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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나에게

밥상이 질문한다.

by 적적

오래전 여수에 놀러 간 적이 있었어요.여수 밤바다란 곡이 아직 나오기 전이니 2012년도 전이고 노래를 했던 장범준은 졸업 후 빈둥거리며 그 노래를 만들 거라고 상상도 못 했을 때.


너무 늦은 밤에 도착해서 밤바다를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와 사 온 음식들을 펼쳐두고 먹었어요. 다음날 기차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택시를 타고 여수공항으로 가게 되었어요.


아마도 같이 갔던 일행 중 한 명이 여수 여자와 사귀었다 헤어졌는데 여수에 가면 꼭 가보라는 말을 했었다며 안내를 하였죠. 사실 그도 그곳이 어딘지 확실치는 않아 보였어요.


헤어진 여자의 말을 듣고 찾아간 곳이라니.


공항 앞에 내려 커다란 길을 두 개를 건너 좁다란 골목 끝으로 접어들었죠. 집들의 담장은 서로 쓰러지지 않게 서로를 기대고 서 있었어요.


슬라브 담벼락이 무너질 것 같은 작은 집으로 들어갔어요. 가정집이었는데 간판이 없어서 그냥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집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마당이 나오고 마당엔 작은 텃밭이 있었는데 심어 놓은 푸성귀들이 잡초들이랑 같이 자라고 있었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죠.


헤어진 여자의 말을 듣고 찾아온 곳이라니.


머리 위로 싸구려 천막 천이 햇살을 가려 실내는 형광등 불빛으로 어두웠어요.


커다란 깡통에 동그랗게 양은 식탁을 얹고 가운데 작은 구멍 하나가 뚫려있었어요. 등받이도 없는 불편한 의자에 앉자 작은 양은 주전자에 유리 물컵. 양은 주전자로 물을 따르자 머리가 아플 정도로 차가운 둥굴레차가 한잔 가득 담겼고 옥수수 알갱이도 몇 알 딸려 나왔죠.


메뉴판도 없고 사람 수에 따라 음식값부터 계산하자. 커다란 양은 쟁반으로 양은 식탁이 채워졌죠. 전라도 음식들은 자잘한 나물부터 젓갈, 전 밥은 나오지도 않고 그 반찬들을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반찬 위에 반찬을 다시 세팅하셨어요.


심심하게 짠맛은 거의 없지만 담백한 음식들.


두 번째 반찬들을 맛보는 동안 드디어 공깃밥이 나오고 마지막 세 번째 반찬들이 반찬 위로 착석을 하고 가운데 연탄이 식탁 가운데 안착했어요.


작은 뚝배기에 된장찌개가 놓이고 우린 마치 기억력 게임을 하듯이 반찬 아래 반찬을 기억해 내며 그 많은 반찬과 된장찌개를 비워냈어요.


나올 때 주방 안을 잠시 들여다봤는데 찬모들은 맡은 반찬을 만드느라 허리를 펴지 못하고 있고 백발의 할머니가 나무 비녀를 꽂고 있었죠. 파리채를 흔들며


맛있게 먹었냐고 어디서 왔느냐고 다음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환하게 웃으셨어요.


단 한 번 가본 곳이었는데 아직도 그 길 그 골목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우리는 대접받기를 원하는 존재일지 모릅니다.


음식은 내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에 관한 질문 같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점심은 주는 반찬에 시간에 맞추느라 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배는 엄청나게 불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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