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잔

사물에서 멀어지는 시

by 적적



밤은 검은 유약을 바른
머그잔 안은 깊고,
잠들지 못할 밤을 품고 있는.

커피를 따른다.



검은 액체가 잔의 곡면을 따라
천천히 세계를 채워가는 걸 보면서
오늘도 무언가를 마시는 대신,
삼키지 못한 말들을 천천히 저어 본다.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남은 온기 위로 비친 내 얼굴이 있다.



다 식지 않은 어둠과,
다 말하지 못한 하루와,
다 잊지 못한 마음의 굴곡이
잔 안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린다.



어느새 바지를 걷고
커피잔 안으로 발을 들인다.
벽은 둥글고, 끝은 없다.
밤마다 이 잔 안엔
작은 골목이 생기고,
굽이진 계단이 생기고,
어디로도 닿지 않는 문이 생긴다.



손잡이에 기대어
다리를 흔들며 앉아본다.
어디선가 자고 있는 고양이의
숨소리 같은 고요가 따라온다.
식어가는 커피처럼

내 안의 오늘도
조금씩 멀어져 간다.


눈꺼풀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막을 내리듯 무거워진다.
어둠 속으로
내려앉는 커튼처럼.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스스로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건네는 말.
늦더라도, 아-주 늦더라도



잘 자요.
잔 안의 밤이
당신을 무겁지 않게 덮어줄 거예요.


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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