다.
꺼내놓은 식빵이 제법 부드러워졌습니다. 차가운 딸기잼을 발라 두 장 먹습니다.
밖으로 나가자 눈물이 그렁그렁해집니다.
지독한 선물이지만
금요일이라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