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봄, 이름을 잘 모르지만.

감기엔 체리 맛 아이스크림

by 적적

개구리도 알고 있어 아직 밖으로 나가긴 너무 이르다는 걸. 자세히 보면 외출할 땐 파란 무늬 거위 털 패딩을 입고 있어서 등이 유난히 커 보이는 거라구 개구리도 아는 걸 왜 모르고….


엄마는 그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행동을 짤짤거린다고 표현하셨어 그러지 말라고 경고도 하였습니다. 토요일 퇴근 후 한참을 짤짤 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머릿속엔 동전이 없습니다. 제법 그 소리가 나도록 돌아다니며 바람을 맞았습니다.


나 혼자 봄이었나 봅니다.

샘이 깊은 기침은 마르지 않고 맑은 기침은 한없이 흘렀습니다.


이제 막 달에 착륙한 우주비행사는 외부와 차단된 후드티 모자를 헬멧처럼 단단히 착용하고 일요일 아침에 문을 여는 병원으로 걷기 시작합니다.

조금 걸으니 입고 나간 긴 겨울 코트를 조금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지만, 병원은 아이들과 엄마들 그리고 엄마들을 따라온 남편들로 피난 열차를 기다리는 승강장처럼 북적였습니다.


병원 문이 열릴 때마다 문에 달아놓은 풍경이 종소리를 냈습니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종소리에 맞춰 출입구 쪽을 바라다보았으며 이내 서로를 반겼습니다. 누런 콧물을 흘리는 아이들은 서로에게 손을 흔듭니다. 엄마의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아빠는 아이가 콧물을 손등으로 닦는 것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여섯 살 남짓한 꼬마 계집아이가 손을 흔듭니다. 같이 손을 흔들어주자 얼굴이 환해지며 손등에 붙인 스티커를 보여주며 말을 걸었습니다.


기관지가 많이 부었다는 말과 연거푸 심호흡해 보라는 말을 듣고 사흘 치 약을 조제받고 약국에 들러 다시 기다립니다. 아이들의 이름이 불려집니다. 엄마가 또 엄마를 따라온 아빠가 그리고 그들을 따라온 아이가 함께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빠등, 엄마등, 애기등. 병원보다 훨씬 더 환한 실내에서 눈을 찡그리고 앉아 이름을 기다립니다.


내 이름을 기다리는 일은 늘 지루하고 낯섭니다.


이른 아침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건널목에 서서 바람에 짤랑거리는 약 봉투를 들고

빨간불이 꺼지기를 기다립니다.


입안으로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거대하고 뜨거운 바람의 발원지였던 혀끝으로 입술을 적십니다.

31가지 맛을 파는 가게 앞을 지나갑니다. 이곳에 그런 가게가 있었는지 기억해 봅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근래 들어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차갑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한없이 바라다봅니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차가운 불빛 아래를 바라다봅니다.


알록달록한 약을 바라다보며 체리 맛 아이스크림을 떠올려봅니다.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고 약효를 보기 위해 잠이 듭니다.


잠이 깨고 나면 낮이었고

잠이 깨고 나면 저녁이었고.


잠이 깨고 나자 아침이 되었습니다.


작은 균열들로 깨지고 있었습니다.




그 틈으로 꽃씨들이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사진출처> pinterest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8화넌 어디에서 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