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미묘케 24화

어떤 계절인가요?

누구나 같은 계절을 살지 않는다.

by 적적


창문을 열면, 공기는 언제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같은 아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닫게 하는 것은 냄새다. 갓 구운 빵 냄새처럼 따뜻한 공기가 흘러들어오는 날이 있는가 하면, 젖은 흙냄새가 선명하게 살아나 아직 오지 않은 비를 예고하는 날도 있다. 그것은 ‘5월의 늦은 겨울’ 같은 이름을 붙여야 할 공기다. 달력은 분명히 여름을 향해 가고 있지만, 공기는 도리어 겨울의 그림자를 붙들고 있다. 계절은 언제나 달력보다 빠르거나 늦다. 하루하루는 단일한 계절의 조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대와 감정의 겹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거리를 걸으면, 도시의 나무들이 먼저 변화를 알려준다. 어떤 날의 은행나무는 아직 초록색을 고집하지만, 바로 옆의 플라타너스는 이미 누런 기미가 돌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표정도 다르다. 누군가는 벌써 반소매를 입고 있고, 다른 이는 여전히 두툼한 재킷을 벗지 못한다. 옷차림의 격차 속에서 계절은 균질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어제의 봄이 오늘의 여름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늘의 여름은 내일의 가을로 미끄러진다. 그렇게 매일 다른 계절의 이름이 필요해진다.


아침의 계절은 대체로 맑고 가볍다. 햇살이 유리창에 부딪혀 산란할 때, 방 안은 이름 모를 꽃의 계절처럼 느껴진다. 오후는 다르다. 사람들의 피곤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 햇볕은 무거워지고 공기는 눅눅해진다. 그것은 ‘지쳐가는 여름의 가을’이라는 이름을 가질 만하다. 밤은 또 다른 계절이다. 어둠이 가볍게 내려앉는 날, 도시의 불빛은 봄의 별빛보다 따뜻하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오면 문득 겨울이 스며든다. 같은 하루 안에서 세 개 이상의 계절이 오가며 교차한다.



계절은 자연현상이라기보다 심리의 풍경이다. 같은 날씨도 누구에게는 ‘기억의 여름’으로, 다른 이에게는 ‘망각의 겨울’로 다가온다. 똑같이 흐린 날인데, 어떤 이에게는 우울을 닮은 늦가을로, 또 다른 이에게는 포근한 초봄으로 느껴진다. 결국 계절의 진짜 주인은 달력이 아니라 감각이다. 감각은 언제나 개인적이고, 그 개인적 차이가 모여 거대한 계절의 변주를 만들어낸다.



한때는 계절이 네 가지뿐이라고 믿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러나 실제의 계절은 그보다 훨씬 많다. 벚꽃이 흩날리고 난 뒤의 봄, 매미가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여름, 첫 보일러를 켤 때의 가을, 눈이 오지 않는 겨울. 각각의 순간이 하나의 계절이다. 어떤 날은 햇볕이 유난히 짧아 ‘사흘짜리 겨울’ 같고, 또 어떤 날은 비가 그치지 않아 ‘습기에 잠긴 여름’으로 불러야 한다. 달력에 적힌 날짜로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무수한 계절들이 삶을 통과한다.



어떤 날은 ‘버스 정류장 유리벽에 햇빛이 비쳐 얼굴이 일그러져 보이던 3월의 투명한 봄’이라 불러야 한다. 아직 차가운 바람이 스쳤지만, 유리창에 반사된 빛은 얼굴을 낯설게 바꾸어 놓았고, 계절은 투명한 막을 씌운 듯 모든 표정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날은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방치된 분홍색 자전거 바퀴가 햇빛에 녹슬어가던 4월의 무심한 오후’였다. 아이들은 이미 사라졌고, 녹슨 쇠 냄새만이 남아 계절의 둔중한 무게를 증언했다. 한편,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손에 들린 콘이 금세 녹아내리던 달콤하게 지치는 여름’도 있었다. 초콜릿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때, 계절은 더 이상 감미롭지 않고, 지쳐버린 단맛으로만 남았다.


그리고 ‘해 질 녘 4차선 건널목에서 날아오르는 잠자리 떼와 부딪히던 끈적한 저녁’은 또 다른 이름을 가졌다. 바람은 멎어 있었고, 여름은 절정에 다다라 더 이상 맑지 않았고, 그 끈적임 속에서 계절은 퇴색해 갔다. 이어서 ‘편의점 앞 테이블 위에 반쯤 마신 캔커피가 식어가던 쓸쓸한 밤’도 있었다. 그날의 공기는 이별의 예고처럼 쓸쓸했고, 반짝이는 알루미늄 캔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가을은 늘 무심한 사물의 틈에서 찾아왔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느리게 흘러내리던 고요한 오후’는 또 하나의 계절이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겹쳐졌고, 그 정적은 계절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날은 ‘시장 입구에서 파란 대야 가득 쌓여 있던 굴이 물비린내를 풍기던 습기 어린 아침’이었다. 겨울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차가운 바람과 함께 불현듯 바다의 깊은 냄새가 몰려왔다. 그리고 ‘지하철 계단에서 흩날린 크리스마스 광고 전단지를 밟고 지나가던 가벼운 겨울’도 있었다. 그날의 겨울은 눈 대신 종이와 인쇄 잉크의 냄새로 도배된 계절이었다.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날은 ‘이듬해 새벽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던 손끝이 저려오던 차갑고 외로운 겨울’이었다. 라면 국물의 뜨거움과 손끝의 차가움이 동시에 공존하던 그 순간, 계절은 배고픔과 고독을 한꺼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2월, 졸업식 꽃다발이 시들어가는 체육관 복도에서 흩날리던 국화잎의 겨울 끝자락’은 또 다른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 꽃잎은 추위보다 먼저 계절의 종말을 알려주었다.


계절은 이름을 얻을 때 비로소 실체를 갖는다. 이름 붙이지 못한 날들은 흐릿하게 사라져 버린다. ‘장마 직전의 두려운 여름’이라고 불러준 하루는 오래 남는다. 계절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결국 망각을 거스르는 일이다. 기록되지 않은 날은 희미해지고, 희미해진 날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계절의 이름은 기억의 표식을 남긴다. ‘바람이 유난히 빨랐던 가을’이라는 이름은 다시 불러낼 때마다 같은 공기를 재현한다.

계절의 이름은 또한 관계의 풍경을 비춘다. 한때는 특정한 얼굴이 특정한 계절과 겹쳐 보였다. 웃음소리가 여름 저녁의 소나기 같았던 사람, 손끝이 겨울의 바람 같았던 사람. 그와 함께 걸었던 골목은 늘 ‘늦봄의 저녁’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사랑의 기억은 언제나 특정한 계절의 기후와 결합한다. 이별은 대개 늦가을에 찾아왔고, 새로운 만남은 봄의 가장 연약한 순간에 움텄다. 감정이 붙든 계절의 이름은 개인적인 연대기를 완성한다.

도시는 계절을 지우려 하지만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한다. 실내는 늘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고, 네온사인은 계절과 상관없이 같은 색을 발한다. 그러나 새벽의 공기만큼은 도시도 조절하지 못한다. 지하철 출입구에서 올라올 때 코끝에 닿는 바람이, 그날의 계절을 말해준다. 빌딩의 그림자 사이로 흘러드는 햇빛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모든 인공적인 장치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여전히 일상의 균열 속에서 틈을 만들어낸다.


계절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결국 자기만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흐린 화요일이, 다른 이에게는 ‘기억의 초겨울’이 된다. 이렇게 각자가 부여한 이름은 공통된 달력을 해체하고, 고유한 시간의 지도를 만든다. 삶은 달력의 순환이 아니라 개인의 계절들이 서로 부딪히고 스며드는 과정이다.

매일 다른 계절의 이름을 붙여보는 일은 결국 질문을 던지는 행위다. 오늘은 어떤 계절로 기억될 것인가. 내일은 어떤 계절로 불려질 것인가. 달력이 주지 못하는 시간의 질감을 스스로 되찾는 일. 그렇게 붙여진 이름 속에서 삶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잡히고, 기록되고, 다시 불려진다.



오늘의 공기는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는 뒷모습’이다. 내일은 또 다른 이름을 얻을 것이다. 매일 다른 계절의 이름이 쌓여가면서.

그 사람의 세계는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은



고유한 사계절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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