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와 진실 사이, 인간을 지탱하는 가장 미약한 장치.
어떤 존재는 날개 없이도 날 수 있다. 허공을 가르는 것은 근육의 힘도, 깃털의 결도 아니다. 그들의 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이 있다. 그것은 하늘을 소유하지 못한 자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권리이며, 낙하를 비행으로 전환시키는 비밀스러운 장치다.
인간에게도 그와 같은 막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생각과 생각 사이, 혹은 감정과 감정 사이에 드리워진 비막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작동하는 막. 그것이 없다면 사고는 단순한 추락에 불과하고, 감정은 무너져 내린 건물의 파편처럼 서로를 해친다. 그러나 그 막이 존재하는 한, 추락은 유영이 되고, 파편은 결을 맞추어 빛을 반사한다.
비막은 경계이자 다리다. 지나치게 무겁지도, 지나치게 단단하지도 않다. 그것은 언제나 얇고 투명하며, 그래서 존재를 증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무언가가 부드럽게 미끄러져 흘러갈 때, 그 매끄러운 감각의 뒤에는 늘 보이지 않는 막이 깔려 있다. 감정이 감정으로, 사고가 사고로 이어지는 통로. 그것이 없다면 모든 흐름은 끊어지고, 삶은 돌연한 낙하로만 가득할 것이다.
비막은 감정의 충돌을 흡수한다. 분노가 차오를 때, 그 막은 얇은 수면처럼 부풀어 오른다. 눈부신 빛에 의해 깨지기 직전의 비눗방울처럼 떨리면서도, 끝내는 터지지 않고 흡수한다. 그래서 분노는 파국으로 가지 않고, 언젠가는 슬픔이나 체념으로 바뀌어 흘러간다. 반대로 기쁨은 과열되지 않고, 한 겹의 막을 통해 적절히 산란된다. 막이 없다면 인간은 단 한 번의 감정으로도 쉽게 파괴되었을 것이다.
비막은 늘 온전하지 않다. 그것은 종종 찢겨나간다. 예기치 못한 사건, 설명할 수 없는 말, 오래 묻혀 있던 기억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 그 막은 찢겨나가고 허공에는 새로운 틈이 생긴다. 찢어진 자리는 불안하다. 감정은 거칠게 흘러넘치고, 사고는 급격히 추락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찢김이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막이 찢어질 때만이 새로운 비행의 방식이 시작된다. 낡은 막은 오래된 생각을 지탱할 뿐이고, 그것이 찢겨야만 미처 몰랐던 세계가 열린다.
비막은 기억에도 있다. 오래된 상처의 자리에 얇은 막이 깔려 있다. 그 막이 없었다면 기억은 생생한 고통으로 남아 일상을 잠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은 고통을 희미한 통증으로 바꾸고, 시간을 통해 서서히 표면으로 흘려보낸다. 그래서 상처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막은 완전한 봉합이 아니다. 특정한 향기, 음악, 얼굴 하나만으로도 막은 쉽게 찢겨나가고, 묵혀 있던 기억이 날 것 그대로 돌아온다. 그때의 고통은 과거와 현재를 가로질러 한순간에 이어진다. 막은 단지 유예에 불과하다.
사고의 흐름 속에서도 막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건너갈 때, 그 중간에는 미세한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비막이다. 막이 없다면 사고는 단절되고, 사유는 깊이를 잃은 채 추락한다. 하지만 막은 그 간극을 미끄러지듯 이어준다. 덕분에 생각은 단순한 연속이 아니라 흐름을 가진다. 때로는 막이 의도적으로 찢길 때도 있다. 그 순간, 사유는 비약을 일으킨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두 생각이 하나로 이어지고, 새로운 관점이 태어난다. 철학적 사유의 도약이란 결국 그 보이지 않는 비막이 찢겨 나간 자리에서 발생한다.
비막은 또한 욕망의 경계에서 작동한다. 인간의 욕망은 늘 과잉이거나 결핍이다. 그 과잉과 결핍을 조절하는 것이 바로 막이다. 얇은 막이 욕망을 산란시키고, 절제와 환상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욕망이 막을 잃는 순간, 인간은 파멸로 향한다. 그러나 막이 지나치게 두꺼워지면 욕망은 살아 있는 불꽃이 되지 못하고 질식한다. 욕망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늘 파열 직전의 얇은 막이 필요하다. 그것은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균형이다.
결국 비막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날다람쥐가 그 막을 펼쳐야만 낙하를 비행으로 바꾸듯, 인간도 그 보이지 않는 막 덕분에 사고와 감정의 추락을 유영으로 바꾼다. 그 막이 없다면 삶은 단절과 충돌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나 막은 충돌을 미끄럽게 흘려보내고, 단절을 새로운 연결로 바꾼다.
때로는 이 막이 환영처럼 느껴진다.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실체조차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막이 없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아무것도 이어지지 않으며, 감정은 감정으로 이어지지 않고, 생각은 생각으로 전환되지 않는 상태. 그때야말로 막의 존재가 역설적으로 증명된다. 막은 투명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는 순간 삶 전체가 그것의 흔적을 증명한다.
나는 비막이 있다. 그 말은, 인간은 끝내 추락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선언일 것이다. 추락조차도 비행으로 바꿔내는 비밀스러운 장치가 여기에 있다. 얇고 투명하여 언제든 찢어질 수 있지만, 바로 그 위태로움 속에서 인간의 삶은 아름다움을 획득한다. 비막은 결코 완벽한 방패가 아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기에, 존재는 다시 비행을 시도할 수 있다.
낙하하는 동안에도 허공은 넓어진다. 허공을 가르는 것은 날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이다. 인간이 허공을 지나갈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곳에 있다.
인간은 추락하는 존재다. 그러나 그 추락은 단순히 중력의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의 추락은 사고와 감정, 욕망과 기억의 무게에 의해 촉발된다. 그 추락이 단순한 낙하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비막이라 부를 수 있는 그것은, 실체 없는 존재이면서도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은밀한 장치다.
비막은 경계이자 지연이다. 감정이 곧장 파괴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그 막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분노는 막에 부딪혀 체념으로 전환되고, 사랑은 막을 스쳐 지나며 욕망과 환상으로 굴절된다. 만약 이 막이 없다면 인간은 매 순간 자신에게서 터져 나오는 감정에 산산이 부서졌을 것이다. 인간의 존속은 결코 강인함에 있지 않다. 오히려 파열과 충돌을 지연시키는 투명한 막, 그 미약한 완충장치 속에 있다.
비막은 완전한 방패가 아니다. 그것은 종종 찢겨 나간다. 막이 찢기는 순간, 감정은 날것으로 돌출하고, 사고는 방향을 잃는다. 그때 인간은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바로 그 파열의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비행의 조건이 된다. 생각은 균열 속에서 비약을 얻고, 감정은 상처 속에서 재구성된다. 막은 찢겨야만 제 역할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비막은 모순적이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라져야 하고, 지탱하기 위해서는 흔들려야 한다.
기억 또한 비막 위에서만 살아남는다. 기억은 고통을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다. 그 위에 얇은 막을 깔아 통증을 지연시킨다. 덕분에 인간은 과거를 견딜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순간, 막은 무참히 찢겨 나가고, 오래된 고통은 현재로 귀환한다. 과거는 과거로 봉인되지 않고, 늘 현재 속으로 유입된다. 인간은 비막 덕분에 살지만, 동시에 그 비막의 파열 덕분에 새롭게 사유한다.
사고의 전환 또한 그렇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비막이다. 막은 단절을 흐름으로 바꾸고, 추락을 유영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모든 사유의 혁신은 이 막이 찢기는 순간 발생한다. 기존의 연속이 무너지고, 불가능하던 연결이 성립한다. 새로운 관점은 결코 안정된 막 위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막의 파열, 그 불가능의 공간에서만 도래한다.
욕망 역시 비막 위에서만 가능하다. 욕망은 과잉과 결핍 사이에서 진동한다. 막이 없으면 욕망은 폭주하여 파멸을 낳고, 막이 지나치게 두꺼우면 욕망은 소멸하여 삶을 질식시킨다. 따라서 욕망은 언제나 위태롭다. 파열 직전의 얇은 막 위에서만 유지된다. 욕망은 막을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그 파열을 갈망한다. 인간의 욕망은 안전과 파괴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흔들린다.
결국 인간의 삶은 이 보이지 않는 막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이다. 인간은 날개가 없는 존재다. 허공을 가를 수 있는 힘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추락이 단순한 낙하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비막 때문이다. 그 얇은 막이 낙하를 유영으로 바꾸고, 파괴를 지연시키며, 때로는 찢어져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비막은 허구에 가깝다. 그러나 허구 없이는 삶이 지속될 수 없다. 인간은 허구 위에서만 살아남고, 그 허구가 찢겨 나가는 순간에만 진실을 본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비막과의 긴장 속에서만 성립한다. 존재는 막에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동시에 막의 파열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갱신한다.
나는 비막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끝내 추락만으로 정의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추락을 비행으로 전환시키는.
이 얇고 투명한 막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가장 역설적인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